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5개월을 꽉 채워가면서 가끔 '회사다닐때가 좋았지'라고 느낄때가 있습니다.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회식후에 들어온 남편의 옷에 밴 삼겹살 냄새와 살짝 스치는 날아가는 향긋한 소주향을 맡은 그런 밤입니다. 그땐 그리도 싫었던 회식, 요즘은 꽤나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회사다니면서 휴가내던 날의 그 기분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평일날 어느 하루 휴가를 내고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는 그 하루 가운데 저 혼자만 느끼는 여유. 마치 하루를 통째로 선물받은듯한 그 특별한 기분을 느끼고 싶습니다. 매일매일 쉬는것 같으면서도 쉬지 않는 전업주부의 길 5개월차, 하루 휴가가 간절히 그립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 어른들만 하는건 아닌것 같습니다. 어제 7살 따님, 특별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엄마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들은 신기할정도로 소아과 방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아이들이 작년보다 조금 더 커서일수도 있지만, 어째든 감기도 걸린 적이 거의 없어 올해 소아과에 간 기억은 한두번 있을까말까 합니다. 그런데, 엊그제 저녁 7살 둘째아이가 몸이 피곤하다며 조금 힘들어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저녁을 먹지 못하겠다는 중대선언까지 하고 방에 들어가 누웠습니다. 그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모습에 걱정이 되어 물었더니 열도 나는것 같고 힘들다며 저의 손을 끌어다 제 이마에 얹히며 만져보게 했습니다.
"어, 열이 좀 있는 것같아. 열이 나서 밥맛이 없나 보다. 그래두 좀 먹어야 하는데."열? 사실 별로 열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아픈것같이 보이고 싶은 아이의 노력을 꺾고 싶지 않아 장단을 좀 맞춰준것 뿐입니다. 아이는 계획대로 잘 된다 싶은지 이렇게 묻습니다.
"아파서 내일 유치원에 가면 안되겠다. 내가 다른 아이들에게 옮길수도 있고.""응? 어... 그래. 뭐 그렇긴 한데.." 그 다음부터 조금 기분이 나아진 아이는 말했다.
"엄마, 그럼 공기밥 대신 죽 좀 해주세요."식당에 가면 무엇을 먹든 공기밥 한그릇을 시켜 뚝딱 먹어치우는 아이를 이모들이 장난삼아 '백반이'라고 할 정도이긴 하지만, 집에서도 그냥 밥이 아닌 '공기밥'이라 칭하다니. 뭐 죽이라도 먹는다고 하니 귀찮기는 하지만 죽을 쑤어 한 그릇 뚝딱 비우게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컨디션이 좋아보이는 아이는 학교갈 준비를 하는 언니에게 자기는 아파서 못간다며 자랑하고, 유치원선생님에게 전화해달라고 말하며 행정적인 사항(?)까지 정리했습니다. 그리고는 엄마랑 무얼할까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우리 찜질방 갈래요? 할머니랑 예전에 가봤는데 너무 좋은데. 아님 도서관에 갈까요? 와우, 엄마랑 둘이서만 하는 비밀데이트다!"이거였습니다. 아이가 원한건 엄마랑 둘이서만 하는 특별한 시간, 비밀데이트였던것입니다. 그래도 걱정스러워 아침에 소아과를 들렀다가 초기 감기로 목이 조금 부어 열이 났을거라는 얘기를 듣고 안심한 후에 그 녀석이 계획한 비밀데이트 장소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책 몇 권을 재미나게 읽던 아이는 은근한 눈으로 엄마에게 배도 고프니 '그거'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그거? 도서관에 왔다가면서 가끔 엄마는 커피를 마시고 언니와 저는 하나를 시켜 나눠먹는 바로 그거였습니다. 허니 브레드!
그동안 언니와 둘이 나눠먹던 빵을 오늘은 엄마는 손도 못대게 하고 혼자 모두 먹어치웠습니다. 그리고 만족한듯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투어를 하자고 합니다. 신나게 동네투어를 마치고 건널목을 건너려는 순간 반대편에서 유치원 다른반 선생님 두분이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신호등이 바뀌어 중간쯤에서 마주쳤을 때, 이렇게 말했다.
"어, 안녕? 지금은 안아파? 아침에 선생님이 전화받아서 담임선생님한테 알려드렸는데. 선생님 밖에서 만나니까 신기하지? 선생님도 신기하네.."아이는 인사도 못하고 쑥스럽다는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자전거를 끌고 재빨리 횡단보도를 건너갔습니다. 그 옆에서 이젠 괜찮다고 저는 선생님께 웃어보이고.. 비밀데이트를 다른 사람이 눈치챈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 마냥 좋기만 하던 아이는 살짝 긴장을 하며, 혹시라도 같은반 친구를 만나면 안되니까 멀리 돌아서 가자고 합니다. 다행히 일찍 끝나 하원하는 한 친구가 멀리 지나가는것을 봤을뿐 다른 사람에게 걸리지 않고 집에 잘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평일날 유치원 안가고 엄마랑 있기는 처음이라는 아이의 첫번째 비밀데이트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밥을 거부해 본적이 없는 밥심으로 사는 우리아이, 하루저녁 '공기밥'을 포기하면서 얻어낸 엄마와의 비밀데이트 덕분이었을까요? 오늘 아침에는 맛사지 한다며 언니와 서로서로 로션도 발라주고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11월 생일파티가 있는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라며 신나라하며 유치원에 갔습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가끔은 아무도 모르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 내가 온전히 세상의 주인이 되는 날, 그런 특별한 날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저도 아이처럼 저만을 위한 특별한 날을 만들어 보리라 생각하며 육아휴직 6개월차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