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했을 때 화해하기 딱 좋은 장소 같다."부부는 닮는다던가. 이 나이에 내세울 자존심이 뭐 남았다고 우리 부부는 소소한 말다툼 이후 먼저 사과하려 들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 필요에 의해 형식적인 간단한 말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풀리는 경우가 많다.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난 20일, 화천에 영화 개봉관이 문을 열었다. 주민들이 고대해 왔던 것 중 하나다. 영화관이 생기기 전 화천군민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차를 타고 40여 분을 달려 춘천까지 가야 했다. 그게 귀찮았던 나는 아내와 같이 영화를 보러 나간 기억이 별로 없다. 나와의 동행을 포기한 아내는 1년에 한두 번 딸 아이와 영화를 관람하는 게 전부였다.
"춘천까지 왔다 갔다 하는 기름 값, 비싼 영화 관람료에 팝콘 값. 영화보고 나서 애 밥 사줘야지..." 누가 영화를 보고 오라고 했나, 돌아온 아내는 습관처럼 투덜대곤 했다. 사실 그렇다. 영화 관람료만 8000원에서 1만 원 정도 든다. 팝콘 등 간식 비용도 만만치 않다. 차량 기름값 또한 모름지기 1만 원 이상 소요된다. 도시에 나간 기념으로 식구들 모두 근사한 곳에서 식사라도 할라치면 모두 10만 원을 훌쩍 넘겼다. 그래서일까, 지역에 영화관이 생긴 것에 대해 주민들은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영화 한 편 보려고 춘천까지 가야했지만...
'일반인 5000원, 군인 4000원'산천어시네마 영화 관람 요금이다. 얼마나 좋은가, 특별히 벼르지 않아도 산책 겸 걸어가 부담 없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그것도 최근에 도심지에서 개봉한 영화를 말이다. 3만 6천여 명의 지역 주둔 군인들이 더 반긴다는 말도 들린다. 화천에 딱히 문화 생활할 공간이 없다는 게 그들의 주요 불만이었다. 모처럼 전방에서 외출을 나왔는데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화천에 영화관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70년대 화천읍내와 사창리, 오음리에 영화관이 있었다. 군인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군부대에서 운영한다고 해서 '군인극장'이라 불렀다. 그곳에서 상영하던 영화는 대부분 개봉한 지 10여 년이 지난 영화가 다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려면 상영 중 필름가 끊겨 10여 분을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잦았다. 닳고 닳은 필름은 꼭 소나기나 내리는 풍경처럼 세로줄이 죽죽 그어졌다.
당시 TV가 없던 시골 사람들은 그래도 좋았다. 영화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 속 사람들의 움직임과 표정이 좋았다. 그래서 시골 노인들은 영화라는 표현대신 활동 사진이라 불렀다. 영화를 보던 중 가끔 비명 소리도 들렸다. 쥐들이 얼마나 많은지 발을 밟고 지나가는 쥐 때문에 여성들은 소리를 질렀다. 영화를 관람하고 돌아오면 몸이 늘 근질거렸다. 극장에서 벼룩과 이가 옮아 와서였을 게다.
"이 돈 가지고 영화보고 짜장면 먹고 와라."1973년, 내 나이 13살 시절. 설 명절날 어머님은 꼬깃한 100원짜리 지폐를 형의 손에 쥐어줬다. 우리 삼형제는 뛸 듯이 기뻐했다.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20여 리나 떨어진 사창리까지 뛰어 가는데 전혀 힘든 줄 몰랐다.
당시 영화를 한 편 보는데 20원씩 받았다. 영하 20도가 넘는 바깥 기온. 난방 시설이 없던 영화관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추위에 손을 호호 불며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나면 40원이 남았다. 정확히 짜장면 한 그릇을 시킬 액수였다. 삼형제는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짜장면을 한 젓가락씩 먹었다. 조금이라도 많이 집었다 싶으면 형님이 눈치를 줬기 때문이다. '다꽝'이라 불런던 단무지를 계속 시켰다 주인으로부터 '다음에는 오지 말라'는 주의도 들었다.
"주인공 남자가 어떤 사람을 때려 눕혔을 때가 제일 멋있더라."삼형제는 20리 길을 되돌아오면서 영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영화 줄거리를 말하는 경우는 없었다. 끊긴 필름을 오려 붙여 누더기가 된 것이라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그보다 화면을 통해 사람들의 움직임을 본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실제 배우들이 스크린 속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착각했으니 말이다.
40년 만에 돌아온 지역 영화관
그랬던 극장이 흑백 TV 등장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활동사진의 신비감마저 앗아갔다. 대신 TV가 있는 집은 저녁 시간이면 동네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사람들로 방안이 꽉 차자 방문이 열렸다. 마당에 모인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한 집주인의 배려였다.
그렇게 시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영화관이 돌아왔다. 40여 년 만의 귀향이다. 그것도 비가 내리는 것처럼 줄이 죽죽 그어지는 영화가 아닌 개봉작을 가지고 말이다. 이번 산천어시네마 120석 규모 개관에 이어 사창리와 산양리에도 100석 정도의 영화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