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0년이 넘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온 사람, 가족을 두고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이고 천륜입니다. 그분들이 가고 싶을 때 가서 만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이고 통일이야말로 진정한 인권입니다."보수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은미씨와 황선씨가 진행하는 북한어린이돕기 평화콘서트 <평양에 다녀왔수다!>가 9일 오후 대구 동성아트홀에서 열렸다. 동성아트홀에는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행사장 진입을 시도하며 출입구를 막아섰지만 200석의 객석이 가득 찼다.
신은미씨와 황선씨는 토크콘서트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평화콘서트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했다. 황선씨는 "지난 여름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와 응원단이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남북 사이의 협력분위기가 활성화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서 토크콘서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황씨는 "지난해 하버드대 오인동 교수, 일본의 윤미리 작가도 모시고 서울에서 토크콘서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며 "이번 콘서트가 종북몰이의 소재가 되어 참으로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신은미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에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는데 박 대통령이 염원하는 통일과 내가 염원하는 통일은 같다"며 "나는 진정으로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은미씨는 이어 "최근 몇 년간 남북이 경색되어 있다보니 북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을 기회가 줄어들었다"며 "남쪽에 와서는 북녘동포의 삶을 그대로 전하고 북쪽에 가서는 남녘 동포들의 사랑과 삶을 전하면서 관심의 끈을 놓치지 않게 오작교 역할을 하는 것이 해외동포로서 하는 자그마한 통일운동이 아닌가 해서 어디서든 불러주면 갔다"고 말했다.
신씨는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수차례 통일이야기를 했는데 유독 이번에는 마녀사냥에 가까운 그런 상황이 이어졌는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왜 종북몰이를 하는지 오히려 여쭤보고 싶다"고 반문했다.
"왜 종북몰이를 하는지 오히려 여쭤보고 싶다"
황선씨가 질문하고 신은미씨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토크콘서트는 당초 예정했던 시간보다 약간 늦은 오후 7시 40분부터 시작해 10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관객들은 북녘 이야기를 들으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최근 종편 언론으로부터 '종북 논란'이 일면서 법무부가 재입국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밝힌데 대해 신은미씨는 "고국이 나를 원하지 않으면 떠나는 것이 도리겠구나라고 생각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하지만 한 언론에서 꼬리를 내리려고 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듣고 정말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됐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종북이라는)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남아서 통일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황선씨가 "청와대에 면담을 신청했는데 출국한 뒤에 받아주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신씨는 "비행기 안에서라도 뛰어와야죠"라며 언제든지 대통령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일부 언론이 북한에 다녀와서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는 보도에 대해 "북한의 가고 싶은 곳만 갔다와서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는데 나는 크리스천"이라며 "제 책에도 썼지만 북한은 우리와 같은 동포들이 살아가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했다.
신은미씨와 황선씨는 북한의 단고기(개고기) 이야기와 술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황선씨는 북한에 갔을 때 단고기를 많이 먹어 몸무게가 7kg 가까이 늘었다며 "그때 찐 살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말했고 신은미씨는 "사슴고기라고 해서 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개고기였다"고 말해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술 이야기가 나오면서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거나 '대동강 물이 맑다'는 발언이 종북적인 내용이었다는 일부 언론의 지적과 관련해 신씨와 황씨는 "대동강 맥주는 대충 맛있었고 대동강 물은 큰빗이끼벌레가 나오지 않아 대충 맑아보였다"고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황선씨가 "북한의 거리를 마음대로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신은미씨는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쪽방촌이라든가 감옥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라며 "북한도 보여주고 싶은 곳만 보여준다, 하지만 백두산을 가려면 시골길도 가고 산길도 가면서 북한주민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신씨는 "집을 멋지게 치장한다고 해서 그 집의 가난한 모습이 보이지 않겠느냐"라며 "그런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왔다면서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북한에 가서 살아라 하는데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아프리카에 가서 못 살고 가난하지만 순박하더라'라고 하면 '그곳에 가서 살아라'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신씨는 또 종편 언론들이 북한 탈북자들과 끝장토론을 제안한 데 대해 "그들이 본 북한도 북한이고 내가 본 북한도 북한"이라며 "저는 여행 가서 본 북한이 북한의 전부라고 한 적이 없다, 마음을 열고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통일에 함께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본 북한을 함께 상생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논의하자면 백 번이라도 나간다"며 의도된 토론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보수단체들, 입구 막고 "종북하는 놈들 죽여야 돼"
한편 평화콘서트가 열리기 두 시간 전부터 보수단체 회원 300여 명이 동성아트홀 입구를 둘러싸고 콘서트를 반대하며 입장하는 관객들을 막아서기도 했다. 보수단체 회원 일부는 군복을 입고 일부는 피켓과 현수막을 들기도 했다.
경북 의성에서 왔다는 손영한(73)씨는 '거짓선동 그만하라'는 피켓을 들고 "왜 대구에서 돈을 거두어 내복보내기 콘서트를 하느냐, 대구시민 뿐 아니라 대한민국 돈으로 북한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며 "북한이 좋으면 북한에서 떠들든지 미국에 가서 떠들어라"라고 말했다.
재향군인회, 고엽제전우회, 자유총연맹, 상이군경회, 대한민국재향경우회 등 5개 보수단체 회원들은 '신은미 대구에 왔다. 몰아내자', '국정논란 세력척결 우리가 책임진다' 등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들은 오후 6시 30분부터 기자회견을 갖고 종북콘서트를 반대한다며 "시민을 우롱하는 신은미, 황선콘서트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콘서트를 무산시키겠다며 동성아트홀 입구로 몰려들면서 1시간 가량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종북하는 놈들을 죽여야 돼"라고 소리치기도 하고 "깨부수자"라며 고성과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이들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출입구로 몰려들면서 행사진행요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콘서트장에 입장하지는 못했다.
일부 회원들은 과격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 보수단체 회원은 가지고 온 살충제 스프레이통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방화 위협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평화콘서트가 끝나기 직전까지 동성아트홀 입구에서 경찰들과 대치하다가 오후 9시 30분쯤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