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탈고립', '탈가족주의', '탈자본주의', '탈도시'...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
[기사 수정 : 2월 26일 오후 1시 28분]2014년 9월 3일, 서울의 한 장례식장. 가까스로 울음을 삼키며 고개 숙이는 상주도, 고인의 살아생전 이야기를 나누며 술 한 잔 기울이는 조문객도, 빈소 앞에 늘어선 조화도 이곳엔 없다. 밥통도 조문함도 텅텅 비어있다.
이곳은 고 김경한(향년 63세)씨의 빈소. 영등포역 뒤편 쪽방촌에 살던 그는 한 평 남짓한 방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다. 술을 많이 먹고 전기장판을 틀어놓고 잔 것이 화근이었다. 죽고 나서도 2~3일을, 김씨는 그렇게 홀로 누워있었다고 한다.
김씨의 상주는 장례지원단체 '나눔과 나눔'의 박진옥 사무국장이 맡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장례를 지원해오던 나눔과 나눔은 돈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의 장례를 지원하고 있다. 대상은 주로 무연고자들이다(관련기사 :
장례식 없이 화장터로 직행... "죽는 날까지 혼자").
김씨는 엄밀히 말하면 '무연고자'는 아니다. 충북 제천에 아버지가 살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연락을 끊고 지내온 89세의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을 포기했다. 김씨는 사회적으로 그렇게 고립된 채 죽어갔다. 김씨의 죽음은 '고립사'다.
"이렇게 하면 보이겠지?" 가족 한 명 찾지 않는 김씨의 빈소. '요상한 아이들'이 카메라에 얼굴을 비춘다. 이들은 다음 날인 9월 4일, 화장장에도 동행했다. 빨간 가방, 파란 가방, 반팔에 반바지…. '연다'와 함께 운구차에 탄 '도리'는 차 뒤편을 쳐다보며 말한다.
"아저씨, 배고프겠다. 송편 먹었나. 어제 생일이었대. (경한 아저씨가) 죽어서 만났네. 우리는."
시신이 화장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반. 경한 아저씨의 시신이 화구에 들어가자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아버지, 아버지" 옆방에서는 숨이 넘어갈 듯한 통곡소리가 들리는데, 유독 이 방만 고요하다. '우영'은 한쪽 구석에 앉아 경한 아저씨의 영정사진을 그림으로 그리고, '도리'는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임형주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따라 부른다.
100일 동안 6명이 자살... 명랑하게 관계를 마주하다
'도리(29)', '우영(33)', '연다(27)', '열매(25)'. 네 사람이 함께 하는 '명랑컴퍼니(현 명랑마주꾼)'가 만든 '고립사 다큐멘터리' <경한아저씨 안녕>은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의 상주가 된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운구차를 타본 것도 누군가의 상주가 되어본 것도 처음이라는 네 사람, 이들은 왜 이곳까지 온 걸까. 2014년 12월 말, 네 청년을 인터뷰했다.
네 청년은 아파트에서 만났다. 2012년 마포구에 있는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100일 동안 6명의 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당시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고, 이듬해 청년들은 이곳에서 '명랑마주꾼'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명랑하게 관계를 마주한다는 의미다.
주민들이 잇따라 세상을 버린 이유가 뭘까. 청년들은 그 원인을 '고립'이라고 진단했다. 고립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빈곤의 문제와 만난다. 대부분이 고령의 기초생활수급자인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수급권이 박탈될까 두려워 어떠한 노동도 할 수 없었고, 가족과의 관계가 모두 끊겼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그럴수록 그들은 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었다. 2013년 봄부터 한 해 동안, 청년들은 아파트를 이곳저곳 '쑤시고' 다닌다. 아파트 속 고립된 주민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모르는 사람 집의 초인종을 누르기도 하고, 함께 모여 뜨개질도 하고 텃밭도 가꾸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마주이야기>라는 잡지로 엮어내기도 했다. '장보기를 도와드릴 수 있고', '전구도 갈아드리고요', '목욕탕에서 등 밀어드려요', '말벗 해드려요', '집 청소 도와드려요' 청년 쿠폰을 만들어 주민들과의 접촉면을 넓혔다.
겨울에는 먼저 떠나간 이들을 위한 명랑추모제가 아파트 공터에서 열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2년 10명이었던 아파트 주민 자살자 수가 2013년 2명으로 줄어들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7명의 청년혁신활동가와, 20여 명의 마주꾼들. 30명이 안 되는 청년들이 감당하기에 아파트는 너무 넓고 또 깊었다. 1700세대, 4000여 명. 뭔가 '작당'을 하려면 홍보전단지를 붙이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관계 맺기가 일상에 스며드는 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확실히 밖에서 (행사를) 하는 동안은 나오시고는 하는데, 저희가 기대한 대로, 예를 들어 뜨개질 하나를 밖에서 배웠으면, 그걸 일상으로 가져가서 누군가의 집에서 모여서 함께 뜨개질을 하는 쪽으로는 잘 안 됐어요. 아쉬웠어요."(우영)죽어서야 만난 '아저씨'들... 가족의 역할은 무엇일까'고립사'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2013년 가을, 이 아파트 808호 아저씨의 방을 청소하면서부터였다.
