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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의병(1907). 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에 항거하여 처음으로 일어난 항일 의병인 을미의병(1895)은 을사의병(1905), 정미의병으로 이어졌다.
정미의병(1907). 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에 항거하여 처음으로 일어난 항일 의병인 을미의병(1895)은 을사의병(1905), 정미의병으로 이어졌다. ⓒ 자료사진

2015년은 간지로 을미(乙未)년이다. 올해가 1894년 갑오(甲午)년의 2주갑(周甲)이었으니 2015년은 1895년, 을미년의 2주갑이다. 을미년은 명성황후가 경복궁에서 일본 공사가 지휘하는 낭인에게 시해된 사건, 을미사변이 일어났고 연말에는 단발령이 공포된 해다. 

무엇보다도 을미년은 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에 항거하여 처음으로 항일 의병이 일어난 해다. 동학농민운동의 세력을 기반으로 한 이 '을미의병'은 이후 을사의병(1905), 정미의병(1907)로 이어져 경술국치(1910) 이후 항일 무장 독립운동 세력의 근간이 되었다.

'갑오 2주갑'을 보내고 '을미 2주갑'을 맞으며

돌이켜 보건대 억눌린 백성들이 동학의 깃발 아래 봉기한 갑오년 농민혁명의 2주갑이었던 2014년에 대한 기대는 보수나 진보 진영이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진보 역사학계는 봉건질서에 저항한 '동학농민혁명'을 되새기는 데 반해 보수학계는 위로부터의 개혁인 '갑오개혁' 띄우기에 나섰던 것이다. 

 단발령(1895)은 을미사변과 함께 을미의병 창의의 동기가 되었다.
단발령(1895)은 을미사변과 함께 을미의병 창의의 동기가 되었다. ⓒ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은 '120년 전 갑오년'을 이야기하면서 '갑오경장'의 뜻을 풀었다. "경장(更張)은 거문고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을 때 낡은 줄을 풀어 새 줄로 바꿔서 소리가 제대로 나게 한다는 뜻인데, 120년 전의 경장은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이른바 '신 갑오경장'을 은근히 비쳤던 것이다.

이에 대해 야당인 민주당은 곧바로 "1894년 갑오년에는 갑오경장만이 아니라 동학혁명도 있었다."고 반박했다. 정치 세력이란 시간과 역사의 순환에서도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2015년 새해를 눈앞에 둔 지금, 이들의 희망은 온전히 '희망'으로만 그치고 만 듯하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등으로 어수선하게 집권 원년을 시작했던 박근혜 정부로서는 집권 2년차를 옹골차게 풀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낡은 줄'과 '새 줄'의 경계도 짓지도 못한 채 2014년의 정국은 꼬여갔다. 4월에 일어난 여객선 '세월호' 사고는 집권당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지점을 근원적으로 성찰케 하는 대참사였다.

진도 앞바다에 삼백이 넘는 생때같은 목숨을 고스란히 수장하고 만 이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양분되어 사고 수습과 원인 규명을 위한 준비에만 거의 한 해를 보내야 했다. 여러 곡절 끝에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고 세월호조사위원회가 새해에 출범하게 되었지만 지난 1년 동안 정치권은 혼미를 거듭했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존재'를 근본부터 회의할 수밖에 없었던 유족들과 국민들의 좌절과 절망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으랴.

2014년의 사건·사고들... 그리고 상처

그리고 2014년을 달군 사건과 사고들……. 음지에 묻혀 있던 각종 군내 폭력 사태를 드러내게 한 윤일병 사망 사건, 청와대 비선 의혹 문건 유출 파문 등을 거쳐,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 등으로 2014년은 바야흐로 막을 내리고 있다.

이들 사건들을 통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가 꾸려온 '근대의 민낯'이었다. 무너진 원칙과 상식의 실종이 낳은 이 끔찍한 사건과 사고에 이은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은 우리 사회가 매우 경직된 계급사회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환기해 주는 것이었다. 

 팽목항의 등대. 이 등대는 세월호 이후의 한국사회를 가늠하게 하는 표지가 될 수 있을까.
팽목항의 등대. 이 등대는 세월호 이후의 한국사회를 가늠하게 하는 표지가 될 수 있을까. ⓒ 김지형

2014 갑오년은 '청마(靑馬)'의 해였다. 갑(甲)은 오행으로 풀이하면 목(木), 즉 청색이기 때문이었다. 청마의 해는 기운이 넘치고 청말띠는 활달하고 진취적이며 독립심이 강한 성격이라는 희망 섞인 풀이가 넘쳤다. 새해 벽두에 대통령이 서울 현충원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적은 기원은 그런 기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청마의 해, 우리나라에 도약의 기운이 가득하고 국민이 행복한 한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2014 한해는 '도약'은커녕 끊임없는 정치·사회적 퇴행의 시간이었을 뿐이다. '국민의 행복'도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렵다. 애타게 '결자해지'를 요구한 세월호 유족들과 정부여당 사이에 깊게 팬 골은 쉽사리 치유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연말에 불거진 청와대 비선 의혹 문건 유출 사건으로 곤혹스러워졌던 대통령은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를 '헌법수호의 역사적 결정'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그것을 '민주주의의 조종', '유신으로의 회귀'로 인식하는 반대 세력의 존재는 여전히 2015년을 쉽사리 전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2015 을미년은 양(羊)의 해다. 양[미(未)]은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로서 시각으로는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를 가리킨다. 양은 달로는 6월에 해당하는 시간신이고 방향으로는 남남서를 지키는 방위신이다. 12지(支)에서 양은 순하고 평화로운 동물로 나타난다.

