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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감추지 못하는 쌍용차 조합원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무효소송이 원심판결파기환송 선고가 난 11월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쌍용차 노조 조합원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 감추지 못하는 쌍용차 조합원들쌍용자동차 정리해고무효소송이 원심판결파기환송 선고가 난 11월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쌍용차 노조 조합원들이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희훈

그것은 나에겐 가히 찰나라 할 만했다.

사건번호 2014 다 ○○○ 이렇게 시작하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부당해고 무효소송 대법원 판결 이야기다. 판결이 있던 11월 13일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을 한 날로부터 2002일이 지난 날이었다. 날짜 가는 것 알기 쉽다며 하루에 한 장씩 뜯는 일력만 쓰시는 시아버지가 5년 하고도 6개월쯤 달력을 매일 뜯어 버렸을 시간, 2000일이 훌쩍 지났다.

너무 기가 막혀 '악'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하얗게 질린 채 대법원에서 돌아온 그 날부터 또 한 달이 지났으니 쌍용차 해고자들의 투쟁은 지금도 시간을 차곡차곡 쌓는다. 모두들 말이 없었고 저마다 속에 꽉 들어찼던 말들은 눈물이 되어 쏟아졌다.

해고자들은 판결 이후 몇날 며칠 술을 마셨다. 그 술은 시골 부모님과의 통화나 공장 안 동료의 문자에 눈물로 바뀌었다.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말을 잇지 못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봐도 눈물이 났고, 혼자 멍하니 있다가도 얼굴이 벌개지며 코끝이 아렸다. 그런 며칠을 보내면서도 우리는 '해고 2000일' 문화제를 했고, 올 겨울 서로 나눌 김장을 담갔으며, 쌍용차 해고자 신분으로 정년을 맞는 동료의 은퇴식을 준비했다.

그렇게 해고 6년을 향해 간다. 가끔 "6년이 되도록 꼭 그 공장만을 고집하고 버티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해고자 남편과 같이 살고, 날마다 와락센터에서 고개 돌리면 만나는 사람들이 해고자들이니 가끔은 나도 묻는다. 억울해서란다. 억울하고 분해서….

쌍용차보다 더 오래... 10년을 싸운 사람들

 지난 2일. 단식 28일차,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최일배 코오롱 정투위원장
지난 2일. 단식 28일차,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최일배 코오롱 정투위원장 ⓒ 이병관

그런데 그런 쌍용차 노동자들보다 더 오래 정리해고자로 10년 동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코오롱 정리해고 분쇄 투쟁위원회'. 12월 2일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코오롱 정투위 최일배 위원장은 동료 해고자들을 소개했다. 10년 세월 동안 재판이란 재판 다 지고 희망도 없는데 10년을 함께 한 '소중한 바보들'이라 했다.

그날은 최 위원장이 단식한 지 28일째 되는 날이었다. 단식이 길어지는 것은 무리라며 걱정하는 동지들에게 최 위원장이 말했다. 정말로 무리인 것은 코오롱 정리해고 싸움을 10년에서 끝내지 못하고 앞으로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집회장에 앉아 있는데 가늘게 한숨이 나왔다. 정말로 10년 세월을 싸워도 정리해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일까?(단식일기 보러가기)

어떤 인터뷰에서 최 위원장은 "법적인 판단을 떠나 정리해고는 부당하기에, 우리 해고자들이 코오롱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10년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에게도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을 것이다. 부모님도 형제들도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친구들, 학교 동창들... 그에게도 그들과 어울리고 나누는 일상이 있을 터. 그러나 "10년 동안 해보지 않은 투쟁을 찾는 것이 빠를 정도로 안 해 본 것이 없다"고 말하는 최 위원장은 그런 소박한 일상을 누렸을까?

