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겨울, 따뜻한 남자 김근태가 다시 돌아왔다. 추모 3주기로 작년의 공연에 이어 올해는 전시회로 구성했다. 11명의 작가가 '근태생각'을 하고 '생각하는 손'이라는 주제로 다채롭게 풀어놓았다. 김근태가 품었던 노동과 경제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마음에 촛점을 맞춘 탓에 현실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 4일 개막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의원, 김근태재단이사장 인재근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서울문화재단 김정헌 이사장 등 정계와 문화예술인 300여 명이 전시장을 가득 메워 김근태 3주기 추모전을 축하했다. 문재인 의원은 이 날 추도사로 "가장 가슴 아픈 추억은 '2012년을 점령하라'고 했던 말씀을 지키기 못했던 것, 이기는 정당, 지지않는 정당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하나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당신이 다하지 못했지만, 당신의 생각이 아직도 유효하다김근태재단이사장 인재근 의원은 인사말에서" 딸아이와 함께 미술관 가는 것을 좋아 했다. 아빠의 방을 이 잡듯 뒤지고, 저의 기억을 헤집는 딸아이 덕분에 좋은 기억을 다시 떠 올리게 되었다. 당신이 다하지 못했지만, 당신의 생각이 아직도 유효하고, 김근태의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출품하고 전시를 조직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답했다.
박계리 큐레이터는 "근래 우리는 보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일해야 할 손들이 멈추면 사회가 천천히 가라 앉을 수 있다는 공포를 경험하였다. 우리는 생각하면서 작동하는 노동자의 손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인들은 김근태가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면서 따뜻한 시장경제론을 화두로 삼은 점에 주목하며 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작업해 온 작업과 회화, 판화,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영역의 작품들로 구성했다" 고 작가 선정기준을 밝혔다.
삶과 예술은 원래 하나였다. 문화, 예술이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모든 방향에서 달려와 만져보고, 꼬집어 보고, 껴안아 보는 일이다. 김근태는 낮고 그늘진 곳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빛을 쪼이며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려 했으며 그런 점에서 예술적 마음을 지닌 정치인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그늘진 곳에 한 사발 막걸리 같은, 따스한 햇살같은, 한자루 칼 같은 정신으로 작업 해 온 작가들의 작품들을 유기적 공간연출로 보여 주어 신선한 감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임민욱 작가는 추모전 개막 퍼포먼스에 '등대지기' 노래를 함께 불러 퍼지게 했다. 얼어 붙은 달그림자 물결위에 자고/ 한겨울에 거센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임 작가는 김근태가 좋아했던 노랫말에 담긴 따뜻한 마음과 외로움을 먹지에 쓰는 동안 함께 노래를 하고, 등신대 크기의 구리판 뒤에서 불을 지펴 반대쪽에 생기는 무늬로 따스한 소통을 살리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다.
김근태, 민주주의 선언만 한게 아니라 실험하고자 했다- 여성·노동·생명을 주제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주의 작가 정정엽은 김근태 초상을 그렸다. 개막식날 미니 인터뷰를 했다. <여보, 하느님이 잘 해주셔?>는 어떻게 그리게 되었나?"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한 줄 메모를 했다. '민주주의란 선언하고, 실험하고, 가꾸는 것' 라고 썼다. 그러고 나서 떠올린 사람이 김근태였다. 그 때 마침 인재근씨가 김근태 추모 1주기 인터뷰 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 글에서 인재근씨가 한 말 이 '훅' 다가왔다. '여보, 진짜 간거야?, 하느님이 잘 해 주셔?' 이어서 바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럼 당근이지'. 이 때 인재근 의원이 한 말을 그대로 김근태 초상의 제목으로 붙인거다."
- 김근태 초상을 그리면서 든 느낌이 있다면?"김근태는 민주주의를 선언한 이유로 감옥에 다녀왔다. 나는 그의 이후의 행보에 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민주주의를 선언만 한게 아니라, 실험하고 가꾸고자 노력했다. 그가 정계에 들어선 것도 민주주의를 가꾸고자 한 노력이었다. 그와 일면식도 없지만 전시 기획자가 김근태의 서재를 정리하다 오래 된 제 첫 작품전 팜플랫을 보관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놀라웠다. 그가 민주주의 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가꾸려 한 정치인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고 그와 함께 할 수 있어 기뻤다."
이윤엽 파견미술가는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작업하며, 이들이 '생각하는 손'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함께 해왔다. <노동자는 올빼미가 아니다>는 철야 작업을 거부하며 시작된 유성기업 파업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대형 목판 작품이다. <까마귀>는 다리가 땅에 뿌리 박혀 날지 못하고 있는 형상을 짙고 굵은 먹선으로 떠 낸 목판이다. 까마귀는 신과 소통하는 신통한 능력과 죽음을 암시하는 불길함을 가진 새이지만. 날지 못하는 까마귀를 통해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고 있다.
김진송 목수는 재료에서 쓰임의 문제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예컨데, 의자란 본디 그루터기였고 그루터기가 의자였다. 예술과 산업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우리사회 제작 시스템의 문제점과 그로 인해 막혀버린 인간의 상상력에 대해 반문한다. 작가는 쓰임만으로 작동되는 제작 방식이 자연을 파괴히고 노동 착취가 시작됨을 경고하는 뜻이 담긴 목가구와 움직이는 목각인형들을 출품했다.
심은식은 시민들의 모금으로 제작비를 마련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코란도 자동차를 재조립해 낸 희망지킴이의 <쌍용차 해고노동자 자동차를 만들다, H-20000 프로젝트>를 기록영상으로 보여준다. 중국 자본의 개입으로 부당 해고 당한 노동자들의 싸움이 7년을 향해 달려가던 지난해, 손끝의 기억으로 동료들과 함께 코란도 자동차를 만들어 냈다. 부품을 조립하는 단순반복의 손이 아니라 자동차의 전과정을 온전히 완성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화면에 담았다.
콜트콜텍 노동자밴드(콜밴)는 악기제조회사 '콜트 콜텍'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결성한 밴드이다. 2006년부터 시작된 이들의 싸움에는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하였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이면서 밴드를 하는 음악인 콜밴도 탄생하였다. 이번 전시에는 농성 도구로 만든 설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그 과정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생각하는 손'은 김근태의 따뜻한 시장경제론을 예술과 문화를 통해 확장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1여년의 섬세한 기획을 통해 관례적인 추모 전시의 틀을 깨고 '정치와 노동'이 어떻게 예술과 융합될 수 있는 지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전시다. 또한 전시 주제와 같은 제목으로 '생각하는 손'(보리출판사) 책도 펴냈다. 작가 인터뷰를 통해 작품 세계와 작업 과정을 생생하게 엮어 놓았다. '김근태가 인재근에게 쓴 연애편지'와 '따뜻한 시장경제'에 대한 글도 친절하게 싣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전 시 명 : 고 김근태 3주기 추모전 <생각하는 손>
전시기간 : 2014년 12월 4일(목)~12월 21일(일) (10:00-19:00) 휴관없음, 무료
전시장소 :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갤러리문
전시기획 : 박계리(한국전통문화대 교수, 미술평론가), 구정화(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 김병민(근태생각 기획위원)
참여작가 : 정정엽, 이윤엽, 이부록, 김진송, 배윤호, 심은식, 전소정, 임민욱, 리무부 아키텍쳐,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밴드, 옥인콜렉티브의 작품 40여점
후 원 : (재)서울문화재단, ㈜문화유통북스
주 최 : 근태생각 (재)김근태의 평화와 상생을 위한 한반도재단(김근태 재단)
문 의 : 02) 720-9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