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와 전국규모의 재보궐 선거가 있었던 2014년, 정치권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정당정치의 핵심인 국회, 소위 '여의도 정치'에는 정치사에 남을 만한 굵직한 일들도 많았다. <오마이뉴스>는 그중에서도 '여의도 정치에서 사라진 세 가지'를 통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려고 한다.
[안철수 현상] '안철수'는 사라지고 '현상'만 남았다
"올해 야권에서 일어난 가장 재앙적 사건."금태섭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지난 3월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의 통합 결정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민주당과 절대로 함께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합할 때 합하더라도 양측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기에, 공개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제대로 했어야 한다"라며 당시 통합 결정 과정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금 전 대변인은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대표의 대선캠프 상황실장을 맡았던 최측근인사'였'다.
그는 지난 7.30 재보궐 선거에서 자신이 출마한 서울 동작을에 당 지도부가 기동민 전 정무부시장을 전략공천하자 전격 사퇴했다. 그와 동시에 당 대변인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현재는 당과 거리를 둔 상태에서 싱크탱크 성격의 의제·전략그룹 '더모아'의 이사로 독자적인 정치행보를 하고 있다. 안 전 대표와도 일정 선을 그어 이제 막연히 '안철수 사람'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를 포함해 '안철수 현상'을 좇아 정치권으로 향했던 상당수가 이제 안 전 대표와는 다른 길을 찾고 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시작된 '안철수 현상'은 2014년 막을 내렸다. 지지율 50%의 그가 5% 불과했던 박원순을 지지하며 불출마를 결정하자 그의 이름에는 '현상'이 따라붙었다. 그 후로 '안철수 현상'은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열망의 표상과도 같았다. 이후 대선 출마와 사퇴, 이어 재보궐 선거 출마와 당선, 그리고 신당창당 과정에서도 그것은 유효해 보였다. 그러나 통합 이후 두 번의 선거에서 연패하면서 '현상'이 따라 붙었던 그의 이름은 점점 흐릿해져가고 있다.
이것이 섣부른 결론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더 이상 여의도 정치권에서 '안철수 현상'을 말하는 이는 없다. 정치인 안철수의 행보는 계속되고 있어도 그는 더 이상 어떤 '현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물론 여전히 그는 상당한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일정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또 그의 정치행보가 끝난 것은 아니기에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니까. 그리고 흐려져 가는 그의 이름 뒤에 '현상'은 여전히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안철수 현상'은 사그라졌지만, 그의 이름을 빌려 표출된 '정치혁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도 여야 할 것 없이 '정치혁신'을 말한다.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치세력은 끝없는 혁신을 필요로 한다. 누가 그것을 만들어 낼 것인가의 싸움이다. '안철수 현상'의 실패가 준 교훈은 누군가에 의해 '혁신'되는 게 아니라, 혁신을 통해 '누군가'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은 안철수가 아닐 수도 있다.
[통합진보당] 창당 1103일 만에 '공중분해'... 역사의 뒤안길로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216호실. 문패가 공란이다. 사무실 안도 텅 비었다. 탁상과 의자 등 기본적인 집기만 남았다. 원래는 옛 통합진보당 원내대표실·원내행정실·대변인실로 쓰인 곳이었지만, 지난 26일 '빈 사무실'이 됐다. 의원회관에 마련됐던 진보당 의원실 5곳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는 더 이상 진보당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진보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지난 19일 오전 10시 36분부로 존재하지 않는 정당이 됐다.
지난 19일 헌재는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이 정한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해산을 결정했다. 진보당 소속 의원 5명(지역구 3명 오병윤, 이상규, 김미희 / 비례대표 2명 이석기, 김재연) 전원의 의원직도 박탈했다. 향후 전 의원들과 당원들이 새로운 정당 건립을 시도한다 해도 '통합진보당'이라는 당명은 사용할 수 없다. 진보당이라는 당 자체가 생명력을 다한 것이다.
진보당은 19대 총선을 앞둔 지난 2011년 12월 5일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 탈당파가 뭉쳐서 탄생했다. 창당 후 당시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성사시켰고, 2012년 4월 11일 총선에서 13석을 얻어 원내 제3당으로 진입했다. 진보정당 역사상 최다 의석이었다.
