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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것이 터졌다."

28일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통해 박근혜 정부 '그림자 실세'인 정윤회씨의 국정개입이 사실로 드러나자 여의도 정가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그동안 '설'로만 그쳤던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청와대 내부문건에 등장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심장하다. '박지만 대 정윤회'의 권력암투로 해석할 여지까지 남겨주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시중에 떠도는 근거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에 불과하다"라고 보고서를 폄하했다.  

정윤회의 최근 동향이 자세히 기술된 감찰보고서 

 지난 2013년 7월 19일 서울 근교 한 공원에서 <한겨레>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된 정윤회씨의 모습.
지난 2013년 7월 19일 서울 근교 한 공원에서 <한겨레>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된 정윤회씨의 모습. ⓒ 사진제공 한겨레

지난 1월 6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비서관실에 근무하던 A행정관은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일명 '정윤회 감찰보고서')을 작성했다. 경정인 A행정관은 경찰청 정보과에 근무하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로 파견나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회 감찰보고서에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정씨의 '최근 동향'이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강원도 홍천쪽에 은거하고 있던 정씨는 지난해 10월부터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우는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과 정기적으로('매월 2회') 만났다. 정씨는 이 자리에서 "VIP의 국정운영, BH 내부 상황을 체크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정부 고위관료 인사와 청와대 내부인력 조정(비서진 개편) 등도 논의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정씨가 정보지와 일부 언론들을 통해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을 유포하라고 지시했다는 부분이다. 정씨는 지난해 송년모임에서 "김기춘 실장은 최병렬이 VIP께 추천해 비서실장이 되었는데, '검찰 다 잡기'만 끝나면 그만두게 할 예정이다, 시점은 2014년 초중순으로 잡고 있으며, 7인회 원로인 김용환도 최근 김기춘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라며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 유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 1월부터 여의도 정가 등에서는 지속적으로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이 나돌았다. 김 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김 실장의 후임으로 권영세 전 주중대사와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등이 거론됐다. 이러한 상황전개를 헤아리면 김기춘 비서실장을 교체하기 위한 '여론작업'이 실제로 진행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정씨가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 유포'를 지시하면서 "검찰 다 잡기만 끝나면 (김 실장을) 그만두게 할 예정이다"라고 말한 대목에 이르면 그가 '검찰'까지 관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송년모임이 끝난 뒤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리하려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 계열' 검사들이 지방으로 대거 좌천됐기 때문이다.

올 1월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을 이끌던 윤석열 여주지청장과 박형철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부장이 각각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으로 발령났고, 법무부장관의 '채동욱 전 총장 감찰'에 반발했던 박은재 대검 미래기획단장도 부산고검으로 좌천됐다. 이러한 인사는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 수사의 무력화'였다. 이어 지난 9월 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박 대통령은 '불법선거로 당선됐다'는 원죄를 털어냈다.  

'정윤회 감찰보고서'는 '박지만 대 정윤회'의 권력암투?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 남소연

하지만 청와대는 정씨의 국정개입 정황이 적시된 '정윤회 감찰보고서'를 '찌라시'라고 폄하하고 나섰다. 민경욱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그 보고서는 특정인을 조사해서 결과를 정리한 내용이 아니다"라며 "시중에 (떠도는) 근거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정윤회 감찰보고서'는 감찰보고 절차에 따라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홍경식 민정수석은 물론이고 김기춘 비서실장에게도 보고됐다. 민경욱 대변인도 '어디까지 보고됐나?'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기춘 비서)실장님이 이 사실을 알고 계신다"라고 답변했다. 민 대변인은 "그런 내용이 풍문으로 돈다는 구두보고였다"라며 "공식문서를 통한 공식보고는 아니었다"라고 강조했다. 

어쨌든 청와대가 김기춘 실장에게 정씨 감찰내용을 보고한 사실만은 인정한 것이다. 청와대의 주장대로 정윤회 감찰보고서가 '찌라시'라면 김 실장은 찌라시를 보고받은 셈이 된다. 기자들이 '행정관이 세간에 떠도는 풍설을 엮어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그게 비서실장까지 보고됐다는 얘기인가?'고 추궁해도 민 대변인은 고개만 끄덕였다. 참여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비서실장에게 보고되는 내용은 비서관 등이 다 검증한다"라고 전했다. 또다른 인사는 "국정원과 경찰, 국세청 등에서 보고가 올라오는데 그 가운데에는 근거없는 것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정윤회 감찰보고서가 김기춘 실장에까지 보고됐는데도 김 실장 등 청와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민 대변인은 "시중에 떠도는 근거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해 당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박근혜 정부 그림자 실세인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적시돼 있는데도 사실확인 작업에만 그친 것이다.

민 대변인은 "조사라기는 뭣하지만 확인은 했다"라며 "(문건에 등장하는 당사자들이) 근거가 없다고 이야기했고, (정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이 만났다는) 그 장소에 가본 적도 없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필요하면 그 장소에 가서 취재해보면 될 듯하다"라고도 했다. 정씨와 만났다는 청와대 인사들을 대상으로 사실확인 작업을 벌이긴 했지만 이들이 "근거 없다"라고 진술해 특별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정씨가 '교체대상'으로 지목한 김기춘 실장이 구두보고 받은 뒤 단순한 확인작업만 벌이고 감찰을 중단한 점도 석연치 않다. 정윤회 감찰보고서를 작성한 A행정관도 경찰로 원대복귀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은 감추어졌다. 여기에는 박근혜 정부 권력내부의 두 축으로 알려진 '박지만파'과 '정윤회파'의 권력암투가 작용했다는 등 뒷말이 무성하다.

공교롭게도 A행정관의 윗선인 조응천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은 박지만 EG 회장과 가깝다. 박 회장이 지난 1994년 히로뽕 투약 혐의로 구속됐을 때 그를 담당했던 검사가 조 비서관이었다. 조 비서관은 당시 비교적 가벼운 처분에 해당하는 '치료감호'를 법원에 요청했다.특히 박 회장이 지난해 정씨쪽으로부터 미행을 당했고, 이를 확인한 뒤 김기춘 실장과 민정수석실에 알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윤회#김기춘#박지만#조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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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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