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희(31)씨는 시민단체 상근 활동가다. 그는 '열린사회시민연합'이 서울 은평구청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은평구청소년문화의집'에서 일한다. 구씨는 8년 전 부산의 한 시민단체에서 인턴을 거쳐 '반(半)상근' 형태로 근무한 일이 있다. 해당 단체는 아동교육 등으로 업무가 많은 곳이었지만 상근자를 추가로 채용할 만한 재정적 여건이 되지 못했다.
대학에 다니던 구씨는 수업과 겹치지 않도록 오전과 오후 근무시간을 정하고 주 5일 근무했다. 급여는 월 40만 원 안팎을 받았다. 졸업 후, 다른 시민단체에서도 반상근을 했다. 이 단체는 부설 기관으로 어린이학교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 시민단체도 상근자를 채용할 여력이 없어 구씨에게 반상근 계약직을 부탁했다.
그래서 구씨는 같은 사무실에서 다른 두 단체의 업무를 보며 각 50만 원씩, 총 100만 원가량 월급을 받았다. 구씨는 현재의 직장에서 상근자 일을 맡을 때까지 불안정한 신분, 낮은 보수에 고달픈 생활을 감수해야 했다고 말했다.
기대 품고 왔지만 열악한 처우, 과중한 업무 못 버텨
시민단체에서 정규직 상근자로 일한다고 해도 일손이 부족해 과도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김아무개(26)씨는 3개월간의 인턴을 거쳐 지난 6월, 서울의 한 시민단체에 간사로 들어갔다. 김씨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배우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간사 한 명이 퇴직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김씨 혼자 업무 공백을 다 메우게 되면서 활동가로서의 자긍심과 보람을 느낄 틈이 없었다. 우편 작업과 전화 상담, 행사 준비에 포토샵으로 포스터를 만드는 등 온갖 업무를 도맡아야 했다.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9시를 넘겨 야근을 하는 날이 많았지만 보수는 월 1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김씨는 4개월 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학생 강아무개(25)씨는 장래 직업으로 시민단체 활동가를 꿈꾸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방학 동안 부산의 한 시민단체에서 인턴 활동을 한 뒤 생각이 바뀌었다. 냉방기도 없는 사무실에서 땀 뻘뻘 흘리며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활동가들을 보며 자신의 진로 계획을 수정했다.
"인턴을 하기 전에는 활동가들이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보람 있는 직업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월 100만 원 남짓의 보수에 식비 지원이 안 돼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몇 달째 휴대폰 요금을 못 내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깨달았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을요. 그렇게 일하면 나도 의욕을 잃고 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청년들이 이처럼 열악한 처우와 과중한 업무 부담으로 그만 두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차세대 활동가를 충원하지 못하는 시민단체들이 늘고 있다. 떠난 활동가의 업무를 남은 상근자들이 나누어 맡게 된다. 더 가중된 업무 때문에 남아있던 상근자도 퇴사를 결심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시민사회단체 79%, "활동가 충원 어려워"
김동춘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 등이 지난 2013년 발표한 '시민사회 활동가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을 보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설문에 응한 127개 시민사회단체 중 79%가 "활동가 충원이 어렵다"고 답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낮은 임금(86.2%), 열악한 근무조건(42.5%), 비전의 부재(19.5%), 낮은 인지도(18.4%) 등의 순으로 답했다.
조사결과 활동가들(평사원급)의 평균월급은 115만2200원이었다. 활동가의 90% 이상이 대학 졸업 이상 고학력이지만, 2014년 대졸자 평균 초봉 2363만 원의 60%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팀장·부장 등 중간책임자급이 돼도 평균 월급은 151만4900원에 그쳤다. 사무처장 등 책임자급을 보면, 무급자도 섞여 있어 평균임금이 137만1500원으로 낮아진다. 연차에 따른 임금상승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2012년 기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300명을 표본으로 봤을 때 단체 활동 경력이 평균 4.97년으로 짧았다. 또 대부분 단체가 차세대를 이끌 '허리'가 약한 '모래시계 구조'를 보이고 있다.
"청년들이 (일단은) 계속 유입되지만, 금전적 어려움과 이상과 현실의 괴리 등을 이유로 금방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조영수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인력 재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시민단체가 노령화되는 문제를 걱정했다. 김광수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은 "예산이 한정돼 월급을 많이 줄 수 없기 때문에, 인력을 충원하기보다는 사업을 줄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인력난은 지방일수록, 규모가 작은 시민단체일수록 심각하다.
서울의 대형 시민단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국내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지난 4월 신입간사 13명을 한꺼번에 채용했다. 참여연대 상근 활동가 50여 명의 20%를 넘는 규모다.
그러나 이번 대규모(?) 채용은 상근자 정원을 늘린 것이 아니었다. 중간에 퇴사한 간사들이 많아 이를 충원하기 위한 신규인력 모집이었다. 이선미 참여연대 간사는 "중간에 퇴사하는 활동가들이 많은 편"이라며 "고연차와 저연차는 많이 있는데, 중간 허리층이 얇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20대 청춘! 기자상 응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