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삼각산고·선사고·금옥여고가 첫 번째 서울형 혁신고교로 지정됐다(나는 삼각산고의 교사다). 그리고 지난 2월에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학교혁신과 진학지도 둘 다 추구하는 새로운 교육 활동이 대학입시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삼각산고·선사고·인헌고·배화여고 등 4개교 졸업생 12명은 <진짜공부>라는 이름의 '진학수기'를 출판했다. 이들은 한결 같이 고교 생활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웠으며, 이 점이 대학 공부에서도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지난 4일 <이데일리>는 본교를 비롯한 혁신고등학교 2학년생의 국가성취도 평균이 낮고 기초학력 미달자가 많다고 비판했다. 특히 삼각산고는 2012년 성적은 양호한 편이었으나 점점 나빠져, 2014년에는 혁신고 중에서도 가장 낮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
"10곳 중 8곳 평균학력 미달…흔들리는 '서울형 혁신고'")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글은 무책임한 기사다. 전체 혁신학교나 개별 혁신학교가 처한 상황을 무시한 채 다른 일반고와 비교했기 때문이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기사 작성자가 혁신학교의 교육목표가 무엇인지, 어떤 교육적 노력을 해왔는지에 전혀 서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출발도 전에 시작한 언론의 공격... 혁신학교의 여건은 최악
혁신학교 특히 혁신고교의 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고교서열화·고교선택제 등의 최대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다. 대부분 경제적 낙후 지역에 배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공립고 기피, 공학고교 기피 현실까지 감당해야 한다. 특목고·자사고 등에 학생 선발에서 밀린다. 같은 일반고이나 우선 선발권을 행사해 온 자율형공립고등학교·중점학교에도 치인다.
혁신학교 학생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주요 요인은 혁신학교에 대한 근거 없는 오해와 비방이다. 지난 2011년, 혁신학교 교사들은 자발성과 헌신으로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겠다는 꿈을 안고 혁신학교를 시작했다. 혁신학교가 생기기 전부터 시작된 일부 언론의 공격이 그 시점부터 본격화됐다.
마치 태어나서는 안 될 자식이 태어난 듯, 잘 될 리가 없다는 듯 제대로 출발하기도 전에도 공격을 쏟아 부었다. 예를 들어 자공고나 중점학교 예산에 비해서 훨씬 적은 예산을 지원 받는데도 특혜시비가 끝없이 이어졌다. 학교혁신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교사들이 "예산 유용 집단", "비리 집단"으로 비쳐질 지경이었다.
혁신학교 비방은 학교 관리자 및 교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일부 중학교의 오해와 푸대접은 정도를 넘어선 듯하다. 성적우수 학생들에게 혁신학교를 기피하도록 종용하고, 이른바 '문제아'에게는 "혁신학교나 가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해당 학교 출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이런 경험담에 가슴이 무너졌다. 고교진학 설명회에도 2013년 말에 가서야 초청을 받았다. 같은 공립학교 교사로서 생각해보면 참 서운한 일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일부 교사들은 혁신학교가 인성교육과 책임교육으로 '문제아'들을 품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진학과 전학을 권유했다. 학생인권존중을 '자유방임'으로 오해한 일부 학생들이 집중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지난 2012~2013년 삼각산고 입학생의 성적 하락은 혁신고의 '숙명'이었던 셈이다.
삼각산고가 혁신학교인 줄을 모르고 지원·배정받았던 2011년보다도 입학생들의 성적은 하락했다. 내신 성적 하위 20% 이하 학생 비율이 2012년에 4% 가까이 늘었다. 주변에 유난히 많은 자사고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는 점도 입학성적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입학생 성적 하락과는 달리, 교사들이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 삼각산고에 대한 주변의 평가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악재는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이 재구속됐고, 문용린 서울교육감의 혁신학교 억압정책이 시작됐다.
혁신학교 폐지 공약을 내세운 문용린 교육감은 혁신학교 예산을 점차 큰 폭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결국 2014년 예산은 다른 일반고 특별 지원 예산보다도 적었다. 서울에서 혁신학교는 끝났다는 생각들이 퍼져나갔다.
혁신학교의 운명이 백척간두 지경에 놓였을 때, 교사들은 더욱 헌신적인 노력을 계속했다. 입학생의 성적은 더 하락했다. 2013년 신입생 중 하위 20% 학생 수가 7% 더 많아졌다. 하위 10% 이내 학생 수는 2011년 입학생의 딱 두 배인 80명, 한 반에 8명이었다.
교육청마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주변의 자공고, 사립고 등에 전·입학을 거절당한 타교 퇴학생들을 삼각산고에 배정했다. 2014년, 삼각산고 2학년 전출생보다 전입생이 3배가 더 많았다. 한 학교가 모두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상황들이 첩첩산중으로 이어졌다. 삼각산고 학생들의 2013~2014년 국가성취도 성적이 낮은 것은 사실상 당연한 결과다.
조금씩 나타낸 성과... 바뀌기 시작한 주변의 인식
그런 와중에도 삼각산고 학생들의 모의고사 성적은 꾸준히 향상됐다. 2011년에 입학한 신입생의 경우, 3년간 모의고사 평균 성적이 상당한 폭으로 올랐다. 2013년 입학생들의 모의고사 성적도 부분적이지만 올랐다. 2014년 입학생들의 성적 향상 폭은 꽤 크다.
