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금광면 흰돌리마을에 사는 95세 오덕순 할머니. 오늘도 그 할머니는 아침에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랬다. 할머니의 딸 한영숙씨가 오기만을 기다린 거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딸을 기다리는 것은 '기다린다기보다는 기다려지는 것'일 게다.
"너 오지 마라"는 엄마의 속마음은?오늘(11월 27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영숙씨는 엄마가 사는 시골집을 찾았다. 이 마을에 들어오는 (1시간마다 버스 1대가 다님) 첫차를 타고 엄마 집에 출근(?)하는 셈이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다시 시골버스를 타고 안성시내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한다. 오후 9시나 되어야 직장에서 퇴근한다.
엄마는 딸을 보자마자 "너 오지 마라. 추운데 뭐 할라고 이렇게 일찍 온 겨"라며 걱정을 해준다. 매일같이 오는 딸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여기에 온다는 걸 잘 아는 엄마의 마음이다.
이런 엄마라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니가 오는지 안 오는지 아침에 몇 번이나 내어다본다"고 진심을 털어 놓게 되고, 그러면 엄마랑 딸은 한참을 웃는다. 이 말을 전해 듣는 나도 한참을 웃었다.
"엄마가 지금도 가을에 메주를 직접 쑤고, 깨와 콩 등을 직접 농사하세유. 얼마 전 제가 오기 전에 김장할 준비(배추 절이고, 마늘 까고, 양념 준비하고 등)를 혼자 다해 놓으셨더라고유." 손님 왔다고 세수하고 화장하는 할머니사실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아직 세수도 못혔어"라더니, 세수하러 나갔다. "평소 엄마가 세수를 정성껏 하신다"는 영숙씨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할머니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세수하고는 방으로 온다. 방에 들어와서는 화장품 크림을 바르신다. 손님을 대하는 할머니만의 예의인 게다.
"뭐 드려볼 게 없네. 딸! 감이라도 내와봐."엄마가 말하자 딸이 총알같이(?) 감을 가져온다. 홍시다. 시골 집 뒤편에 자라는 감나무에서 딴 감이 홍시가 되었다. 엄마가 또 말한다.
"그것도 맛있지만, 월하(감의 종류)가 더 맛있을 겨. 그것도 가져와봐."딸이 또 움직인다. 월하를 가져온다. 종전 홍시보다 좀 더 큰, 연한 주홍빛 감이다. 할머니 말 그대로 홍시보다 월하가 '딸이 다시 가져온' 만큼만 더 맛있다. 사실 홍시도 월하도 맛은 아주 죽인다.
"엄마가 17세(1936년), 아버지가 15세 때 두 분이 결혼 하셨어유. 가난하고 형제 많은 집에 시집 오셔서 평생 고생하셨쥬."헉! 결혼하신 년도도 놀랍지만, 할머니가 연상이라니. 요즘에야 연하의 남편과 사는 여성이 흔하지만, 그 시절에 연하남편이라니. 결혼하신 지 78년 세월이 흘렀다.
"이 시골집에 이사 온 그 해(17년 전)에 아버지가 74세 나이로 돌아가셨다"는 영숙씨의 말을 듣고 계산해보니 할머니는 76세에 홀로 되신 거다. 10년 전만 해도 이 집에서 영숙씨가 같이 살았고, 그 후로 영숙씨의 직장문제로 안성시내에 집을 얻어 나가 살고 있다.
"지금도 막걸리와 소주 한잔은 거뜬하게 해유"지금도 막걸리 한잔, 소주 한잔은 거뜬히 드신다는 할머니는 "어제는 지팡이를 짚고 혼자서 마을 한 바퀴를 다 돌아서 팔이 아팠다"고 하소연하신다. "잠시도 가만히 계시거나 드러누워 계시는 법이 없다"는 영숙씨의 증언이 장수의 비결을 말해주는 듯하다.
"엄마가 88세 때는 걸어서 덕유산 정상에 올라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 등산객들이 엄마의 등반을 환호하며 박수도 받았다"는 말을 하는 영숙씨는 괜히 자신이 박수 받았던 것처럼 신나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딸이 사는 아파트에 직접 찾아가고, 병원도 혼자서 잘 다니셨단다. "방문요양을 받으려고 해도 혼자서 모든 걸 다 잘하시니(단지 연세가 많다는 것뿐) 요양등급이 나오지 않아 안 되었다"는 영숙씨는 "엄마가 약하지 않아서 좋다"며 미소를 짓는다.
"95세가 되는 올해는 좀 다르더라. 기운이 좀 쇠해진 듯하다"며 영숙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밥도 가끔씩 태우시고, 음식도 짜게 만드시곤 하더라"며 올해부터 영숙씨가 매일같이 시골집에 오는 이유를 일러줬다.
왜 매일같이 엄마 집에 딸이 오나 봤더니영숙씨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엄마와 같이 생활하고, 자고 간다. "요즘은 날씨가 쌀쌀해 아침에 일찍 나오려면 귀찮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마치고 집에 가면 그렇게 가뿐하다"며 하얀 이를 드러낸다.
남들은 영숙씨를 '효녀'라는 세상의 이름으로 판단하지만, 사실은 "내가 엄마를 보살핀다기보다는 내가 엄마에게 더 기대는 것이 많다"고 귀띔해준다.
그랬다. 하루 이틀은 의무감으로 하겠지만, 매일같이 엄마 집에 아침을 먹으러 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엄마와 아침을 먹으면 자신도 밥맛이 좋다. 아직 처녀인 영숙씨에겐 하루 중 즐거운 시간이었던 거다.
"니가 없었으면 지금까지 건강하게 못 살았을 거"라는 엄마의 말은 딸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게다. "나는 자식이라도 있었지만, 니는 늙으면 어쩔지 걱정"이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아직 들을 수 있어 딸은 그저 고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