"한번은 혼자 살던 아저씨가 돌아가셨는데, 아저씨 장례 치르고 나서 가족들이 방 정리를 안 하고 통장 아주머니한테 부탁하고 간 거예요. 우리는 아저씨 방 청소한다는 이야기만 듣고, 통장 아주머니가 혼자 힘들어 하시니까 도와드려야지 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집의 상황이… 아저씨가 뇌병변 장애가 있었어요. 아무래도 혼자 몸 컨트롤이 안 되니까 집 상황도 안 좋고 냄새도 많이 나고…. 그렇게 청소를 했는데, 하고 나서 시간이 흐를수록 냄새도 많이 생각나고…, 그때 제가 구로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집에 돌아가면 마음이 많이 버거웠어요."통장 아줌마, 경비 아저씨, 이웃의 유품을 수거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폐지 할머니. 왜 그곳에 아저씨의 가족은 아무도 없었던 걸까. 아저씨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옆집 부부는 몸이 아파 평소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단다. 어느날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냄새로 알게 된 이웃의 죽음. 부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연다는 이러한 이야기를 <808호>란 제목의 짧은 다큐로 만들었다.
'북적대는 서울 도시 한복판에서 인연이 끊기는 일, 혼자 살다 죽는 일은 왜 이리 허다할까요. 관계란 무엇일까요. 궁금했습니다. 그 후로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고립사를 둘러싼 이웃을 만나고, 만나다 만나다 김경한 아저씨를 만나게 됩니다.- 명랑컴퍼니 소개글 중 경한 아저씨의 장례 이후 청년들은 또 다른 아저씨의 고립사 장례에 함께하게 된다. 발인하던 날, 고인의 누나와 조카들이 왔다. 20년 만에 삼촌을 만났다는 조카는 삼촌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가족들은 아저씨의 시신을 유택동산에 뿌렸다. 어떠한 비용도 들지 않는 방식이었다. <경한 아저씨, 안녕>에서 유택동산에 묻히는 시신들에 대해 영구차 아저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갖다버리는 거지, 여기는. 무슨 말인지 알지? 가면 개나 소나 다 쏟아 붓는 거야. 그럼 수십 만 사람이 한데 섞이는 거야. 귀찮고, 두렵고. 여기다 쏟아 붓고 가버리는 거야." 5년째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는 우영은 말했다.
"가족이 보편적으로, 절대적인 안전망이라고 기대하게 만들잖아요. 꼭 결혼을 해야 하고, 자식을 낳아야 (나중에) 너를 부양할 수 있다. 부모님이 왜 그렇게 결혼에 대해서 강하게 이야기 할 필요가 있나…, (생각해 보니) 결국은 (부모님이) 사시면서 보셨던 다른 어른들의 혼자된 모습들. 거기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끝에 있는 단편들을 보고 나니까 가족이 절대적으로 부양을 해야 하고, 그것을 못했을 때 굉장히 잘못한 것으로 주변에서 보는 게 맞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요"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열매는 "물론 사회 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당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3년에는 '지상전'을 했다면, 2014년에는 아파트에서 한 발짝 떨어져 '공중전'을 해보기로 했다.
임대아파트 안 청년들을 아파트 밖으로 불러냈다. 함께 영상을 만드는 '명랑여행자학교'를 진행했다. 청년들의 고민을 영상에 담았다. '청년 쿠폰'은 '명랑수리공'으로 발전됐다. 마포구에 사는 혼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위해 방충망을 수리하고, 물이 새는 샤워기도 고치고, '뽁뽁이'도 붙였다.
2014년 한 해, 고립사를 공부하고 취재하면서 <808호>, <경한아저씨, 안녕> 이렇게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마포구 성미산 마을극장, 경기도 광명의 한 교회 등에서 <경한아저씨, 안녕> '공동체 상영회'를 진행하고 있다. 또 다른 '경한 아저씨'들인 노숙인들과도 함께 영화를 볼 예정이다.
청년들은 틀에 박힌 장례 문화를 바꾸고 싶은 포부도 갖고 있다. 생전 고인의 삶을 구술이나 사진, 영상 등으로 기록해서 빈소를 전시회 형식으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아이디어다. 마을 단위로 이러한 추모공간이 생긴다면 어떨까 라는 상상도 해본다.
"장례 자체가 표준화된 서비스로 제공이 되다 보니까, 그 안에서 주체성을 가지고, 고인에 대한 마음을 표현할 여력이나 여백이 전혀 없는 상태예요. 각자가 고인과 맺어왔던 관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사실 누군가 죽는다는 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게,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되잖아요. 예전에는 관혼상제가 공동체의 경험이었는데 도시에서는 그런 것들이 말소된 것 같아요. 그런 걸 고유하게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마을 공동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싶어요.(도리)" '고립'은 어쩌면 청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울시 청년혁신활동가 지원사업이 끝나면서 명랑컴퍼니는 인건비를 더 이상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 이런 저런 사업비를 받고 있지만 생계를 이어가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걸어간다. 뚜벅뚜벅, 명랑하게. 인터뷰가 끝나자, 네 청년은 "아르바이트 하러 가야 한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덧붙이는 글 | <경한 아저씨, 안녕> 공동체 상영 신청하기 http://www.hellomapo.com/#!-/c3s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