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낱말이 뿜어내는 이미지는 총, 칼, 피로 끝나지 않는다. 선과 악의 구도로 대립되는 이념과 그로 인한 고통, 참혹한 슬픔과 같은 감정 등 정신적인 것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세로 떠올랐던 드라마 <미생>의 원작자인 윤태호가 내놓은 또 다른 만화 <인천상륙작전>을 읽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북한이 남침하자마자 피난을 떠난다. 북한군의 남침을 지연할 의도로 한강 다리를 파괴하지만, 그 다리 위엔 엄청난 인파의 피난민이 이동 중이었다. 대부분 목숨을 잃었고, 그렇게 그들은 잊혔다.
만화 <인천상륙작전>은 당시 피난민이었던 철구네 가족을 그리고 있다. 철구를 중심으로 할머니, 외할아버지, 부모, 작은아버지(상배)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철구 아버지가 폭파되는 다리와 함께 심한 부상을 당하고, 철구의 작은아버지 상배는 부산으로 피난을 간 뒤 험하게 살지만 곧 연어처럼 고향 인천으로 거슬러 올라가 홀어머니를 찾아 나서고, 피난길에서 어린 철구는 부모 대신 시체들 틈에서 먹을 것을 찾아 부모를 부양한다.
노근리 학살의 실체
1950년 7월 23일 정오, 충북 영동군 황간면 임계리와 주곡리 마을에 미군의 소개 명령이 떨어졌다. 500여 명의 피난민이 명령을 받고 마을을 떠났다. 노숙을 하며 4번 국도를 따라 황간면 서송원리 부근에 도착한 그들은 미군의 유도로 국도에서 철도로 행로를 변경했다. 노근리에 당도한 26일 정오경 인솔하던 미군의 무전을 받고 비행기 한 대가 피난민들의 머리 위를 지났다. (5권 p7~9)갑자기 미군기에서 폭격과 기관총 소사가 시작됐고, 지상의 미군들은 폭격을 피해 개근 철교로 피신한 주민을 향해 1950년 7월 26일 오후부터 그해 7월 29일 오전까지 기관총과 박격포 사격을 전개했다. 약 4일간의 살육전으로 주민 3백여 명이 죽어갔다. 이상이 바로 북한의 소행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미군의 소행으로 밝혀진 '노근리 학살'의 실체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국민을 안심시키는 녹음방송을 틀어대며 피난 중이었고, 수많은 군중의 존재를 알면서도 다리를 폭파했다. 대부분의 국민이 '우리 편'으로 알고 있던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미군이 결코 대한민국 국민의 '편'만은 아니었다는 불편한 진실은 여전히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어제와 오늘북한의 남침, 미군과 UN군의 개입, 인천 상륙 작전으로 인한 서울 수복, 북진, 중공군 개입, 후퇴 등 일련의 과정에서 남한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먼저 피난한 일 외엔 없다. 아니 더 있다. 북한군의 파죽지세에 놀란 이승만은 일본 야마구치 현에 망명 정부를 설치하는 방안을 계획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당시 일본은 야마구치 현의 지사 다나카에게 6만여 명을 수용할 시설 및 식량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저자 윤태호는 전쟁 중 국민의 마지막 피난처, 부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하루하루 연명하기 힘든 지경이다 보니 피난민들 사이에서 사기와 폭력, 강탈 등이 난무했고, 심지어는 몇 푼 때문에 살인이 저질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미군들과 고위층 인사들이 일명 '댄스홀'이라 불리는 무도회장에서 연일 음주가무로 밤을 지샌다. 여차하면 망명 정부로 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으니 아무 걱정이 없었던 게다.
국민에게는 정부와 국군을 믿고 '가만 있으라'하고 대통령과 정, 재계 인사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들만을 위한 세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이 부산의 댄스홀에서 술 마시며 춤추고, 너무 먹어서 토악질을 하고 있을 때, 철구네와 같은 힘없는 국민은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크로마이트 작전으로 명명된 인천 상륙작전미 공군 폭격기대가 성진 금속공장에 폭탄 350톤, 진남포 공장지대에 폭탄 284톤, 극동공군 폭격기 550대가 북한군 기지에 폭탄 500톤, B-29 전폭기가 고성 철강공장에 폭탄 350톤을 투하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공군, 미 제 5공군, 미 해병대 소속기 250대가 평양비행장 등을 폭격하는 등 하늘을 장악한 미군과 연합군에게 북한군은 속수무책이었다. (5권 p.139)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은 탈환됐다. 피난을 떠나지 못했던 서울 시민들은 국회에서 만든 '부역행위특별법'에 의해 심판 받는다. 대한민국 국토와 국민은 정부와 위정자들에 의해 버려졌지만, 미군과 유엔군이 되찾아줬다. 국토는 다시 위정자들의 손아귀로 들어가고 국민은 여전히 관리와 처벌의 대상으로 남았다.
전 세계의 군사와 무기가 집중됐던 한국전쟁은 전쟁이라기보다 부도덕하고 무능력한 김일성과 이승만이 저지른 만행에 가까운 사태였다. 국제 정세를 보자면, 미국과 소련, 중국,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한 직간접적 개입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대부분의 국민을 위한 정치인, 관료, 재계 인사들은 없었다는 사실이 만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고 찜찜했다. 현재도 전쟁은 휴전 상태일 뿐이고, 1퍼센트의 대한민국 정부와 재벌들은 99퍼센트의 국민 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때문이다. 특히 2014년은 한국 전쟁만큼이나 대부분의 국민들 마음에 커다란 상흔이 새겨진 한 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인천상륙작전> 전6권, 윤태호 지음, 한겨레출판, 2014년 12월 3일 초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