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노점상이라도 하는 건데 강남구청은 대화고 뭐고 없이 다 때려 부수려고만 하니까... 이거 안 하면 우리가 뭘 하고 살아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할 것 같으면 그냥 휘발유 뿌려버리고 같이 불 붙이고 싶어지는 거죠."27일 밤, 서울 강남역의 한 노점상. 자조 섞인 얼굴로 닭꼬치를 굽던 박규석(가명, 33)씨의 표정이 손님이 오자 밝게 바뀐다. 그는 너스레까지 떨며 "소금구이와 매운맛 중 뭘로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손님들은 눈치 못 채지만 박씨의 닭꼬치 마차 지붕 위에는 소형 소화기와 반 쯤 채워진 20리터짜리 휘발유통이 묶여 있다. 지난 10월부터 강남대로 노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강남구청의 행정대집행이 격렬해지자 지난 11월 초 박씨가 설치한 것이다.
박씨는 "처음엔 마차를 부수는 등 과잉 단속을 하는 용역 직원들을 향한 시위용으로 (휘발유통을) 설치했는데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부수니까 요즘은 정말 '휘발유 한 번 붓고 불 붙여볼까'하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선거 때면 노점상에 와서 '힘내십쇼' 하면서 웃는 얼굴로 음식 '먹방' 찍던 사람들이 이제는 무조건 다 찍어내려고 한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강남역 인근, 유동인구 많지만 손님은 적어"최근 강남구청과 노점상들은 강남역 인근 강남대로에서 두 달 넘게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노점 상인들은 생존권을 이유로 '강남대로에 25개 노점 운영을 인정해 달라'는 입장이다. 반면 강남구청은 원칙적으로 노점상 불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철제 점포를 뜯어내는 등 구청의 강제 단속이 심해지자 노점상들은 영업을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뭉쳤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소속인 박씨도 두 달 전 새 마차(노점용 점포)를 사서 부천역에서 이곳으로 영업장을 바꿨다.
불시 단속에서 점포를 지키기 위해 그와 동료 노점상들은 지난 10월부터 영업이 끝난 마차 바닥에 스폰지를 깔고 잤다. 기온이 떨어져 마차 안에서 자기 어려워진 11월 초부터는 숙식용 컨테이너 박스까지 설치했다.
박씨는 "컨테이너 박스 안에 가스 난로 하나 켜놓고 다같이 자다가 구청 용역들이 닥치면 나가서 싸우는 식"이라면서 "잠을 제대로 자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씻는 건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몰래, 옷은 속옷만 간신히 사서 갈아 입는다. 그는 "빨래방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아 20일 전에 양말 20켤레를 샀는데 그것도 다 떨어져서 또 사야한다"고 웃었다.
강남구청 측은 노점상들이 이렇게 강하게 버티는 이유를 높은 노점 순수익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강남대로 노점상들은 대부분 2개 이상 노점을 운영하는 기업형이라 생계와는 무관하고 높은 유동인구 탓에 한달 순수익도 1000만 원 이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주변은 한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상가뉴스레이다'의 올해 조사에 따르면 이곳에는 하루 평균 13만5595명의 오간다. 특히 강남대로변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그러나 박씨는 강남구청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유동인구는 많지만 실제 손님은 소수라는 것이다. 박씨는 "우리가 돈에 쪼들려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많이 벌지도 않는다"면서 "그냥 일한만큼 가져간다"고 설명했다.
누구 말이 맞을까? 기자는 27일, 박씨가 닭꼬치 영업을 시작한 오후 5시 30분부터 영업이 끝나는 오후 11시 8분까지 점포 옆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판매량을 전수조사했다. 박씨는 원래 낮 1시부터 밤 12시까지 '12시간 근무'를 하지만 최근에는 노점상 집회 등에 참석하느라 '단축근무'를 하고 있다.
2000원짜리 닭꼬치 원가는 800원... 어묵은 380원박씨는 닭꼬치 공장과 어묵 공장에서 물건을 떼와 조리 후 판매한다. 미국산 닭다리살 다섯 점이 꿰어져 있는 2000원 짜리 닭꼬치의 원가는 800원 정도. 개당 1000원인 어묵의 원가는 380원이다. 그는 "아주 많이 팔리면 닭꼬치 1박스(100개) 정도 나간다"고 설명했다.