2013년 말부터 인근 중학교들의 입장 변화도 감지됐다. 삼각산고등학교의 수시 대학입학 성적 결과가 나오면서부터였다. 중학교 졸업 성적에 비교해 볼 때 매우 좋은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일반고 지원서를 쓰는 시기, 삼각산고에 대학 진학 성적 결과표를 요청하는 중학교도 있었다.
2014년 대학입시 성과는 한 마디로 '소리 없는 혁명'이었다고 자부한다. 고교 입학 성적 대비 아주 큰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입학사정관전형 합격률은 21.8%로 평균의 2배였다. 창의력, 문제해결력, 탐구력 등 새로운 척도의 학력을 신장하고자 했던 노력이 주효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2014년에는 입학생들 성적이 많이 올라 2012년 입학생 수준을 회복했다. 하위 20% 학생 비율이 5% 낮아졌고, 평균 성적은 6% 올라갔다. 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들의 지원도 늘었다. 3년간의 고생 끝에 나온 결과이다. 고진감래란 이런 것일까? 공부를 시키지 않는 학교, 학력을 떨어트리는 학교라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공교육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학력은 어떤 것인가? 핵심역량이 그 답이다. 창의력, 의사소통능력, 통합적 지식 생성능력,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능력, 새로운 사회 조성 능력 등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복잡한 사회에서의 생존과 공생의 능력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핵심역량교육 부재가 아니겠는가?
삼각산고의 가장 중요한 교육목표는 핵심역량교육이다. 서로 도와가며 지식을 만드는 수업, 지덕체를 융합한 생활교육, 세상의 연결성을 배우는 교육과정을 통해 이를 추진해 왔다.
문제의 <이데일리> 기사가 무시한 또 하나의 혁신학교 목표는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 실현이다. 삼각산고는 모든 학생의 개성과 능력을 최대한 발현시키는 의미에서의 수월성 교육을 추구한다. 어느 한 명도 원천적으로 소외시키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아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나는 혁신학교의 교사다
삼각산고 학생이라면 진로나 전공과 관련해 3년 동안 반드시 2~3편의 소논문을 써야 한다. '1인 1프로젝트' 교육과정이다. 창의적 글쓰기라는 교과 시간을 통해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도한다.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2012년과 2013년 입학생의 상당수는 일반고에 배정됐으나 직업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아이들이었다. 대부분은 직업교육을 위한 학원수강비조차 없는 아이들이다. 밤늦게까지 가계와 학업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궁리 끝에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 대책을 마련했다. 희망자 중심으로 대안교실을 마련해 상처 치유, 기초학력향상, 취업준비를 연계해 지도했다. 직업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서 직업관련 교과를 개설하고 지자체, 지역사회, 재능기부자의 도움을 받아 기술을 익히고 자격증도 따도록 했다.
상위권 학생들을 위해서는 정규수업뿐만 아니라 방과후학교와 방학 중 심화 교육과정을 운영했다. 중간 성적 학생들이 교사 손길 부족의 '사각지대'에 놓일까봐 노심초사하며 대책을 마련했다.
이를 위한 교사들의 노고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몸과 마음이 10개라도 부족했으나 학생들의 성장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학생의 자존감과 학교만족도는 높고, 중도 탈락률은 낮으며, 학교폭력도 거의 없다.
삼각산고는 직업교육, 대안교실 등 내년부터 도입될 일반고 살리기 정책의 핵심 방안들을 이미 앞서서 실천해왔다. 일반고 공동화라는 '재앙'에 맞서 이렇게라도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의 산물이었다.
이 방안들이 일반고를 살릴 수 있는 근본 대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고교 서열 체제 하의 학생 선발 방식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 삼각산고의 교육활동을 전체로 일반화할 수도 없다.
그러나 미래역량은 전 생애에 걸쳐 발현·진화하는 삶의 역량이다. 혁신학교 졸업생들이 고교 생활을 통해 얻은 역량이 무엇인지 긴 호흡의 연구가 필요하다. 연대와 우정 그리고 존중의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아 삶의 과정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혁신학교들은 그동안 각종 공격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이름에 걸맞은 교내 혁신을 실천했다. 또한 혁신학교의 정당성 증명, 생존을 위한 자기구제 노력까지 지속했다. 서울형 혁신학교의 4년은 혁신학교를 거부하는 장애물에 부딪쳐 넘어지면서 다시 일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나날로 이어진 역사였다. 특정 언론이 예단한 것처럼 실패와 좌절의 역사가 아니다.
이제 막 600개를 넘어서 확산 중인 혁신학교들은 새로운 공교육체계 정립의 사명을 다할 것이다. 지금은 혁신학교에 대한 무책임하고 조급한 비방을 멈춰야 한다. 횡단 연구가 아닌 종단 연구, 양적 연구가 아닌 질적 연구가 필요하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로 혁신학교의 성공을 적극 지원해야 할 때이다. 나는 혁신학교 교사로서, 공교육의 미래가 혁신학교에 달려 있다고 감히 자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정안 시민기자는 혁신학교로 지정된 서울 삼각산고등학교의 혁신부장 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