만약 지금 투쟁하는 이들이 모두 일상을 누리기 위해 정리해고라는 괴물과 싸우는 일을 포기한다면 그 괴물은 어찌될까? 아마도 더 강력해져 산업과 업종을 불문하고 노동자들을 집어 삼키지 않을까?

 8일, 단식 34일차. 코오롱 단식투쟁 농성천막
8일, 단식 34일차. 코오롱 단식투쟁 농성천막 ⓒ 코오롱 정투위

 지난 2일, 민주노총 결의대회 후 코오롱 정투위 12명의 동지들
지난 2일, 민주노총 결의대회 후 코오롱 정투위 12명의 동지들 ⓒ 코오롱 정투위

더는 그 괴물을 그냥 둬선 안 된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저 괴물을 치우는 일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줄이고,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재벌과 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위험한 경제를 바로잡는 길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25미터 높이의 광고탑에 오른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그냥 두면 안 된다. 경북 구미공단 45미터나 되는 스타케미칼 굴뚝 위에 오른 해고노동자 차광호를 혼자 둬선 안 된다.

한 달이 넘는 단식자를, 10년 넘게 싸우는 사람들을, 계속 이렇게 바라만 봐서는 안 된다. 6년 동안 거리에서 농성한 사람들이 더 긴 투쟁을 한 사람들을 보며 미안해하는 일이, 이런 일이 정상적인 일이어서는 안 된다.

마음은 아프고 힘들지만,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장 쌍용차 해고자들은 어쩔 것인가? 복잡하기만 할 뿐이다.

마음 아픈 우리, 뭘 할 수 있을까

단식 중인 최일배 위원장을 만나고 오던 날, 코오롱 회사의 홈페이지를 열어보았다. 코오롱 윤리규범이란 게 보였다. '제5장 국가 및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라는 부분은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요구되는 역할과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고용의 창출과 조세의 성실한 납부로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라고 써 있었다. 본사 건물 앞에 천막이 펼쳐져 있고 10년을 싸운 해고자가 있는데 고용을 창출한단다.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우선 지금처럼 코오롱 제품 불매를 더욱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할 것이다. 그리고 해고자가 10년씩 장기투쟁을 하는 사업장이 없는 나라가 되도록 코오롱 정리해고 분쇄 싸움을 더 많이 알릴 것이다.

뾰쪽하고 똑 부러지는 방법이 아니라는 게 명치끝에 걸리지만 어쩌랴. 내 생각이 이런 것을. 단식 39일차가 되는 12월 13일(토) 오후 3시, 나는 또 아이를 맡기고 과천 코오롱 본사 앞으로 갈 생각이다. 그날 열리는 '코오롱 연대의 날'이 우리 시대 모든 정리해고자들, 모든 1700만 노동자 가족들에게 위안과 힘이 되도록 무슨 일이라도 돕겠다. 그 자리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길 바라본다.

8일 '코오롱 연대의 날'을 호소하는 대국민 기자회견 자리에서 끝내 최일배 위원장과 10년을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김혜란님이 울고 말았다. 아이가 세 살일 때 해고됐는데, 그 아이가 이제 13살이란다. 그는 "아이가 '내일(9일) 생일이니 엄마 내려오라'고 했지만, 굶는 동료 곁을 떠날 수 없어 못 내려간다"고 말했다. 전엔 정말 울지 않았는데 요즘은 매일 눈물이 난다고 제발 좀 도와달라고 하는데, 그게 나인 것 같아서 나도 펑펑 울고 말았다.

이런 사람들이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 그런 사회를 위해 싸우는 우리는 하나였다. '코오롱 연대의 날'이 쌍차 연대의 날이고, 콜트콜텍 연대의 날이다. 더불어 기륭 연대의 날, 씨앤앰 연대의 날, 스타케미칼 연대의 날, 밀양·강정 연대의 날, 세월호참사 연대의 날이다.

코오롱 10년의 눈물을 함께 닦아주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권지영님은 '와락센터' 대표입니다.



#코오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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