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3일)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에 들어갔습니다. 엄마는 저를 보자마자 묻습니다.
"밥 먹었어?" 이건 엄마가 항상 외출 후 돌아오는 저에게 제일 먼저 건네는 말입니다.
"먹었어요. 근데 뭐 해?" 엄마는 결혼한 아들네 가져갈 밑반찬을 만들고 계십니다. 얼마 전 부모가 된 동생 내외는 초보 엄마, 아빠 노릇에 밑반찬 챙길 여력이 없나 봅니다. 손녀가 보고 싶기도 하고, 아들 며느리가 밥반찬이 없는 것 같다며 며칠을 걱정하시더니 아빠랑 겸사겸사 들르신답니다.
저는 옷도 갈아입기 전, 엄마의 호출(?)에 엄마가 솜씨를 발휘한 반찬의 간을 봅니다. 오징어회무침, 멸치볶음, 버섯조림 등. 진짜 맛있어서 순간 밥 먹은 걸 잊고 밥 달라고 할 뻔했습니다(엄마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이 있음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먹어본 사람은 다 인정할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으십니다).
부른 배와 상관없이 솟구치는 식욕을 누르며 소파에 나란히 앉아 엄마가 즐겨 보는 드라마를 같이 봤습니다. 일 때문에 집을 비우신 아빠 대신 제가 엄마 옆자리를 채운 거였죠. 드라마가 끝나고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 간만에 MBC 예능 프로그램인 <세바퀴>에서 멈춥니다. 엄마가 한동안 즐겨 보시던 프로그램이라 같이 보고 있는데 MC도 바뀌고 포맷도 바뀌었더군요.
"나도 우리 엄마 손 잡고 싶다" 웃느라 우리는 특별한 이야기 없이 그저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쯤 이런 퀴즈가 나옵니다.
"다음 중 가장 만지고 싶은 사진은? 1번 귀여운 강아지, 2번 엄마 손, 3번 돌하르방 코."
과반수의 출연진이 '엄마 손'을 꼽았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엄마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도 우리 엄마 손 잡고 싶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건 엄마가 10년 가까이 엄마의 엄마 손을 못 잡아봤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괜히 짠한 마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엄마 손을 잡았습니다.
"대신 내가 우리 엄마 손 잡아줄게." 저는 사실 딸임에도 다른 집 딸들처럼 엄마에게 다정하거나 애교가 있다거나 하지 않은, 아주 무뚝뚝한 딸입니다. 그걸 저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이랬던지라 나이 먹고는 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 제가 그 순간 엄마 손을 잡았습니다.
"그래, 내 딸 손을 잡으니까 좋다." 그러면서 엄마는 제 손을 더 꼭 잡으십니다. 다른 말없이.
낮에 만났던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을까요. 그녀는 결혼하고 아이 엄마가 되고 보니 친정엄마에 대한 마음이 묘하게 더 애틋하답니다. 결혼 전에는 몰랐던 마음이라고. 저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이 친구가 말하는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은 하지만, 사실 100% 완벽하게는 모를 겁니다.
그럼에도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은 너무도 짠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지금 보고 싶으면 늘 엄마를 볼 수 있는데, 엄마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는 것, 솔직히 저는 아직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옆에 있을 때는 자꾸 그 소중함을 놓치고, 떠나신 뒤에야 후회하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물론 저도 분명 그럴 거고요. 그래서 또 한 번 더 마음에 새겨봅니다(아예 신년 계획으로 추가해야겠습니다).
'옆에 계실 때 조금 더 노력하자.' 그리곤 저도 엄마 손을 더 꼭 잡았습니다. 방송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도 엄마 손 한번 잡아드리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