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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산에서 바라본 지난시의 모습 산둥성의 성도(省都)인 지난은 제로(齊魯)문화를 대표하는 으뜸 도시이자 황허 하류의 중심 도시이다.
천불산에서 바라본 지난시의 모습산둥성의 성도(省都)인 지난은 제로(齊魯)문화를 대표하는 으뜸 도시이자 황허 하류의 중심 도시이다. ⓒ 김대오

중국 지난(濟南) 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변방에 머무는 이는 늘 중심을 동경하기 마련이다. 산둥성의 성도(省都)인 지난의 모든 것이 왠지 좋아 보이는 착시현상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기차로 네 시간 넘게 걸리는, 차량 번호판이 '(노큐)魯Q'로 시작되는 린이(臨沂)에서 왔으니 오죽하겠는가.

산둥성의 차량 번호판은 노(魯, BC1046~BC256)나라 노(魯)로 시작한다. 다음에 오는 영어 알파벳이 각 도시를 나타내는데 A가 바로 성도 지난(濟南)이고, 칭다오(靑島)가 B, 춘추오패 중의 하나였던 제(齊, BC1046~BC221)나라 수도 쯔보(淄博)가 C, 짜오좡(棗莊)이 D순이다. 어쩌다 중국 물류의 중심지 린이는 맨 마지막 Q를 부여받았는지, 지난의 자동차들은 모두 A학점을 받은 학생들처럼 당당해 보인다.

지난은 원래 지쉐이허(濟水河)라는 물줄기 남쪽에 위치해서 지난이란 이름이 생겼다. 지금은 그 물줄기가 황허(黃河)로 이어져 황허의 남쪽이 되었다. 지난은 제로(齊魯)문화를 대표하는 으뜸 도시이자 황허 하류의 중심 도시로 역사가 깊고,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지역이다.

화타와 함께 전설의 명의로 꼽히는 편작의 고향이기도 하다. 또, 조조, 이백, 두보, 소식, 조맹부 등이 관직 생활을 하거나 글을 남기며 지난과 인연을 맺었다. 그래서 산둥 사람들은 흔히 "모든 신은 타이산이 있는 타이안에 다 있고, 모든 인재는 지난에 다 있다(泰安州人全, 濟南府人全)"고 말한다.

천연적으로 솟구치는 샘물로 유명

대명호의 모습 ‘샘의 도시’ 지난에는 100여 개의 샘물이 솟아 도시를 휘둘러 흐르는데 그 물줄기가 모여 이룬 호수가 바로 대명호이다.
대명호의 모습‘샘의 도시’ 지난에는 100여 개의 샘물이 솟아 도시를 휘둘러 흐르는데 그 물줄기가 모여 이룬 호수가 바로 대명호이다. ⓒ 김대오

"그래도 인구는 린이가 610만 지난보다 두 배 많아!"하고 스스로 위로하며 발길을 대명호(大明湖)로 향한다. 지난은 '샘의 도시'로 불릴 정도로 천연적으로 솟구치는 샘물로 유명하다. 지난시에만 100여 개의 샘물이 솟아 도시 전체에 흐르는데 그 물줄기가 모여 이룬 호수가 바로 대명호다. 바다가 온갖 냇물을 받아들인 것이라면(海納百川) 대명호는 모든 샘물이 모여 흐르는 중천회류(衆泉匯流)인 셈이다. 그래서 가뭄에도 호수의 물이 마르지 않고, 홍수에도 물이 크게 불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대명호의 남문 축축 늘어진 버드나무가 가늘고 긴 손을 노랗게 흔들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대명호의 남문축축 늘어진 버드나무가 가늘고 긴 손을 노랗게 흔들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 김대오

비가 잦아들고 대명호의 남문으로 들어서니 축축 늘어진 버드나무가 가늘고 긴 손을 노랗게 흔들며 반갑게 맞이해 준다. 늦가을, 노랗게 물들인 긴 머리카락을 물가에 닿을 듯 말 듯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가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는다.

수나라 양제가 경항운하(京杭運河,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약 1,794㎞의 물길)를 건설하고 그 운하가로 버드나무를 심는 사람에게 비단 한 필을 주며 버드나무 길을 조성해 '수양버들'이라고 불린다는데, 어쩜 수 양제가 이런 버드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했던 것은 아닐까.

