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이들한테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확정하지 못한 아이들이 있는데, 제가 또 징계를 당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질 것 아니에요? 가급적 늦게 알리려고 합니다."안종훈(43) 동구마케팅고 교사는 수화기 너머로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안종훈 교사의 눈에는 한때 담임을 맡았던 3학년 7반 학생들이 밟혔다. 서울 성북구 동구마케팅고 재단인 동구학원은 겨울방학이 시작된 지 3일 뒤인 지난달 29일 그를 직위해제하고, 오는 12일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안 교사는 지난 2012년 동구마케팅고의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고발했고, 지난해 8월 파면 당했다(관련기사 :
개학 이틀 전, 고3 담임은 왜 쫓겨났나). 지난달 12일 교육부 산하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파면 취소 결정으로 학교에 복귀했다. 학교로 돌아온 지 17일 만에 직위해제를 당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것이다.
그는 6일 오전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보복 징계를 당했다"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동구학원 쪽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결정에 따라 재징계 절차를 밟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익제보→파면→학교 복귀→17일 만에 직위 해제안종훈 교사의 시련은 공익제보에서 시작됐다. 그는 지난 2012년 뇌물을 받고 학교 공금을 빼돌리는 비리를 저질러 실형을 선고받은 이아무개 행정실장이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다. 그 해 9월 서울시교육청은 동구학원에 대한 특별감사에 나섰고, 서울시교육청은 조웅 이사장의 임원 승인을 취소했다.
동구학원은 안 교사가 제보자였음을 밝혀냈다. 동구학원은 지난 8월 징계위원회를 열어 안 교사를 파면했다. 학생 등교지도 미이행, 집회 참가 등 7가지 사유를 내세웠다. 안 교사는 "보복 징계"라면서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파면을 취소해달라는 소청심사를 청구했고, 학교 앞 피켓 시위에도 나섰다.
동구학원은 지난달 9일 안 교사가 든 피켓 속 '공익제보 양심교사 부당 징계' 등의 문구가 허위라면서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고소장에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동구학원 학생·직원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고자 고소한다"면서 "구속 등 엄벌에 처해 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3일 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안 교사의 파면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대부분의 징계 사유들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파면 처분은 징계양정에 있어 사회통념상 재량권을 현저하게 일탈·남용하여 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안 교사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가 부당징계를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달 호루라기재단의 '올해의 호루라기 상', 한국투명성기구의 '투명사회상'을 받는 등 공익제보자로 인정받았다.
안 교사는 15일 학교로 돌아가 학생들을 만났다. 그는 "복직 된 후, 제가 담임을 맡았던 3학년 7반으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학생들이 저를 찾아왔다"면서 "몇몇 학생들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선생님이 돌아오는 게 희망이었다'고 했다,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안 교사는 "곧 방학이니, 개학 때 다시 인사하자"고 말했다. 안 교사의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세월호 추모 집회에 참석했다고 징계?
동구학원이 안 교사에게 보낸 징계의결사유서의 9가지 징계 사유 중 첫 번째는 안 교사가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라'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정치적인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자료로 안 교사가 5월 1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 서울교사결의대회'에 참석한 사진을 내밀었다(관련 기사 :
교육부 압박에도 거리로 나온 교사들).
이는 지난 8월 징계 때도 동구학원이 징계 사유로 적시한 내용이다. 그러나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근무시간 중 무단이탈하여 결의대회에 참가하였다거나,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였다는 사정이 보이지 않아 징계사유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안 교사는 이를 두고 "보복 징계를 위해 무리하게 징계 사유를 적은 것"이라며 "또한 징계의결사유서 내용과 근거자료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정권처럼 보수적으로 보이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조차 지난 8월 징계가 부당하다고 못 박았으니, 학교가 저를 상대로 다시 징계를 할 수는 없을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니 가슴이 무겁다"고 전했다.
안 교사는 물러서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공익제보한 것은) 잘못되고 부당한 문제를 바로 잡고자 하는 순수한 동기였다"면서 "동구학원이 다시 징계를 한다고 해도 내 마음은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마음은 더 굳세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재징계는) 사립학교에서 재단에 찍힌 교사가 어디까지 보복을 당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는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학의 폐쇄성 탓"이라면서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한 선생님들이 있을 것이다,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학교에서 쫓겨나는 징계를 받더라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 사학을 바꾸는 데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동구학원 "보복 징계 아니다"동구학원 쪽은 보복 징계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일섭 동구마케팅고 행정실장은 "교원심사소청위원회 결정은 징계 수위가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라면서 "이에 따라 재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안 교사는 집회나 시국선언에 참석해 '박근혜 책임져라' 피켓을 드는 등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정치활동을 했다, 이를 세월호 추모 집회라고 하는데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밝혔다. 이어 "징계위원회를 소집한다는 것은 무조건 징계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면서 "또한 징계의결이 요구 중인 자를 직위해제할 수 있다는 사립학교법(제58조의2)에 따라 직위해제를 한 것일 뿐"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한 "동구학원은 2012년에 있었던 일을 두고 2년 뒤에 징계를 할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 안 교사는 보복징계를 할 만큼 대단한 교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동구학원은 안 교사에게 학교 교육을 등한시하고 정치활동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기회를 줬다, 하지만 (안 교사가) 현재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니 당혹스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