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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첩의 탄생> 책표지.
<간첩의 탄생> 책표지. ⓒ 시사인 북
A씨는 화장실이 딸린 작은 방에 감금된다. CCTV가 설치된 방이었다. 그 방에서 24시간 감시를 받으며 생활한다. A씨는 4달 동안 감금당한 채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에 자백하라고, 거짓 문서에 사실임을 인정하는 사인을 하라고 강요 당한다. 그들은 A씨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자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게 한다. 그리고 거짓말과 감언이설로 회유하는 한편, 협박하나 먹히지 않자 폭행(고문)도 서슴지 않는다.

A씨의 이야기를 읽으며 부림사건(부산 학림 사건. 1981년 9월)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이나 <남영동 1985>의 장면들을 떠올릴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두 사건 모두 특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른바 '빨갱이'가 아닌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단정 지은 후 허위자백을 강요하며 온갖 고문을 했고, 그렇게 받아낸 증거로 빨갱이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두 사건 다 30년 전 군사정권 시대에 일어난 일. 이제는 시대도 많이 달라졌고 민주국가이니 그야말로 옛날에나 가능하던 일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도 30년 전에나 있던 공갈과 협박, 고문에 의한 조작이 계속되고 있다면?

변호인단이 유가려를 만나려고 수없이 찾아갔던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의 굳게 닫힌 문 안에서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드는 '사업'이 넉 달 동안에 걸쳐서 밤낮없이 진행되었다. (줄임) 수사관들은 CCTV가 설치된 방으로 가려를 옮겼다. 유가려는 24시간 감시를 당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가려가 독방에 돌아가 쉬려고 하면 아줌마가 인터폰으로 숙제를 하라고 족쳤다. 끊임없이 진술서를 쓰라고 요구하면서 가려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원하는 진술을 얻어내려는 일종의 가혹행위였다.

조사는 새벽까지 계속되었고 대머리는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가면서 했다. 가려가 말을 듣지 않으면 물병으로 때리고 몇 시간이고 앉지 못하게 세워두었다. 가려는 폭행이나 욕설보다 오빠를 추방하고 교화 보낸다는 말이 더 무서웠다. 화교라는 약점이 잡힌 물정 모르는 처녀를 압착기에 넣고 힘껏 누르자 점차 새로운 간첩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힘껏 누르기만 하면 필요한 증거는 나오기 때문에 편리한 방법이었다. - <간첩의 탄생>에서

유가려라는 한 여성이 2012년 10월 30일 이후 겪은 일, 그 중에서도 아주 적은 부분에 해당한다. 유가려씨는 2013년 1월 21일 <동아일보>의 보도를 통해 알려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주인공인 유우성씨의 동생이다. 그녀는 이처럼 국정원 수사관들의 감시와 협박, 폭행을 견디다 못해 오빠를 간첩으로 만드는 것에 협조하고 말았고, 국정원이 만든 간첩 유우성씨는 법정 투쟁으로 2심(2014년 4월 25일)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힘껏 누르기만 하면 '간첩' 증거는 나온다

<간첩의 탄생>(시사IN북 펴냄)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그 전모를 밝히는 책이다. 유우성·유가려 남매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자랐다. 엄밀히 말하면 남매의 신분은 중국 국적자도, 북한 국적자도 아닌 재북화교였다. 그럼에도 유우성씨가 자신이 탈북자(북한 이탈주민)라고 신고한 것은, 재북화교지만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 음식들을 먹으며 북한 아이들과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북한 주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매의 가족은 4대 증조부 때부터 북한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것도 친가와 외가 모두. 그리고 재북화교가 어느 쪽이든 국적을 취득하려면 복잡한 절차와 심사를 거쳐야 하는지라, 국적을 취득하기보다 중국에서 내준 여권과 북한에서 내준 외국인등록증을 신분증으로 사용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동아일보>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보도가 있기 전까지 유우성이란 이름은 탈북자 1호 공무원으로 유명했다.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방송 출연(KBS <통일열차>, MBC <통일전망대> 등)도 여러 번 했으며,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연도 했다.

