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상상언저리 개업 500일 파티
 상상언저리 개업 500일 파티
ⓒ 조성봉

관련사진보기


"힘들고 지칠 때는 천천히 가도 돼. 중요한 건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를 잊지 않는 거야."

새내기 시절부터 10여 년 동안 대학언론운동을 하고 누구보다 늦게 군대에 다녀와 사회로 나온 나에게는 모든 것이 막막해 보였다. 토익 시험은 한 번도 보지 않아서 점수가 없고, 통장의 잔고는 당연히 0원, 4년제 대학도 두 곳이나 다녔지만 졸업장도 제대로 없는, 그야말로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잉여인간(?)이었다. 물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학보사 시절에 배운 사진기술이 하나 있었지만 내가 갈 곳은 별로 없었다. 

30대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학생회, 학보사, 동아리 활동을 하던 선후배들과 술자리에 모였다. 2008년 당시는 전 국민적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로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스무 살의 꿈과 열정을 갖고 있던 나,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토론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마포, 홍대에 우리 2030 청년들의 공동체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직장생활 하면서 대학 시절처럼 자주 모이지도 못할 거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도록 하자."
"땀 흘려 일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이런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도록 우리가 함께 노력해보자."

우리들이 앞으로 어떻게 30대를 살아가야 할지, 서로의 마음 속에 우리가 가야 할 좌표들을 한 글자 한 글자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써내려갔다.

소비와 소모의 문화가 아닌 관계지향적 문화를

우리동네 반찬봉사 모임 '반쪽' 에서 2013년부터 2014년 가을 두번에 걸쳐 독거노인분들에게 만두를 빚어 전달했다. 2014년에는 길원옥,김복동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도 전달했다.
▲ 좋을 '만두' 하지 행사 우리동네 반찬봉사 모임 '반쪽' 에서 2013년부터 2014년 가을 두번에 걸쳐 독거노인분들에게 만두를 빚어 전달했다. 2014년에는 길원옥,김복동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도 전달했다.
ⓒ 조성봉

관련사진보기


직접 망원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다양한 음식도 만들고 밥도 같이 먹는다. 개인당 5천원씩 준비해서 여럿이 뭉치면 맛난 음식을 먹을수 있다.
▲ 상상 언저리 집밥모임 직접 망원시장에 가서 장도 보고, 다양한 음식도 만들고 밥도 같이 먹는다. 개인당 5천원씩 준비해서 여럿이 뭉치면 맛난 음식을 먹을수 있다.
ⓒ 조성봉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7~8명이 의기투합해서 시작하게 된 청년모임의 이름은 바로 '우리동네청년회'. 청년회 정회원들은 매달 첫째 주 토요일마다 서울 마포구에서 독거노인들을 위한 반찬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마포구 연남동으로 이사 오고 나서는 매월 둘째주 토요일마다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 찾아가서 대청소도 하고, 잡초도 뽑고, 지하에 쌓여 있는 짐정리도 하고 있다. 회원들이 직접 피켓도 만들고, 홍대 거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1억 인 서명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우리동네청년회에서는 이뿐만 아니라 독서모임, 다큐영화모임, 몰래산타, 역사기행모임, 도시농부모임, 집밥모임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가입된 회원들은 40여 명으로 매달 소액의 회비를 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동네청년회와 지역의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뜻을 모아 후원금을 걷기 시작해 마침내 2013년 4월 19일, 홍대 중심가에 28평의 홍대 '상상언저리'라는 2030청년공간도 열었다.

