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2014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로 김종술 지용민 하성태 기자를 선정했습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은 한 해 동안 최고의 활동을 펼친 시민기자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시상식은 2015년 1월 23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50만원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2015 2월22일상'과 '2014 특별상', '2014 올해의 기사상',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 드립니다. [편집자말] |
"술이 낫지 않을까요? 어제도 마시긴 했지만 오늘 같은 날은 차보다는 술이 나은 것 같네요. 뭐, 종목은 상관없어요. 아무데나 가죠."하필 그날이었다. 8:1이라는 헌재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결과를 보면서, 일주일 전에 잡은 약속이 새삼 후회됐다. 이런 날은 마음 터놓고 지내는 사람과 술을 진탕 퍼마시고 벽에 대고 욕이라도 실컷 하고 싶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차(茶)를 앞에 놓고 형식에 얽매인 질문을 주고받는 일은 오늘만큼은 피했으면 했다.
기우였다. 그도 술이 고팠다고 했다. 둘은 오래된 동지처럼 의기투합해 술집을 찾았다. 지용민 기자와 첫 만남. '2014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을 탄 그를 인터뷰를 해야 된다는 압박은 어느새 번개 같은 설렘으로 변했다.
"예상을 못했어요.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헌법을 여러 번 봤거든요. 당연히 기각될 줄 알았어요. 소수의견을 다 들었는데, 그게 다수의견인 줄 알았거든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잖아요. 대법원장, 여당과 야당에서 추천받은 몇 명이,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국회의원의 자격을 박탈한다? 사법 폭력 아닌가요?"지용민 기자의 논리는 기사뿐 아니라 말에서도 빈틈이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대학에서 공부한 헌법의 체계와 법관의 양심, 삼권 분립과 상호 견제 기능 등의 논거를 나열하며 정당해산 심판 결과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인용 의견을 낸 법관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손가락으로 세었다는 그는, 6번째 법관 이름이 불릴 때 본인의 예측이 틀렸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그랬다. 그동안 날카로운 분석글을 썼던 지용민 기자의 정당해산심판 결과 예측은 틀렸다. 상식과 헌법의 존엄을 믿는 사람이기에 도저히 점칠 수 없는 판결. 그것이 이번에 헌재가 저지른 정당해산심판 결과였다.
지용민 기자의 예측이 빗나간 날, 그를 만났다 지용민 기자는 경기도 부천에 살지만, 날마다 전철을 이용해 서울 한복판으로 출퇴근한다. 일곱 살, 다섯 살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40대 남자. 그는 출근길에는 이리저리 떠밀리고, 퇴근길에는 책과 스마트폰을 뒤적이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리고 토·일요일에는 꼭 아이들과 놀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따뜻한 남자이기도 하다. 사실 <오마이뉴스>에 올라오는 그의 분석글은 날카롭고 예리하다. 때문에 그의 성격이나 외모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얼굴 어디서도 그런 인상을 찾기 어려웠다.
"왜 글을 쓰냐는 질문은 아직까지 스스로에게 던지는 화두입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전에는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했어요. <오마이뉴스>를 통해 블로그를 소개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요. 지금은 오히려 반대가 되었네요. 학교 다닐 때부터 글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장편소설 공모도 응모해봤고요. 지금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어요."지금 다니는 직장에 입사하기 전에 언론사에 잠깐 있었다는 지용민 기자는 글에 욕심이 많았다. 블로그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했고, 소설을 쓰는 작가를 꿈꿨다. 시민기자로 자리 잡기 전 몇몇 언론매체에서 논객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0년에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올렸지만 2013년까지는 글을 많이 쓰지도,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다.
2013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분석' 글을 쓴 것도 이때부터다. 출퇴근 이동 중에 소재가 생각날 때마다 스마트폰에 기록해두고 틈틈이 관련 자료도 찾아서 저장해뒀다가, 퇴근 후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보통 새벽 1시쯤 마무리한다고 한다.
다음 날 새벽에 배달된 신문을 보고 기사를 수정·보강해서 편집부로 보내면 끝. 가끔은 '피곤한데 내가 이 시간까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단다. 새벽까지 자료를 찾아가며 기사를 쓰는 건, 생업을 따로 둔 시민기자의 숙명과도 같은 일. 그도 예외는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참사 초기에는 분노가, 나중에는 40대로서 사회적 책임감이 느껴졌어요. 세월호 관련 분석글은 독자로부터 반응도 뜨거웠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 즉 불인지심(不忍之心)이 소통을 만들어낸 것입니다.여전히 진행형이에요. (세월호 참사는)시간이 지난다고 묻힐 성질의 것이 아니잖아요. 국가는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어요. 구조 가능성이나 방법론도 진실하지 못했어요. 에어포켓 운운하며 희망고문도 너무 심했어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이렇게 조용히 있는 게 맞나 성찰을 많이 했어요. 교황이 방한 후 되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한 말씀, 저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진실과 합리성 보이는 그의 분석글이 좋다
지용민 기자의 2014년 분석글 중 많은 양을 차지하고, 그가 가장 열정을 쏟아부은 글이 세월호 사고 관련 글들이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국민들이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과 냉철한 통찰력, 그리고 두 아이의 부모로서 가지는 고뇌와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속 시원하고, 때로는 '아, 그렇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통으로 교감했고, 많은 독자들이 카타르시스를 얻었다. 기사의 힘은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지용민 기자의 분석글보다 재미나게 읽은 글이 있다. 아내인 박보경 시민기자와 같이 쓴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 시리즈다. 아이 키우는 문제, 시댁 문제 등을 남편과 아내의 시각에서 재미있게 풀어낸다. 첫 번째 글을 쓰면서, 나중에 이 시리즈를 엮어서 출판을 해보자고 약속했다는 지용민·박보경 시민기자 부부. 그런데 세월호 참사와 연이은 대형 사건·사고로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며칠 전 두 번째 글이 올라왔다. 아이를 소위 '좋은'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 하는 이웃을 보는 부부의 고민을 털어 놓은 글이다. 읽다보면 슬며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위장전입' 하는 7살짜리들... 놀랍습니다).
지용민 기자는 우리 사회가 만든 질서는 지켜야 한다는 자칭 보수주의자다. 한 사람을 두고 보수주의, 진보주의라고 딱지를 붙이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의 우선은 진실성과 합리성이다. 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용민 기자의 글은 사람만큼 솔직하고, 그러면서도 치밀한 자기 고민이 있어서 좋다. 또 독자들의 시선에서 너무 멀지 않아서 편안하다.
2015년에도 그가 새로운 '창문'을 보여주는 분석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리라 믿는다. 또 아내와 함께 쓰는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 시리즈도 너무 기다리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6년에는 아내와 함께 시상대에 올라도 좋을 일이다. '올해의 뉴스게릴라'라는 좋은 상이 그에게 주마가편(走馬加鞭)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나의 욕심일까? 큰상, 크게 축하한다.
☞ 지용민 기자 기사 보러 가기[올해의 뉴스게릴라① 김종술] 금강 지키는 '요정' 기자... 이혼이 시급합니다[올해의 뉴스게릴라③ 하성태] "이 나라 대통령이 이런 사람이라니... 기분 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