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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 중에서 성격이나 매너 같은 요소는 빼고 외모로만 점수를 매긴다면 누가 높은 점수를 받을까.

외모를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작품 속에서 작가가 묘사하는 부분에만 의존해야 하니 한계는 있을 것이다. 우선 떠오르는 인물은 반 다인이 창조한 탐정 '파일로 반스'다. 친척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백수' 파일로 반스는 180cm의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 패션 감각도 좋아서 항상 최신의 고급 옷을 걸치고 있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뛰어나게 잘생긴 얼굴'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 다음으로 떠오르는 탐정은 앨러리 퀸, 아치볼드 맥널리다. 이 둘은 아버지 집에 얹혀 살고 있는 노총각들이다. 그렇지만 별다른 돈 걱정없이 생활하고 사건 수사에 참여하며, 옷차림에도 많이 신경쓰는 인물들이다. 붙임성있고 서글서글한 성격 때문에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다.

낡은 옷에 더벅머리를 한 탐정

<가면무도회> 겉표지
<가면무도회>겉표지 ⓒ 시공사
추리소설의 역사를 빛낸 위대한 탐정들을 외모로 평가한다면 불경스러운 일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재미로 한 번 해보자. 빼어나지 못한 외모를 가진 탐정이라면 에르큘 포아로가 생각난다. 포아로는 160cm의 키에 달걀 모양의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작은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어울리는 인물이다.

요코미조 세이시가 창조한 '긴다이치 코스케'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의 국민 탐정이자, 소년탐정 김전일(긴다이치 하지메)이 '할아버지'라고 떠받들던 그 인물이다. 작은 키와 체형을 가졌고 항상 낡은 옷차림에 더벅머리를 하고 있다. 빈말로도 풍채가 좋다고 할 수 없는 인물이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1976년 작품 <가면 무도회>에서도 긴다이치 코스케는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작은 키에 궁상맞은' 외모로 등장하는 것이다. 더벅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을 더듬기도 한다. 그럴 때면 머리에서는 비듬이 떨어지고, 입에서는 침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외모에서 느껴지는 인상과는 달리 날카로운 추리력을 가지고 그동안 시리즈 내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해결해 왔다. <가면무도회>에서도 엄청난 사건이 긴다이치 코스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사건의 중심에는 네 번 결혼해서 네 번 모두 이혼한 유명 여배우 지요코가 있다. 괴상한 사건은 지요코의 전 남편들을 대상으로 발생한다.

지요코의 첫 번째, 두 번째 남편이 각각 기이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 긴다이치 코스케는 이 죽음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요코의 세 번째 남편마저 숨진 채 발견된다. 이 일련의 죽음 뒤에는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을까?

화려한 남성 편력을 자랑하는 여배우 캐릭터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것은 안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사람을 처음 마주하면 생김새와 옷차림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소설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시리즈물에 계속 등장하는 인물이라면 '이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하고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요코미조 세이시가 왜 주인공 긴다이치 코스케를 '작고 궁상맞은' 인물로 만들어 냈는지 궁금하다. 작품 속에서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은 주로 그의 두뇌에 의존한다. 볼품없는 외모 속에 감추어진 두뇌가, 충분히 기름을 먹인 기계처럼 정교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외모 덕분에 긴다이치 코스케의 추리력이 더욱 돋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동시에 긴다이치 코스케를 처음 상대하는 사람은 그에게서 권위나 위압감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딱딱한 제복이나 고급 양복차림보다는, 마치 시골아저씨 같은 인상의 외모가 상대방에게 긴장을 풀게 해준다. 그리고 긴장이 풀린 상대는 자기도 모르게 사건과 관계된 어떤 정보를 무심코 꺼내놓을 수도 있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일본의 국민 탐정이 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탐정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였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가면무도회> 1, 2.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 정명원 옮김. 시공사 펴냄



가면무도회 1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시공사(2014)


#가면무도회#긴다이치코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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