상상언저리는 '언.제나 저.곳에는 이.야기가 넘친다'는 뜻으로, 프랜차이즈로 상업화된 홍대의 문화를 '언저리'에서 놀던 애들이 바꿔보자는 뜻에서 시작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업적이고 쾌락적이라고 하는 홍대 한복판에서 소비와 소모의 문화가 아닌 관계지향적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공간을 만들고 나서부터는 인문학 강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2030홍대뮤지션 자선공연, '좋을만두하지' 마을공동체 프로젝트 등을 통해 2030대가 '더불어 함께하는 삶'에 대한 고민들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요즘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것은 집밥모임. 직장생활에 바빠서 제대로 식사조차 하지 못하는 20·30대 1인가구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은 제대로 밥을 먹으면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기획으로 만들어졌다. 직접 망원시장에 가서 시장을 보는 것과, 모르는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집밥모임을 좀 더 특색 있게 해보자는 제안으로 요즘은 세계요리 테마를 정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들어보고 있다. 월남쌈, 오코노미야끼, 미국수제버거, 그리고 다음 모임에는 겨울을 맞아 시장에서 배추를 사서 김장을 직접 담궈볼 예정이다. 김장은 다들 처음이라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정보의 바다 인터넷 블로거들의 레시피가 있기에 걱정은 없다.

스무 살 우리들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된다
우리동네청년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1억인 거리 서명운동, 홍대뮤지션 자선공연기획 등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해 우리동네청년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1억인 거리 서명운동, 홍대뮤지션 자선공연기획 등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 조성봉

관련사진보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돕기 2030 홍대뮤지션 자선공연 수익금과 겨울 내복을 전달하고 2014년 11월 16일  길원옥,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대협으로부터 우리동네청년회가 받은 나비의 꿈 상패.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돕기 2030 홍대뮤지션 자선공연 수익금과 겨울 내복을 전달하고 2014년 11월 16일 길원옥,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대협으로부터 우리동네청년회가 받은 나비의 꿈 상패.
ⓒ 조성봉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최근에 상상언저리에서는 특별한 공연을 했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돕기 나비기금 마련을 위한 2030홍대뮤지션 자선공연.

20·30대 젊은 층들이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자는 취지에 공감한 2030 홍대 뮤지션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돕기 봉사모임을 진행했던 청년들이 힘을 모아 행사를 준비한 것이다. 티셔츠밴드 윤민석, 강아솔, 섬섬옥수, 도마, 차빛나, 서예린(그림+시낭송) 등이 자발적으로 공연에 참여해주었고, 수익금은 길원옥·김복동 할머니들에게 전달됐다.

2030청년공간 홍대 상상언저리를 만들고 나서, 더 많은 20·30대가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이기 위해 다양한 기획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장사를 목적으로 만든 공간이 아니라 2030세대의 아지트로 만든 공간이다 보니 운영상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카페가 책과 커피 향으로 가득 채워지길 바랐지만, 아침마다 바닥에 흘린 맥주를 닦아내야 했다.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청년들을 위해 메뉴를 건강한 식재료로 채우고 싶었지만, 그저 맥주에 더 잘 어울리는 메뉴들로 바뀌어 갔다.

장사라는 것에 미숙해, 원가가 판매가의 80%를 넘는 단체도시락을 밤을 지새우며 바보처럼(?) 만든 적도 있다. 홍대 앞에 저렴한 카페를 오픈하면 청년들이 알아서 매일매일 북적북적 모일 거라는 생각은 조금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아직은 너무나도 부족하고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해야 할이 태산같이 쌓여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밤을 하얗게 지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우리 사회의 작은 변화,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자고 이야기한 스무 살 우리들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된다. 우린 기억력이 좋으니까.

12월 20일 독거노인분들을 찾아가 성탄트리도 만들고, 한부모 가정 어린이들에게 책도 선물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목도리도 선물했다.
▲ 2014 차별없는 세상만들기 사랑의 몰래산타 뒷풀이 12월 20일 독거노인분들을 찾아가 성탄트리도 만들고, 한부모 가정 어린이들에게 책도 선물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목도리도 선물했다.
ⓒ 조성봉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 상상언저리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Sangsangedge 문의전화 070-8265-2231
* 이 글은 월간 <개똥이네집>에 함께 송고합니다



태그:#마을공동체, #위안부, #2030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진과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