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의 가슴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나서 아무도 날 찾지 않을 때까지 살다 가지/ 내겐 작은 꿈이 있어 그대 여린 가슴에 들어가 그대 지치고 외로울 때 위로가 되려해/ (중략) / 한땐 나와 나의 동료들은 거친 세상에 맞서 싸우던 사람들의/ 분노가 되고 희망이 되어 거리에서 온 땅으로 그들과 함께 했지/ 그땐 그대들과 난 아름다웠어 비록 미친 세월에 묻혀 사라진다 해도 / 다시 한 번 그대 가슴을 펴고 불러준다면 끝까지 함께할 테요.(노래패 꽃다지 4집 '노래의 꿈')'민아리' 김태은(40) 회장을 만났다. '민아리'는 '민중가요 동아리'의 약칭이다. 그러나 속을 더 들여다보면 '민(民)+앓이(가슴앓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단다. 백성들의 가슴앓이를 우리들의 노래로 다른 사람들과 풀어내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 '노래의 꿈'은 요즘 김 회장이 민아리 회원들에게 추천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곡이다.
갈증과 허전함 채우는 민중가요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 소속 동아리인 '민아리'는 작년 10월에 만들어졌다. 회원 16명이 구성했다.
"문화바람 산하에 있는 통기타 동아리나 합창단 등에서 활동하던 사람들도 있고, 회원을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사람도 있어요. 모여서 기타치고 노래 부르는 건 좋은데 뭔가 해소되지 않는 허전함을 느꼈는데, 민중가요를 부르는 동아리를 만들자는 제안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많은 사람이 호응해줬죠."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하고 있는 '민아리'에는 대학시절 노래패에서 활동한 사람도 있고, 1980년대 사회민주화를 겪으며 대학시절을 보낸 사람도 있다. 주변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이른바 '민중가요'는 지금도 그들의 삶에 간직돼있다.
김 회장은 "처음엔 걱정했어요. 이 노래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생각했는데 노래를 부르다보니 노랫말이 아주 좋아 곱씹게 된다고 하더라고요"라며 "일하면서 하루종일 이 노래들을 틀어놓는다는 분도 계시다니까요"라며 민중가요의 좋은 점을 한동안 얘기했다.
위키백과에서는 민중가요(民衆歌謠)를 '저항노래'라 규정하며 '사회운동에서 불리는 노래를 총칭하는 표현. 투쟁가, 민가 등으로도 불리며 노동운동, 통일운동, 인권운동, 정치운동 등 주제별로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저한테 민중가요는 삶을 노래하는 노래예요. 살아가는 모습은 누구나 다르잖아요. 누구는 집회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하루하루를 힘들게 월급 받고 눈치 보며 살기도 하죠. 그런 이야기가 녹아있는 노래가 민중가요라고 생각해요."친구 생일에 부른 '전화카드 한 장'에 모두 울컥
김 회장은 고등학교 때 학내 독서토론모임을 통해 다른 학교 학생들을 알았고 방학 때 그들과 교류했다. '계절학기'란 이름으로 진행된 프로그램 중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가 있었는데, '단결투쟁가'라는 노래를 고등학생 입장에서 바꿔 부른 가사가 지금도 기억난다고 했다.
"'동 트는 새벽 밝아오면 보충수업 또 받네. 잠 못 잔 두 눈 비비고 뜨면 오늘도 학교로 향한다'라는 내용이었는데, 우리의 얘기를 노래로 불러 참 재밌었던 거 같아요. 원곡도 들어봤는데 거부감이 전혀 없었어요. 삶의 현장은 다르지만 치열함은 같다고 느꼈어요."덧붙여, 결정적으로 민중가요의 힘을 느낀 경험을 들려줬다.
"고교 3학년 때, 친구 생일잔치를 했어요. 모인 사람들이 한마디씩 덕담을 하며 노래를 불렀죠. 그 당시 꽃다지의 '전화카드 한장'이라는 노래가 유행했는데, 제가 잘 부르진 못하고 그냥 덤덤하게 불렀죠. 근데 모인 사람들이 모두 울먹거리는 거예요. 생일을 맞은 친구도 울고 노래 부르는 저도 울컥했어요. 아, 이게 노래구나. 민중가요라는 게 이런 거구나. 소름이 끼쳤어요."대학에 입학해서도 지연스레 민중가요 노래패에 들어갔다. 졸업 후 취업했지만 노래에 대한 그리움으로 '꽃사람(꽃다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안에 있는 노래 소모임 활동을 하다가 노래가 더 좋아져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노래 부르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꽃다지'에 합류했다. 그러나 가정형편으로 다시 생활전선에 서야했다.
좋은 노래를 나누고 전하는 '민아리' 되고파오는 12월 13일 오후 7시, 시민문화살롱 '바람이 머무는 곳'(인천지하철1호선 간석오거리역 근처)에서 '민아리'의 첫 번째 공연인 송년콘서트 '겨울 그리고 사랑노래'가 열린다.
"'노래의 꿈'이라는 노래를 이번 공연에서 부를 거예요. '민아리' 회원들에게 이 노래를 틀어주면서 노래와 얽힌 사연을 얘기했더니, 언니 한 명이 울더라고요. 노래가 정말 좋다고, 이런 노래가 있었냐고요. 사실이 노래도 오래 전에 나왔는데,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좋은 노래를 사람들한테 소개해주는 것도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작년 연말에 '민아리' 회원들은 송년회를 했다. 새벽까지 노래 부르며 놀다가 다음 송년회는 송년회라는 이름을 빌어 노래를 부르고 싶고, 듣고 싶은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자는 한 회원의 제안에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이번 송년콘서트를 마련했다.
"정식으로 갖춰진 공연이라기보다는 그냥 함께 어울리는 자리로 만들려고 해요. 민중가요를 아는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 가슴을 적시는 노래로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는 힘이 나는 계기가 됐으면 하고요.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공연에서 실수하더라도 우리가 즐기자고 회원들한테 얘기했어요. 즐거운 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콘서트 하는 날 눈이 오면 좋겠어요. 참 예쁠 것 같아요."부르다 보면 자기 모습이 보이는 노래'민아리' 회원들에겐 이번 공연을 준비한 또 다른 사연이 있다. 문화바람에서 함께 하고 있는 동아리 회원들 중에는 '민아리는 무서운(?) 곳'이라는 선입견이 있단다.
"우리도 댄스와 발라드 장르의 노래도 하고,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이른바 대중가요도 많이 불러요. 그런데 '민중'이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견으로 제대로 우리의 노래를 봐주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들에게 '민아리'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보여주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의미도 있어요."'민중가요'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시사인천> 독자들에게 해줄 한마디를 청했다.
"사랑으로 울고 웃을 때는 그런 내용의 노래가 와 닿듯이, 고단한 삶을 겪으며 언덕 길을 터벅터벅 올라가면서 부르고 싶은 노래도 있잖아요. 그런 내용의 가사가 있는 게 민중가요인데 사람들은 투쟁가요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노래를 접하다보면 가사에서 자기 모습이 보일 때가 많아요. 하지만 분명한 건 민중가요는 감정을 소모하는 노래는 아닙니다. 힘들 때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서 한바탕 펑펑 울고 나면 힘이 생기는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