양은 온순한 짐승이다. 무리지어 군집생활을 해도 서로 다투거나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도 갖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상형문자 '양(羊)'은 아름다움, 상서로움, 착함 등의 뜻으로 이어진다. 즉 '큰 대(大)'와 붙어서 아름다움[미(美)]이 되고, 나[아(我)]의 결합하여 옳음[의(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습성과 특징에서 한국인들은 양을 일찍이 어질고 착하며 참을성 있는 동물, 무릎을 꿇고 젖을 먹는 은혜를 아는 동물로 인식해 왔다. 또 양은 글자 형태로는 '상(祥)', 소리로는 '양(陽)'과 서로 통하므로 한국 문화 속에 '길상(吉祥)'의 의미로 나타나고 있다.

 양(羊)은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로 순하고 평화로운 동물이다. 사진은 김유신 묘의 십이지신상.
양(羊)은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로 순하고 평화로운 동물이다. 사진은 김유신 묘의 십이지신상. ⓒ 위키백과

우리나라에서는 면양이 일반화되지는 않았지만, 양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존재한다.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 등에서 일본에 양을 보냈다는 문헌 기록이 그것이다. 흔히 산양을 '염소'로 가리키는 말로 쓰긴 하지만, 양(면양)은 우리가 주변에서 염소 보듯 흔히 볼 수 있는 가축은 아니다.

양의 해에 거는 기대

대신 우리나라엔 휴전선의 대표적인 야생동물, 멸종 위기종인 산양이 있다. 천연기념물 217호와 환경부 지정 보호동물인 산양은 현재 남북한 공동 천연기념물이다. 면양은 섬유산업에 쓰이는 양털이나 각종 가죽제품을 만드는 양가죽을 생산하는 요긴한 동물이다. 이래저래 인간에게 양은 매우 쓸모 있는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양의 해가 아니더라 하더라도 새해에 대한 기대가 없을 수 없다. 대통령은 31일 신년사를 통해 새해가 "광복 70주년과 분단 70년을 동시에 맞는 역사적인 해"라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70년을 시작하는 출발점"에 서 있다는 걸 강조했다고 한다.

또 "창의와 혁신에 기반을 둔 경제로 체질을 개선"하여 "국민소득 4만 불 시대를 여는 기반을 다져가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새해 살림살이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국민의 과반수라는 <리서치뷰>의 여론조사 결과(12. 31.)와는 온도 차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망'을 버릴 순 없는 일이다.

'창의와 혁신'을 바탕으로 한 경제라고 했지만, 정부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이른바 '장그래법'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은 그 본뜻을 의심하게 한다. 경제의 주체이되 여전히 대상화된 '을'로서 노동자는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가자 새해로, 그때처럼 '을미적거리지' 말고

'증세 없는 복지'에 얽매여 손쉬운 세수 증대 방안만 짜내다 보니 서민들만 꼼짝없이 그 증세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담뱃값이나 주민세, 자동차세, 재산세 인상, 로또 판매점을 늘린다는 소식에 연말 정산 환급액도 9천억 줄어 '13월의 보너스'조차 행방불명될 소지가 크다는 뉴스가 겹치는 걸 사람들은 우울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갑오세(甲午歲)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 거리다,
병신(丙申)이 되면 못 가리."

동학 연간에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었다는 민요가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이유는 별로 마뜩지 않다. 1894년에서 1896년에 이르는 갑오·병신으로부터 120년, 그 2주갑 사이에 선 을미년 새해에 그 시기의 역사가 변주(變奏)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갑오·을미·병신 연간의 우리 역사를 함축하고 있는 예언적 민요다. 이 노래는 "갑오년에 부패를 척결하고 내정을 개혁하여 외세를 몰아내지 못하면 을미년은 허송세월하게 되고, 병신년이 되면 나라와 백성이 병신이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모든 국민은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 이 땅, 이 나라의 시민으로서 권력과 정부의 실패도 내 것일 수밖에 없는 처지 때문이다. 신년벽두부터 이른바 '장그래법'과 관련한 공방이 예사롭지 않을 듯하지만 그래도 새해에 거는 기대를 물리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양은 온순하게 자연에 순응하며 주어진 환경에 조화롭게 적응해 온 동물이다. 양은 또 부의 척도이면서 상서롭고 정직하며 인내심 강한 동물로 기려져 왔다. 미적대는 시간으로서의 을미년이 아니라, 양의  '인내심'으로 '상서롭고 정직한' 시간을 다스려갈 새해를 그리면서 2014, 갑오년 마지막 밤을 밝힌다.


#을미 2주갑#갑오 2주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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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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