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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48년 2월 23일생이다. 내가 태어나던 시절에는 나라 전체가 음력을 사용했으니, 당연히 내 생일은 음력이다. 양력 생일은 대개 3월 말이나 4월 초에 닿는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해마다 예수 그리스도님의 수난 시기인 '사순절'을 엄격히 지내는데, 내 생일이 사순절 안에 드는 경우가 많고, 아슬아슬하게 사순절을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충남 태안의 태안초등학교 47회 출신이다. 태안초등학교는 기수(基數)와 졸업생들의 생년이 나란히 간다. 1948년생들은 대개 48회인 식이다. 그런데 나는 48회가 아닌 47회다. 2월생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3월 1일을 기점으로 취학 연도를 가르기 때문에 나는 47년생들이 주축을 이루는 47회 쪽으로 따라붙게 되었다.

1948년 2월 23일생이 47년생들이 주를 이루는 47회 쪽에 붙게 되었으니, 나는 모든 면에서 꼴찌를 면할 수 없었다. 또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때는, 6·25 한국전쟁으로 빚어졌던 취학 적체현상이 일시에 해소되던 시기였다.

고교생 시절의 내 얼굴 불행히도 내게는 초등학생 시절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중학생 시절의 사진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고3 시절 1학년 후배가 그려진 내 얼굴 그림을 양념으로 소개한다.
고교생 시절의 내 얼굴불행히도 내게는 초등학생 시절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중학생 시절의 사진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고3 시절 1학년 후배가 그려진 내 얼굴 그림을 양념으로 소개한다. ⓒ 지요하

취학 시기를 놓쳤던 나이배기들까지 왕창 입학을 해서, 태안초등학교 제47회는 8개 학급까지 됐다. 한 학급에 60명씩 8개 학급이었으니 엄청난 규모였다. 교실이 '콩나물시루' 같다는 표현도 곧잘 통용되었다. 한 학년 8개 학급 기록은 태안초등학교 100년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남녀부동석이라는 유교적 관습이 엄연하던 시절이어서 지금처럼 남학생과 여학생을 섞어서 학급 편성을 하지 않았다. 철저히 남자와 여자를 갈라서 학급 편성을 했는데, 1반부터 5반까지는 남학생 반이었고, 6반부터 8반까지는 여학생 반이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입학할 때 1반이면 졸업할 때도 1반이었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학년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을 섞어서 새로 반을 편성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줄곧 4반이었다. 그러니 초등학교 시절의 동창생들 모습을 기억한다는 것은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47회 동기들 중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한다. 대개는 한두 살씩 더 먹은 친구들이고, 심지어는 네댓 살이나 나이 차가 나는 동기들도 있다. 그러니 초등학교 시절 내가 모든 면에서 어떻게 꼴찌를 면할 수 있었겠는가. 처음에는 꼬맹이 신세에다가 놀림가마리, 천덕꾸러기였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여러 가지 면에서 만회를 할 수 있었다. 운동신경이 발달해서 달리기를 했다하면 노상 1등이었다. 그러나 운동회 날은 사정이 달랐다. 3등까지만 상을 탈 수 있으므로 아이들은 줄을 맞출 때부터 경쟁을 했다. 덩치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과 경주를 하려고, 다시 말해 앞줄에 서려고 맹렬히 몸싸움을 하곤 했다. 인원은 많고, 프로그램도 많고,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담임선생님은 제대로 통제를 하지 못했다. 덩치 작은 내가 뒤로 밀려나도 "너는 달리기를 잘하니까 그냥 뛰어"라며 내버려두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덩치 큰 아이들과 경주를 해야 했고, 결국 부모님께 내가 1등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드리지 못했다.

1학년 때와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 모습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1학년 초 처음 글씨 쓰기를 할 때 왼손잡이인 내가 왼손으로 연필을 잡고 글씨를 쓰니 담임선생님이 오셔서 오른손으로 연필을 잡게 하고 내 오른손을 감싸듯이 쥐어준 적이 있는데, 내 오른손을 뜨겁게 했던 그때의 신묘한 감촉은 지금도 내 손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에게 아이들 손을 자주 잡아주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3학년 때의 담임선생님과 4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모두 예전에 별세하셨다. 5학년과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한 분으로 지금도 살아계시지만 바깥출입을 거의 못하시는 것 같다. 전에는 은사님들을 가끔 찾아뵙기도 했는데, 요즘은 나도 신수가 원활하지 않고, 이런저런 일이 다 여의치 않다.

하지만 새해 연초에는 근처에 한 분 살아계신 초등학교 은사님을 꼭 찾아뵐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난해 발간된 충남 태안의 태안초등학교 100년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안초등학교#초등학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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