북한 회령에 살 때부터 한국의 자유를 꿈꾸던 남매였다. 2004년에 탈북,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해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된 유우성씨는 어머니의 죽음(2006년) 후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생을 데려와 함께 살고 싶었다. 그리하여 동생을 데려와 일련의 절차와 심사를 거친 후,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동생과 헤어졌다. 그런데 국정원이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만들고자 동생을 감금한 것이다.

 유우성씨
유우성씨 ⓒ 이희훈

남매가 헤어진 것은 2012년 10월 30일. 국정원 수사관들은 그가 재북화교 출신이라는 것뿐 확실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유우성씨를 서울구치소 B사동 2호 독방에 수감 시켰다. 그래 놓고 증거를 만들어내는 데 온갖 치사하고 유치하며 파렴치한 짓들을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수감되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유우성씨에게 '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돈만 챙기고 책임도 안 진다. 너희 아버지 찾아가 큰돈을 요구할 것이다'와 같은 거짓말로 회유하기도 했다. '공권력이 왜 이렇게 유치해? 지성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간첩의 탄생>은 당사자인 유우성·유가려 남매와 유우성씨의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의 증언, 재판과정과 그 기록들을 참고로 한 방송다큐 작가가 쓴 책이다. 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면 고통스런 날들을 보낸 당사자들에게 실례가 될까?  

"국정원이 이유 없이 누군가를 간첩으로 몰아?"

"이 사건은 발표 시기도 아주 묘하지 않아요?"

가장 젊은 축인 김용민 변호사가 말했다.

"유우성이 1월에 체포되고 2월 말에 기소됐어. 서둘러도 보통 서두르는 게 아니지. 정권교체기마다 불거지는 국정원 개혁문제와 무관하지 않지. 국정원의 국내사건 수사나 정치 개입 금지 얘기가 나오는 시점에 이 사건을 터트렸지. 왜 그랬을까?"

천낙봉이 변호사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언론을 통해서 이 사건을 부풀리고 키우는 거야. 탈북자 중에 간첩 많다. 탈북자 수사를 강화해야 한다. 국정원 수사관 숫자를 늘려야 한다. 기구 축소는 안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거지. 찌라시 언론들이 국정원 입맛에 맞게 그런 기사들을 써주고 있고." - <간첩의 탄생>에서

이 사건을 보면서 '국정원이 정말 증거를 조작하면서까지 한 개인을 간첩으로 몰았을까?' 의문을 품을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관련 보도를 보면서 "국정원이 이유 없이 누군가를 간첩으로 몰아?"하고 말한 사람을 봤다. 그런 그들에게 <간첩의 탄생>에 나오는 이 부분을 꼭 들려주고 싶다.

책 끝에는 유우성씨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간첩이 된 탈북자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유우성씨가 무죄 판결을 받은 후 그들 역시 하나둘 혐의를 벗어가는 중이라니 다행이다.

2013년 1월 21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보도를 보면서 '이거 또 누구 잡으려는 거야? 어떤 사건을 덮으려고 간첩까지 만들어내는 거지?'라는 의문부터 품었다. 사실이란 전제하에 내보내는 보도를 보면서 이처럼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매우 쓰리다. 그리고 슬프다.

이 책을 쓰면서 '민주주의는 '법치'가 제대로 돼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상식을 배반하고 법치를 무시하는 '공안권력'을 고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 <간첩의 탄생> 저자 프로필에서

진실이 정말 궁금해 관심을 둔 사건이라 저자 프로필까지 인상깊게 읽었다. 저자 프로필 그 끝 부분,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동감했다. 저자의 뜻에 동참, 공안권력을 고발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간첩의 탄생> 문영심 씀, 시사IN북 펴냄, 2014년 10월, 377쪽, 1만5000원



간첩의 탄생 -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진실

문영심 지음, 시사IN북(2014)


#서울시공무원간첩#유우성#유가려#탈북자#장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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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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