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에는 상반되는 두 가지 지표가 있다. 농촌에서는 계속 농지가 축소되고 농민은 줄어드는 반면, 도시농업의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농지는 확대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1가구 한평텃밭갖기 운동을 발표하기도 했다. 농촌의 몰락은 식량위기로 직결되고, 한 국가의 식량주권을 외국의 거대 곡물기업에 내주게 되는 식량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
23일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는 '지속가능한 농업농촌과 식량주권을 위한 도시농업의 역할'을 주제로 농민단체와 도시농업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각 국가들과 전방위적인 FTA체결과 쌀시장 전면개방을 앞두고 있는 농촌의 암담한 현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예고된 식량위기, 농업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2012년을 기점으로 300만명 이하로 줄어들기 시작한 농민의 숫자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10년 후에는 200만명 아래로 줄어들 것이고, 갈수록 고령화된 농민들이 실제로 농업에 참여하는 비율은 통계 숫자보다 더 줄어들 것이다. 더구나 도시와 농촌간의 소득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농촌 안에서도 상위와 하위간의 소득이 15배 이상 차이가 나는 등 양극화 현상은 농촌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발제에 나선 정기환 상임이사(국민농업포럼)는 "세계의 기상이변 발생빈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농업생산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고, 곡물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가격 폭등의 원인이 된다, 식량을 수출하던 국가들은 자국의 식량확보를 위해 수출을 금지하거나 줄일 수밖에 없다"며 식량자급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식량주권을 강화하고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자원 고갈로 인한 세계 식량위기는 오래전부터 예고된 재앙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식량산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이윤을 몰아주는 정책으로 개발도상국들의 농업을 파괴했다. 한국의 정치권은 1990년대 중반 우루과이 라운드를 시작으로 농업시장을 점차 개방하면서 지금의 FTA로 귀결되는 즉 농업시장을 완전 개방하는 첨병 역할을 했다. 이후에 식량위기를 대비한 정책은 들리지 않는다.
27년간 농사를 짓고 있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전기환 부의장은 농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농촌은 삶의 터전이었고, 꿈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자식에게도 물려주지 못하는 농업에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지금의 농업인구는 통계로 280만명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농사를 짓는 농민은 100만명이 안 된다. 또한 농사만으로 생계를 이끌어가는 농민은 50만명 수준으로 다른 농민들은 농사외에 다른 일을 해야만 생계를 꾸려갈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25농가 중에서 다섯농가만 농사로 먹고 살고 있다."국민이 함께하는 국민농업이 희망이다3억 원의 부채가 있다는 그는 개방농업정책은 구조적으로 농민이 빚을 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장에 석유와 곡물이 중단되면 "농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며, 다국적 곡물메이저 기업들에게 종속되고 자본기업에 의해서 움직일 수 없게 된 지금의 농업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면 희망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희망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지속가능한 농업이 되려면 농민후계자를 양성해야 한다. 농사를 짓는 후진인력이 안정화 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이것이 안 되면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사회의 가장 약자인 농민만 가지고는 농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민이 함께하고 연대하는 농업으로 가야한다." 친환경농업인연합회 박종서 사무총장은 "한국의 친환경농업은 인증제도와 검사 위주로 하는 굴레에 갇혀 있고 모든 것을 검사 위주로 하는 함정에 빠져 있다, 농민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정부가 인증제도라는 법으로 빼앗아갔다"며 친환경인증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촌을 위한 도시농업의 역할에 대해 김충기(도시농업시민협의회) 공동대표는 "도시농업운동의 가치는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대안으로 농사를 선택한 것"이라며, 도시농업의 중심은 농촌이 되어야 하고, 도시와 농촌의 교류와 상생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또한 도시농업의 문제와 한계에 대해서도 밝혔다.
"해마다 농촌으로 농활도 다녀오고, 도농교류 차원에서 농산물 직거래도 하고 있다. 도시농업 교육 과정에서 농촌의 현실과 식량주권을 비롯한 건강한 먹을거리 교육을 하는 것도 농촌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높이려는 노력이다. 도시농업이 민간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행정주도로 가고 있다. 운동적인 입장이 아닌 성과와 정책홍보 중심으로 가고 있는 것은 문제다."식량자급률 22%, 농촌의 위기는 식량주권과 국민 생존권의 위기다. 그동안 도시농업이 여가활동과 자급하는 것에서 머물렀다면, 이제는 농촌으로 시선을 돌리고 식량주권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농민단체와 도시농업단체가 연대하고 도시와 농촌이 교류하는 운동을 시작으로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변화들이 모색되지 않는다면 가장 큰 식량위기의 피해는 도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