박씨가 가스 스토브 위에 놓인 스테인레스 불판에 닭꼬치를 올리자 금세 고기굽는 냄새와 함께 연기가 올라왔다. 그는 고기를 구우면서도 이따금씩 마차 밖으로 나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 시간에도 용역들이 몰려와서 마차를 부수려고 한 적이 있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박씨의 닭꼬치 마차는 가로 2.7m, 세로 1.5m, 높이 약 2.3m의 직육면체 모양이다. 손님과 접촉하는 옆면은 미닫이 형식으로 걷어올릴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벽 지지대가 일부 부러져서 긴 나무 각목으로 대신 받쳤다. 그는 나무 각목을 가리키며 "손님들이 닭꼬치를 먹고 있는데도 용역들이 들이쳐서 마차를 들고 흔들어 저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업 개시 이후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인 저녁 7시 30분까지 팔려나간 닭꼬치는 총 36개. 3분에 1개 꼴이다. 박씨는 쇠솔로 불판 청소를 하면서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계속 눈을 맞췄다. "주인이 고개숙이고 핸드폰이나 보고 있는 노점에는 손님이 안 온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후 8시가 넘으니 손님 빈도는 더 떨어졌다. 박씨는 "이 시간에는 원래 이렇다"면서 "잠시 후 오후 10시 학원 끝날 시간 쯤에 사람들이 또 온다"고 말했다.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닭꼬치는 구운 지 오래되면 퍽퍽해져 팔 수 없는데 그런 걸 먹는다"고 말했다.
"외국 관광객 때문에 노점 불가? 외국인들이 더 좋아해"오후 8시 30분 쯤 흑인 두 명이 마차로 들어왔다. 그들은 닭꼬치를 가리키며 "No pork. Chicken?(닭이 맞느냐?)"라고 연신 질문을 던졌다. 박씨가 손짓 발짓으로 주문을 받고 꼬치를 건내자 맛을 본 외국인 둘이 연신 감탄을 터트린다.
기자가 "good taste?(맛있나?)"라고 짧게 묻자 한 흑인이 엄지를 치켜들며 "good"이라고 답했다. 박씨는 "가끔 태국 관광객들을 데리고 다니는 가이드들이 단체로 사가 먹일 때가 있다"면서 "강남구청은 외국 관광객 때문에 노점은 더욱 불가라고 하는데, 오히려 외국인들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오후 9시 30분이 지나자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몇몇 손님은 박씨와 짧은 대화도 나눈다. 단골 손님들이다. 오후 10시 30분까지 한 시간 사이에 닭꼬치 23개와 어묵 20개가 팔렸다.
오후 11시. 백팩을 멘 40대 회사원 한 명이 닭꼬치를 주문했다. 박씨는 그에게 주문을 받으며 마차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저 손님은 야근 끝나고 퇴근하면서 꼭 들러 한두 개씩 먹고 가는 분"이라면서 "경험상 저 분 오시면 그 뒤로는 더 올 사람(단골손님)이 없다"고 설명했다. 박씨가 잠시 마차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이 닭꼬치와 오뎅을 한 개씩 먹은 단골손님은 기자 앞에 3000원을 내려놓고 7호선 신논현역 방향으로 사라졌다.
이날 박씨가 판매한 닭꼬치는 총 104개. 어묵은 42개였다. 매출로 계산하면 25만 원, 순익은 15만 840원이다. 박씨가 한 달에 하루이틀 빼고는 계속 일한다는 점을 감안해서 기계적으로 계산하면 월수익은 450만 원 정도다.
물론 박씨가 장사를 하면서 지불하는 모든 비용을 포함한 계산은 아니다. 노점을 하면서 내는 각종 범칙금은 빠졌다. 박씨는 "요즘은 주차 딱지를 이틀에 한 번씩 끊고 있다"면서 "주차위반 과태료와는 별개로 마차 뺏기면 7만~40만 원 정도 벌금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루 매출은 25만 원, 순이익은...이날 강남역의 저녁 기온은 영상 7~8도 안팎이었다. 이전에는 춥다고 느껴보지 못했던 날씨였지만 마차 옆에서 6시간 가량 앉아 있으니 신발 바닥으로 초겨울 한기가 올라왔다. 박씨는 "가장 힘든 게 추위인데, 그래도 겨울만큼 노점 먹을거리가 잘 팔리는 때도 없다"고고 말했다. "여름은 뭘 팔든 매출이 겨울 절반 이하"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버는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많은데 직접 노점을 하는 사람은 못 봤다"며 웃었다. 그는 "하루 평균 12시간씩, 철거 위협을 받으며 야외에서 쉬는 날 없이 일하는 노점상들의 사정을 감안했을 때 수입이 많다고 하긴 어렵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지금 노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점 말고는 할 게 없는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박씨는 신경계 장애를 가진 5급 장애인이다. 그는 "사고로 다치면서 팔이 저려서 무거운 걸 못 드는데 그런 것만 아니었으면 나도 평범한 일을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씨는 강남구청과 대화를 희망한다. 노점상은 원칙적으로 불법이지만 관할 구청이 허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노점상들은 1년 단위로 갱신하면서 도로점용허가를 받고 도로 사용료를 내면 된다.
그는 "노점을 허가하고 우리도 세금 내면 모두가 좋지 않느냐"면서 "노점 그만두면 빌어먹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들을 무조건 쫓아내려고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