"이거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을 걸요."윤성원(28·회사원)씨는 지난 9월 허니버터칩을 처음 맛본 이후 매일 직장동료와 하나씩 먹고 있다. 윤씨는 "이거 완전 인간사료다"라며 "요즘은 구하기 힘들어 그저께는 남자친구까지 동원해 강남역과 신사역 편의점 14곳 넘게 다녔다"며 "어딜 가나 품절이기에 (편의점)알바생에게 따로 좀 빼달라고 부탁해서 샀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감자칩은 짜기만 한데 허니버터칩은 달고 고소하니깐 여자들이 좋아할 맛"이라며 "9월에는 회사에서 나만 아는 과자였는데 지금은 회사 사람 대부분이 중독돼 아예 탕비실에 쌓아두고 먹는다"고 덧붙였다.
허니버터칩 과자가 인기다. 지난 8월 해태제과에서 출시된 허니버터칩은 벌꿀과 버터를 이용해 만든 감자칩이다. 이 과자는 출시된 지 3개월이 채 안 됐지만 지난 10월 편의점 GS25와 CU에서 과자 판매 1위를 차지했다.
해태제과에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3개월 동안 허니버터칩이 올린 매출은 50억 원을 돌파했다. 19일 종일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허니버터칩이 올랐는가 하면, 연예인들도 SNS에 허니버터칩과 관련된 글을 게재해 허니버터칩 열풍에 동참하기도 했다. 인터넷 중고거래 카페에는 1500원 짜리 허니버터칩에 500원에서 3500원을 더 붙여 팔거나 구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한 상자에 16개 들었는데, 1시간도 안 돼 다 팔려"이수영(23·대학생)씨도 "얼마 전 인터넷 카페에서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허니버터칩이 맛있다고 올린 걸 보고 호기심에 사 먹었다"며 "최근엔 마트 위주로 찾아다니다 엄마가 겨우 사왔다"고 말했다. 그는 "과자 하나 때문에 온 가족이 나서기는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해태제과 영업팀 한 관계자도 "친구들이 (허니버터칩) 좀 달라고 하는데 우리도 없어서 못 먹고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주들도 물량확보가 안 돼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서울 중구 을지로동에서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남아무개(54·세븐일레븐)씨는 "허니버터칩 없냐고 묻는 손님들이 하루에 10명 정도 있다"며 "공급이 부족해 일주일째 팔지 못할 뿐더러 한 상자에 16개 들어있는데 1시간도 안 돼서 다 팔린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아무개(42·CU)씨도 "손님들이 사가면 1개만 사가는 게 아니라 3개, 6개씩 사가니깐 금방 팔린다"며 "꼬꼬면 열풍 때랑 똑같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서 알바를 하는 구아무개(25·GS25)씨도 "과자코너에 서 있는 손님을 쳐다보면 다들 '허니버터칩 없느냐'고 물어본다"며 "내일 들어오는데 벌써 누가 사전예약 해놨다고 사장님이 진열하지 말고 팔지도 말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열풍의 비결은 한국인의 입맛 고려한 '맛의 조합'
허니버터칩을 출시한 해태제과는 소비자들의 반응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허니버터칩 열풍을 예상했다고 한다. 소성수(44) 해태제과 홍보팀장은 19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허니버터칩을 개발하기 위해 1년 9개월 동안 연구개발을 한 만큼 제품에 대해 자신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자 시장에서 일반 과자는 연간 성장률이 2~3%이지만 감자 스낵은 7~8%다"라며 "이미 자사에 '생생감자칩'이라는 감자 스낵이 있었지만, 약세였고 과자업계에서 감자 과자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소 팀장은 "해태제과의 시행착오와 오랜 연구가 허니버터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해태제과는 2012년 일본의 가루비 회사와 합작으로 '행복버터포테이토칩'을 출시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그때의 경험으로 연구원들은 감자칩이 짠맛이 아닌 단맛으로도 구현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이 경험을 계기로 감자칩은 짜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했다"고 밝혔다.
