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
필요한 물건이 생겼다. 근처에서 구하기가 어려워 컴퓨터 앞에 앉아 전원 버튼을 누른다. 구글 창을 열어 물건 정보를 검색해 본 후 쇼핑몰에 들어가 내가 필요한 물건을 고른다. 가격도 비교해보고 물건의 품질도 꼼꼼히 따져본 후 물건의 옵션을 선택하고 배송지를 입력한다. 물건의 발송지가 꽤나 멀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인터넷 주문은 세계 어디든 가능하게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카드 번호를 입력하고 '결제' 버튼을 누른다. 이제 주문 번호로 배송 추적을 하며 배송지로 물건이 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필요한 것은 물건이 올 때까지의 약간의 인내심뿐이다. 그가 결제한 금액은 3000만원. 그는 인도로부터 구글 베이비 (Google Baby)를 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존재했'었'다. 우리는 그런 사랑, 행복, 양심, 시간 같은 가치들을 초물질적(超物質的) 가치로 소중히 여겨 왔고, 존엄한 사람의 생명 역시 당연히 그 범주에 포함되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점점 고도화되며 돈의 권력도 점점 쌓여갔고 시장을 움직이던 '보이지 않는 손'은, 이전에는 돈으로 살 수 없던 것들도 움켜쥐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변모했으며, 우리 사회의 아웃소싱(outsourcing)의 개념은 어느 덧 경제적 개념의 범주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어느 때 보다 넓은 범위의 '사회적 아웃소싱'을 경험하고 있다. 이전에는 가족의 사랑으로 함께 만들어가던 가족 행사는 파티플래너의 행사로, 사친이효를 실천하던 자녀는 노인 돌보미로, 심지어 함께 슬픔을 짊어지고 가던 지인들은 문상객 대행업체로 변했고, 차가운 자본주의 시장의 고리가 되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직업군이 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과열된 '사회적 아웃소싱'으로 아이를 낳는 부모의 역할마저, 마치 기업이 경영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 경영의 일부를 위탁 처리 하는 것처럼, 돈을 필요로 하는 대리모들에게 생명을 아웃소싱 하는 모습은 단순한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라고 보기 어렵다.
누군가는 돈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아이가 필요하다. 물건을 파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 존재할 때 시장이 형성되듯이, 이런 상호 필요 관계에 의한 대리모 시장의 형성은 어쩌면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이면에 큰 사회적, 윤리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사회의 그림자일 뿐이다. 우선, 이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단순한 돈의 흐름으로만 연관 지어 태어나는 아이의 존엄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순전히 부모의 취향에 의해 아이를 만드는 것은 아이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의한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최고 존엄성을 가지는 인간의 탄생을 돈의 범위에 가두는 것은 아이를 물질화 하는 것으로 임신 과정에서 장애나 신체적인 문제가 있는 아이의 경우는 심지어 주저 없이 낙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친부모와 대리부모의 관계는 훗날 아이를 큰 정서적 혼란 속에 빠뜨릴 수도 있다. 또한, 이런 구글 베이비는 여성을 단순히 구매자의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화 혹은 도구화 하여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존엄하다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최고 존엄성의 가치를 무시하는 행위이다.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야 한다.
구매자들은 이러 행동은 비단 이 여성들의 난자만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초물질적 가치인 여성의 신체와 9달의 시간, 9달간의 자유, 9달간의 선택을 물질화 하여 구매하는 것이다. 이 여성들은 강제로 본인이 9달 간 품었던 아이로부터 유대감을 형성하지 않아야 하며, 구매자의 요구에 따른 생활을 해야 한다. 이들은 모두 우리가 거래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 '물건'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으며, 모두가 동등한 선상에서 평등하고 존엄한 인간 사이에 있을 수 없는 거래이다.
물론 이런 새로운 시도가 자연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입양이라는 선택이 존재하며, 설령 이런 일이 그들을 위한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더라도 인도처럼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런 일을 '장려'하는 것은 결코 단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의 행복'을 선물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없다.
생명의 탄생에 대한 아웃소싱이 계속 진행될 경우, 우리의 생명은 돈에 의해 지배당하게 될 것이며 존엄성 경시 풍조의 형성은 또 다른 사회적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당신의 클릭으로 태어난 아이, 부모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이, 혹은 당신이 가슴으로 낳은 아이의 가치. 미래 우리는 이런 물음을 맞닥뜨리게 될 지도 모른다. 당신의 아이는 얼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