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제(12월 13일), 세 친구가 왔습니다.
오창환, 한상준, 김선엽
우리는 대학에서 같은 과 친구로 만나 36년 동안 동행했습니다.
대학에서 매일 만나기도 했고 각자의 군복무기간에는 오랫동안 대면하지 못하기도 했으며 각자의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직접대면보다 전화로 소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때에는 어김없이 함께했고 긴 시간 만나지 못했던 경우라도 우리는 36년 전의 그때처럼 편안했습니다.
한 친구는 은퇴했고, 한 친구는 은퇴가 멀지않았으며 다른 친구는 스스로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그룹에는 한 친구가 더 있었습니다. 김재원. 그 친구는 11년 전 먼저 이승을 등졌습니다.
우리가 대학 때 함께한 것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 동아리에서 활동했으며, 같은 방에서 기타를 배웠고, 때로 낚시를 함께했습니다. 운전연수를 담당하기도 했지요.
내가 친구들을 한 동아리로 이끌었고, 선엽이가 기타를 가르쳤으며 상준이가 낚시를 주도했고 창환이는 그외 모든 것에 앞장섰습니다.
그 때 함께했던 것들은 사회생활과 더불어 공통의 영역에서 각자의 몫으로 바뀌었습니다.
낚시도 다 함께할 수는 없었습니다. 상준이와 선엽이가 간혹 함께 출조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선엽이의 관심이 작곡과 오디오와 연(鳶)의 제작으로 변천하면서 함께하는 낚시는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상준이의 낚시에 대한 애정은 한 순간도 변함이 없어서 휴일 대부분의 시간을 낚시로 보냈습니다.
아마 상준이는 자신의 처와 함께한 시간보다 홀로 낚싯대를 펴고 저수지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을 듯합니다.
그는 특히 밤낚시를 좋아했습니다. 낮의 번잡과 소음으로 완전히 멀어진 낚시터의 밤을 좋아했습니다.
#2세 사람은 어제 파주의 한 낚시터에서 오는 길이었습니다. 몇 개월전부터 선엽이의 관심이 다시 낚시로 돌아온 것입니다.
여전히 묶인 내 입장을 고려해 이번에는 헤이리 인근의 낚시터를 출조지로 정했고 그곳으로 창환이가 합류한 다음 낚시를 즐기는 중에 내개로 왔습니다.
이 해가 저물기 전에 꼭 얼굴을 대면하고팠던 친구들의 지략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밥상을 나누고 몇 시간의 쇄담(瑣談)으로 회포를 풀었습니다. 이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의 마무리는 역시 낚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선엽이가 최근 상준이와 함께 낚시를 다시 한 것에 대한 소회를 말했습니다.
"상준이는 낚싯대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아. 고기가 오는지 가는지 관심도 없는 듯 보여. 그는 낚시를 하고 있는 지조차 의심스러워. 나는 그렇지 못해. 입질이 없으면 계속 낚싯대를 다시 거두어 살펴서 미끼를 바꾸고 왜 그들이 내 미끼를 피해가는 지를 궁리하게 되. 상준이는 인생을 낚고 있고 나는 고기를 낚고 있는 거지. 물론 낚은 고기를 즉시 원래 살던 곳을 되돌려주긴 하지만..." 창환이가 말을 이었습니다.
"나는 바다낚시를 즐기게 되었는데 초장을 함께 챙겨. 즉시 회를 치면 도시의 횟집에 비할 바가 아니야." 내가 나섰습니다.
"상준이는 낚시가 수신(修身)이고, 선엽이는 유흥(遊興)이며 창환이는 어획량이 중요한 어부이구만." 아무 말이 없던 상준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밤낚시가 좋아.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 적막이 좋은 거지. 밤낚시에서 간혹 우주가 보이더군." 인생이라는 이 미궁(迷宮)속을 헤매는 같은 처지에서 친구들은 낚시로 각자의 길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낚시가 막힌 길을 뚫어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세존념화 가섭미소(世尊拈華迦葉微笑 ; 석가 세존이 연꽃을 보이니 가섭이 미소한다.)'라고 했던가. 누가 먼저 가섭의 미소를 낚을지가 궁금합니다.
그들은 나와의 대면을 마치고 다시 낚시터로 떠났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