19일, 편의점 발주 재개... '대란'이 빚어진 이유독특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허니버터칩. 하지만 SNS를 통한 입소문과 일시적 편의점 발주중단, 공급보다 높은 수요가 품귀 현상을 일으키는데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해태제과 영업팀 한 관계자는 19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출시 초반에는 편의점에만 유통했지만 개인 슈퍼마켓과 마트 등 판매지를 점차 확대 판매하면서 편의점 공급이 달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서 CU편의점을 운영하는 이아무개(42)씨는 "2주 전인가 본사에서 과자 인기가 너무 많아 일주일에 세 번(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1박스씩으로 공급을 제한하더니 이번 주 월요일(17일)에는 물량공급 조정 때문에 발주가 중단됐었다"고 설명했다. 발주중단은 CU편의점 외 세븐일레븐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점 발주가 중단됐다는 소식은 인터넷상에서 '생산이 중단됐다'고 와전되기도 했다. 11월 초 한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 등에 '수요를 맞추기 위해 온종일 공장 기계를 돌리다 공장에 불이 났다'는 이야기와 '허니버터칩이 아예 생산이 중단됐다'는 소문이 퍼져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해태제과에 따르면 공장에 불이 났다는 것은 사실무근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생산중단 소문에 허니버터칩을 애용하던 소비자들이 사재기 인증사진을 SNS에 올리고 실시간 검색에 '허니버터칩 생산중단'이 오르내리면서 다른 소비자들의 호기심이 증폭됐다. 이에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과자를 구하러 나서면서 '대란'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상에선 누리꾼들끼리 허니버터칩을 쉽게 구하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누리꾼 @puk****는 "동네상점이랑 슈퍼에는 널려서 귀한 과자인 줄 몰랐다. 아까도 쌓여있는 거 보고 왔다"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누리꾼 @fromm****는 "마트에 가면 많이 있다. 편의점에서 파는 건 질소 과자여서 양이 너무 적었는데 마트용 2400원짜리는 양도 넉넉하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니 참고"라고 적었다.
한때 중단됐던 편의점 발주도 19일부터 재개돼 품귀현상은 어느 정도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트위터 사용자 @RENA*는 "편의점 사장인 제가 긴급 공지합니다. 허니버터칩 내일부터 발주 돼서 정상 판매 들어갑니다"라는 글과 함께 '현재 운영 중인 (해태)허니버터칩1500의 발주를 재개하오니 점포 운영에 참고바랍니다'라고 적혀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소성수 해태제과 홍보팀장도 "중고시장에서 1500원짜리 과자가 5000원에까지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최대한 빨리 많이 공급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16시간 2교대 공장 생산체제를 지난 9월 24시간 3교대로 바꿨다"며 "제품 생산율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만큼 곧 소비자들이 제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품귀 현상, 마케팅?... "마케팅 할 틈도 없었다"
19일 오후 편의점 발주가 재개됐다는 뉴스를 접한 방보미(23·대학생)씨는 "과자에 별 관심 없는데 이렇게 난리니 진짜 먹어 봐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윤주희(28·회사원)씨도 "사재기 해놓은 인증사진을 하도 봐서 그런지 나도 쟁여놔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이런 품귀 현상이 과자 업체의 마케팅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도 있다. 허니버터칩의 경우 가격과 비교하면 과자량이 적고 대란이 일어날 만큼 맛있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로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허니버터칩 후기 글에 달린 댓글 175개 중 20개는 별로라는 내용이다.
김현수(25·대학생)씨는 "먹어봤는데 너무 느끼해서 다 못 먹고 버렸다"라며 "SNS와 입소문 때문에 대란이 일어난 거 같다"라고 말했다. 조윤서(24·대학생)씨도 "그냥저냥 괜찮은 맛이긴 한데 이거 구하러 편의점 10곳을 돌아다니진 않을 거 같다"고 평가했다.
트위터 이용자 @heyj****도 "맛도 가격에 비해 별로고 양이 너무 적다"며 "허니와 버터맛이 나는 과자는 무슨! 질소과자다"라고 꼬집었다.
최아무개(29·회사원)씨도 "회사가 더 만들 수 있는데 일부러 적게 만들어 이런 여론을 만든 거 같다"라며 "물류회사에 불났다는 둥, 돈 있어도 못 산다는 둥 떠드는 거 다 마케팅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반면 소성수 홍보팀장은 "마케팅을 따로 할 틈도 없었다"라며 "우리도 마케팅이나 특별한 광고 없이 SNS와 입소문을 통해 대란이 일어난 게 신기하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