버드나무와 연꽃의 사랑이야기 버드나무는 줄기를 늘어뜨려 연꽃을 향하고, 연은 진흙 속에서도 꽃대를 올려 버드나무와 손을 잡으려고 한다.
버드나무와 연꽃의 사랑이야기버드나무는 줄기를 늘어뜨려 연꽃을 향하고, 연은 진흙 속에서도 꽃대를 올려 버드나무와 손을 잡으려고 한다. ⓒ 김대오

잎과 꽃을 떨구지만, 앙상하게 남은 연꽃이 맑은 물속에 쓸쓸히 남아 늦가을의 정취를 더 한다. 버드나무는 지난의 시수(市樹)이고 연꽃은 시화(市花)인데, 지난 사람들은 버드나무와 연꽃에 이런 이야기가 서려 있다고 믿는다.

대명호 호숫가에 살던 한 남녀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돈 많은 관리가 여인의 미모에 반해 첩으로 데려가 버렸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살던 대명호로 도망와 자결하여 연꽃으로 피어났고, 그녀를 기다리던 남자는 호숫가에 버드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버드나무는 줄기를 늘어뜨려 연꽃을 향하고, 연은 진흙 속에서도 꽃대를 올려 버드나무와 손을 잡으려고 한다는 얘기다.

버드나무 류(柳)와 머물 류(留)의 발음이 같아서 사랑하는 남녀가 작별할 때, '내 마음은 남기고 간다'는 의미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주었다고도 한다. 대명호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버드나무가지를 둥글게 공처럼 만들어 가져가기에 물었더니 발 마사지용으로 효과가 좋다고 한다.

바람이 보이나요? 지난8경 중의 하나인 역하정에 부는 가을바람(歷下秋風)이 느껴진다.
바람이 보이나요?지난8경 중의 하나인 역하정에 부는 가을바람(歷下秋風)이 느껴진다. ⓒ 김대오

역하정(歷下亭) 두보에 시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유구한 대명호의 명물이다.
역하정(歷下亭)두보에 시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유구한 대명호의 명물이다. ⓒ 김대오

지금은 인공호수도 많지만 고대인들에게 자연적으로 샘이 솟아 이뤄진 대명호는 그 자체로 신비로운 세계였으며 경외와 감탄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호수 안에 섬이 있고 그 안에 또 호수와 정자가 있는 아름다운 풍경에 당대의 시인 두보는 '배리북해연력하정(陪李北海宴歷下亭)'이라는 시를 남겼다. 대명호에 떠 있는 섬 중에 가장 큰 섬에 있는 '역하정'이라는 정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묵객들의 사랑을 받아 왔는지 알 수 있다.

이밖에도 원대에 건립된 도교묘우(道敎廟宇), 청대에 세워진 철공사(鐵公祠), 추류원(秋柳園) 등이 호수 주변으로 멋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항저우의 서호(西湖)에 소동파와 백거이가 쌓은 제방인 소제(蘇堤)와 백제(白堤)가 있다면 대명호에는 북송시대 유명한 문인이던 증공(曾巩)이 지난에 부임하여 쌓은 증제(曾堤)가 있다.

이 제방에도 어김없이 둥근 아치형 교량이 있으니, 그 아래로 배들이 지나다니고, 또 반원형 교각은 물에 비친 나머지 절반과 동그라미를 이뤄, 풍류객들로 하여금 달이 그 동그라미 안에 비춰 들어오길 술잔과 함께 애타게 기다리게 했을 것이다.

대명호 안내 표지판 대명호 전체를 한 바퀴 도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단오 때는 이곳에서 용선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대명호 안내 표지판대명호 전체를 한 바퀴 도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단오 때는 이곳에서 용선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 김대오

지난8경 중 3경이 대명호와 관련이 있는데, 바로 역하추풍(歷下秋風, 역하정에 부는 가을바람), 명호범주(明湖泛舟, 대명호의 뱃놀이), 회파만조(匯波晩照, 대명호의 파도에 비치는 저녁노을)이다.

호수 주변으로 태극권, 재기차기, 유력구(柔力球)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걸음을 옮길 때마다 호수와 버드나무가 모습을 바꾸며 다채로운 절경을 연출해낸다. 연둣빛, 노란빛으로 물든 버드나무는 바닥을 수놓고, 호수를 물들이며 비에 젖은 만추의 풍경을 한껏 아름답게 한다.

호수의 남동쪽에 우뚝 솟은 초연루(超然樓)를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오니 대명호가 바로 아래 한눈에 들어온다. 과연 지난의 진주 대명호는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어둠에 묻혀 더 이상 대명호의 절경을 볼 수 없게 된 두보는 "지는 해를 장차 어이 할꼬(落日將如何)"라고 탄식했지만, 조명을 두른 대명호의 야경은 또한 신비로운 자태로 그윽한 정취를 뿜어내고 있다. 

대명호의 야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대명호의 야경은 신비스런 자태를 뿜어낸다.
대명호의 야경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대명호의 야경은 신비스런 자태를 뿜어낸다. ⓒ 김대오



#지난#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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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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