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고추처럼 맵찬 바람에 절로 목이 움츠러드는 겨울이다. 밤새 칼바람이 엎고 온 눈이 소복이 쌓이는가 싶더니 환한 햇살에 사르르 녹는다. 햇살이 눈을 녹여 다시 세상의 물상들이 얼굴을 내밀었지만 앙상한 가지 사이로 얼비치는 하늘의 푸르스름한 냉기에 한기를 느낀다.
푸르스름한 하늘을 내비게이션 도로처럼 가른 나뭇가지를 올려다 보노라니 어묵국물, 붕어빵, 군고구마 등 따스한 것들이 생각나고, 감기 기운으로 입맛을 잃은 탓인지 곰국, 설렁탕, 한우불고기전골 등 보양을 위한 음식들이 떠오른다. 그리곤 맨 꼭대기 가지 길에 머문 생각 하나에 오랫동안 머문다.
명절 선물을 할 정도로 고기가 귀한 대접을 받던 1970년대, 그래도 경찰 공무원인 아버지는 간간이 신문지에 돌돌 말아 싼 쇠고기를 들고 왔다. 아버지가 신문지에 돌돌 만 소고기를 들고 오시는 날이면 어머니는 육남매를 위해 무를 삐져 넣어 멀건 쇠고기국을 끓여 주셨다. 평소 고기를 입에 댈 수 없었던 여섯 남매는 코를 박고 말간 쇠고기 국물을 흡입하듯 먹어댔다.
나중에야 근처 도축장에서 소를 잡는 날이면 아버지는 그곳을 들러 쇠고기를 사 가지고 오신다는 것을 알고 물기 머금은 채 끔벅거리는 소의 눈망울이 어른거렸다. 하지만 말간 쇠고기국물 앞에선 금세 물기 어린 소의 눈을 잊고 쇠고기국물에 밥을 말아 흡입하듯 먹던 기억이 가물거렸다.
이런 회상 때문일까? 갑자기 뜨끈한 쇠고기 국물이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 절친한 지인과 함께 순천의 신도심지로 부상 중인 신대 지구에서 생고기 전문음식점으로 향한다.
이곳은 순천 홍매 도축장에서 매일 공수된 한우와 돼지고기 요리를 하는 생고기 전문집으로 20년 경력 요리사의 손맛이 느껴지는 식당이다. 생고기는 안심, 등심, 설치, 안창살 등 고급 부위 부분의 고기를 숙성고에서 숙성되어 내놓아서 그런지 씹을 때 이에 척척 감기는 부드러운 질감이 다르다.
육사미와 한우불고기백반을 주문하니 밑반찬이 차려지고 한우불고기백반이 나온다. 뒤이어 육사시미가 나오는데 파란 무순과 대조되는 붉은빛이 신선하다. 육사미 소스에 잘게 썬 마늘이 들어 있어 풍미를 더하고 고명인 듯 함께 놓인 무순도 함께 먹으니 한층 입맛을 돋운다.
육사시미를 다 먹고 속을 따스하게 데워줄 한우불고기 백반을 먹을 차례다. 가스버너 위에서 보글거리는 것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앞 접시에 덜어 국물을 먹어보니 정말 시원하다.
주인장에게 국물이 시원하다고 비법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대답한다.
"20년 노하우를 가르쳐 주면 안 되는데... 고기 핏물을 알맞게 빼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이고 원재료인 고기가 냉동이 아닌 생고기라서 그런 겁니다."
허인훈 대표는 국물맛이 시원한 이유를 핏물 빼기와 주재료인 고기의 중요성을 들며 냉동고기와 생고기의 차이점을 전한다. 냉동고기의 경우 씹는 질감에서 차이가 나고 구워 먹을 경우 육즙이 배여 훨씬 맛이 깊다는 것이다. 또 밑반찬이나 음식 재료에 들어가는 채소는 물론이고 고기 외 재료는 역전 농산물 시장에서 매일 사온다는 것도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평소 달지 않게 먹는 편으로 어묵 무침과 불고기 국물이 약간 단 것 외에는 비교적 만족한 점심으로 지속적인 단골이 될 성 싶다. 특히 갓 버무린 배추김치는 짜지도 않으면서도 아삭한 느낌의 시원한 맛이 좋다. 겨울 한파에 자꾸만 몸이 움츠려 든다면 이에 착 안기는 부드러운 육사시미와 속까지 데워주면서도 시원한 한우불고기백반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