그러나 진보당은 국회에 진입하자마자 위기를 겪기 시작했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비례대표 당선을 두고 당내에서 부정경선 의혹이 불거졌고, 설상가상으로 이석기 의원 등 소위 '당권파(경기동부연합)'가 '종북'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이때 심상정·노회찬 의원과 유시민 전 진보당 공동대표 등은 탈당해 정의당을 창당했다.
이후 지난해 8월 공안당국이 이석기 의원 등을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하면서 진보당을 둘러싼 '종북' 논란은 더욱 거세졌고, 정부는 같은 해 11월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진보당은 법정싸움과 장외집회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당 해산을 막으려했지만 헌재의 결정으로 맥없이 무너졌다.
국회사무처는 정당 해산 결정에 따라 진보당에게 사용 중인 사무실과 의원 집무실 7곳을 지난 25일까지 모두 비우라고 통보했고, 진보당은 기한에 맞춰 국회를 떠났다.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당사에서도 조만간 철수해야 한다. 결국 진보당은 창당 1103일, 19대 국회 입성 940일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법정시한 넘긴 예산안] '연말'은 되찾았지만 '예산심의권'은 약해졌다?
"결론은 금년연말은 우리 모두 정치인과 함께 언론인 여러분들도 조금 연말연시를 여유있게 보낼 것 같다. 계획들 잡아도 괜찮으실 것 같다."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24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여의도는 모처럼 여유로운 연말을 보내고 있다. 일찌감치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한 덕이다. 새해 예산안이 법정처리 시한(12월 2일)을 넘기지 않은 것은 12년 만이다.
1년 전을 되돌아보면 180도 바뀐 상황이다. 여야는 2014년 예산안을 올해 1월 1일 새벽 5시께야 처리했다. 여야는 국가정보원 개혁법과 새해예산안을 두고 마지막 날까지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이를 합의하고 난 직후에도 외국인투자촉진법과 상설특검법을 두고 대치하면서 본회의를 열지 못했다.
강창희 당시 국회의장은 본회의 산회를 선포하며 "국민들께 약속드렸던 시간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 송구스럽다"라고 새해 인사를 했다. 그는 2013년 1월 1일 본회의에서도 "예산안 처리가 이처럼 늦어짐으로써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는 일찌감치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여의도 풍경이 바뀌었다. 당장, '연말 해외출장'이 늘어났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중국과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산업통상자원위 등 각 상임위들도 '의원외교' 차원으로 해외로 떠났다 돌아왔다. 해외 출장 일정이 없더라도 여의도를 비운 의원들도 많은 편이다.
이처럼 국회가 '연말'을 되찾게 된 데는 국회선진화법의 역할이 컸다. 국회선진화법의 핵심조항인 예산안 자동부의제도가 올해부터 적용되면서 예산안 처리를 재촉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은 야당의 상임위 보이콧 와중에도 예산부수법안 지정을 강행하면서 예산안 법정기한 내 처리를 압박했다. 야당도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했다. 자칫하면 정부 원안대로 예산안과 부수법안들이 처리되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 판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은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그는 "여야 모두 선진화법의 장·단점을 다 경험한 해"라면서 "옛날이었다면 예산과 부수법안을 갖고 12월 말까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올해는 그 지리한 파행과 몸싸움을 극복했다, 정치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선진화법의 자동부의제도로 인해 국회 본연의 예산심의권이 무력화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청래 새정치연합 의원은 지난 2일 본회의에서 담뱃세 인상 관련 지방세법 개정안 반대토론에 나서면서 "(자동부의제도로) 안전행정위 법안심사소위권을 박탈해갔다"라며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마치 자구수정 뒤처리나 하라는 예산부수법안 선정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질타했다.
국회 예산결산특위 야당 간사를 맡았던 이춘석 새정치연합 의원도 "국회가 가진 예산안에 대한 심의 확정권이 완전히 무력화, 아니 형해화됐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우윤근 원내대표 역시 "서민을 아프게 하는 담뱃값 인상을 막지 못한 건 국회선진화법과 야당의 한계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