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입니다. 북한에서는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고 있는데,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렇게 잘 살면서도 정부에 불만이 많습니다. 정부 비판하시는 분들은 (대한민국이) 그렇게 싫으면 북한 가서 사시면 되지 않나요?"예비군 훈련 8년을 거쳐 민방위 교육 3년차. 이쯤 되면 눈 감고 있어도 다 듣고 있다 할 정도로 익숙한 내용들이다. 예비군 훈련이라 하면 그저 산에 올라가 대기하며 대충 시간 때우다 집에 가던 기억이 대부분. 어차피 예비군훈련대상자 치고 유사시에 총 쏠 줄 몰라서 문제 생길 사람은 없으니, 그저 이렇게 하루 장사 공치고 불려온 것이 못마땅해 눈을 감은 자영업자들과, 합법적으로 하루 땡땡이치는 직장인들의 표정이 알맞게 뒤섞여 있었다.
다만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안보교육만큼은 군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군 예산으로 골프장 짓는 대한민국 국군의 수준에 걸맞는 안보교육은 지난 1968년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이후 오랜 전통을 소중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럼 민방위훈련은 어떨까. 민방위기본법(법률 제12204호)에 의하면 민방위란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의 지도하에 주민이 수행하여야 할 방공(防空), 응급적인 방재(防災)·구조·복구 및 군사 작전상 필요한 노력 지원 등의 모든 자위적 활동"을 말하며, 이를 동법시행령으로 정한 교육을 의미하며, 1975년 민방위대 창설 이후 매년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훈련의 동기부여는 왜 20세기 중반에 머물러 있을까
올해 민방위 교육내용은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었다. 늘 칙칙하고 퀘퀘하던 사내냄새 가득한 광명시민방위교육장 지하 무대에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분이 등장했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어 웅성이는 교육대상자들에게 인사한 이는 유명 팝페라 가수 한아름씨였다. 광명시 측에 의하면 민방위 대원들의 만족도를 위해 마련한 특별 식전공연이라 한다. 월별로 걸그룹, 팝페라 가수 등을 초청하기도 하고 통대장 교육시에는 트롯 가수가 공연한다고. 뜻밖의 신선한 시도는 반가운 일이다.
민방위 훈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비상시 환자 응급처치, 심폐소생술(CPR) 교육 역시 만족스러웠다. 지난해까지는 자원자에 한해 실습하던 것을 올해는 마네킹도 넉넉히 준비하고 구강대구강법을 위한 인공호흡용마스크도 구비하여 전원 실습을 가능케 한 점도 칭찬받을 일이다. 누구나 내용은 알지만 막상 닥치면 시행하기 망설여지는 응급처치술을 실습으로나마 경험해둔다는 것은 민방위 교육의 기본 취지에 부합하는 좋은 내용이다.
그러나 안보교육만큼은 1960~1970년대 창설 이후로 달라진 점이 없는 듯하다. 예비군이나 민방위나 그 안보교육의 기조는 그저 '반공' 혹은 '반북'에만 근거하고 있다. 이날 안보교육 강사로 초청된 탈북인 강사도 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접할 수 있는 북에 대한 피상적 이미지, 그리고 본인이 직접 겪었다는 정도의 설득력이 가미된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 소개, 탈북 과정에 대한 간략한 언급에 이어 종국엔 역시나 '대한민국은 무조건 좋고 북한이 나쁘다.' 그러니 '북이 아닌 남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하며,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분들은 북에 가서 살라'는 결말이다.
본래 안보교육의 목적은 '동기 부여'에 있다. 예비군 훈련의 경우 북한이 주적임을 상기하고 사격 등의 훈련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 민방위 훈련 역시도 일급재난상황에 대한 경각심 고취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이런 반복적인 '남한천국 북한지옥' 식의 단순논리 주입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는 의구심이 생긴다.
그런데 왜 탈북자 자살률이 3배나 더 높을까?
지난 9월 6일자 <한겨레> 신문 기사(
진보진영 무관심이 '극우 탈북자' 만든다)에 따르면 탈북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은 남한 사람의 절반(141만원, 2013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조사)에 불과하며, 자살률은 일반 국민의 세 배(16.3%, 2012년 경찰청 조사)에 달한다. 남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이들도 취업하기 어려운데, 이들에게 자본주의 경쟁사회는 쉽지 않은 환경이다.
그나마 국정원이나 기무사, 혹은 자유총연맹과 같은 이른바 '보수단체'에서 주는 강연료가 가뭄의 비와 같은 좋은 수입원이다. 물론 이마저도 탈북 인구가 2만5천명을 넘어선 지금에는 경쟁률이 높아 '없어서 못하는 일'이 되었다. 민방위 훈련의 고정 코너인 안보교육 강사 일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요즈음엔 종편채널들이 생겨나면서 TV에 출연하는 탈북자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북한의 실상'은 대부분 탈북 이후 국정원이나 각종 보수단체에서 재교육받은 정보들이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은 그 지역에 한정된 내용일 뿐, 더구나 정보가 통제된 사회에서 타 지역의 사정이나 국내 정세에 밝기란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북한 정세는 이런 채널들에 관심이 많은 남한 사람들이 더 잘 알지 않을까.
호국에서 뉴라이트로 연결되는 편향된 안보 아닌 이념교육사정이 이렇다보니 강사들의 교육 내용은 편향될 수밖에 없다. 탈북 이후 보고 들은 것은 대부분 극보수진영의 교육 프로그램과 일자리, 그리고 북한체제에 대한 적대감이 이들을 "극렬 우익"으로 만들고 있다. 따라서 강사 일이라도 하고 싶은 탈북자들은 극우진영 기득권층의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하다. 탈북자 강사가 아니더라도 안보교육에서 만날 수 있는 강사들은 극우보수단체 소속 인사들로 한정된다.
자연히 안보교육이란 이들의 입맛에 맞게 '반공'이라는 이름의 '반북'교육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친북이라는 색깔을 덧칠한 진보진영에 대한 비난 혹은 조소를 덧붙인다. 이런 프레임을 설정하면, '현 정부가 다 잘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문제제기에 '그럼 북한이 더 좋단 말이냐? 왜 북으로 가지 않느냐?'는 유치한 응수가 뒤따른다. 이 흑백논리를 매년 '교육대상자'라는 이름의 유권자에게 주입하는 것이, 50년 전통의 안보교육이다.
지난 얘기지만 2012년 대선을 앞둔 민방위훈련은 전체 4시간 중 2시간이 안보교육에 할애되었고, 담당 강사는 "어디라고 말은 못하지만, 남에도 있지요? 북한 찬양하고 체제 전복하려고 하는 정치세력이"라는 식의 언급을 서슴지 않으며 노골적인 이념교육으로 사전선거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민방위교육 담당자에게 확인한 바 "우리 지역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안보교육을 2시간씩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청와대는 4성 장군 출신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에 이어 신설 국민안전처마저 군 출신 인사들로 포진시켜 "안보와 안전을 구분 못 하는 것 아니냐"는 빈축을 샀다. 현 정부 기준에서 본다면 아주 적절히 시행되는 안보교육이 아닐까 싶다. 그저 일선에서 예비군, 민방위 훈련을 시행하는 담당자들의 강사 선정 권한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할 것이 아니라, 예비군, 민방위 창설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안보'에 대한 인식을 재고할 시기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