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운전면허증을 받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두 번째 면허증입니다. 참고로 저는 미국에서 삽니다. 한국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별다른 시험 없이 미국의 것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 보스턴 영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제출해야 할 서류를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같은 교환은 매사추세츠에 거주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한다고 합니다. 저는 로드아일랜드주에 살고 있습니다.
제 국제면허는 1년이 넘어 더이상 사용이 불가했고, 미국에서 차 없이 생활하자니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결국, 미국 운전면허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미국의 시험은 학과시험과 도로주행으로 나뉩니다. 모두 자동차 관리국(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s)에 가서 보게 됩니다. DMV는 자동차에 관한 모든 것을 관리하는 미국의 차량 관리국입니다. 공공기관으로 모든 주에 다 있습니다. 자동차 등록, 차량번호판 발급, 각종 서류 갱신 등 차에 관한 모든 업무를 보는 곳입니다. 운전면허 시험도 이곳에서 담당합니다.
학과시험은 컴퓨터로 보는데 예약 없이 구비서류만 갖추면 접수 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시험은 모두 객관식이며 언어는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합격, 불합격 여부는 마지막 문제 풀이가 끝나면 모니터를 통해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10여 년 전에 면허 땄지만, 장롱면허
학과시험에 합격하면 합격자는 임시면허를 받습니다. 운전 경력자가 동승한 상태라면 합법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로주행 시험을 예약하게 됩니다. 도로주행은 대기자 상태에 따라 유동적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한 달 정도 기다립니다. 물론 개인 일정에 따라 두 달이나 석 달 후에 시험 날짜를 잡아도 됩니다. 저는 한국에서 10여 년 전에 면허를 땄지만, '장롱면허'였던 관계로 연습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두 달 후에 시험을 보기로 했습니다.
도로주행 시험 전 가장 큰 고민은 영어였습니다. 과연 내가 시험관의 지시를 제대로 듣고 이행할 수 있을까. 두 번째는 도로였습니다. DMV 주변의 도로로 직접 나가 시험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 저에게는 낯선 길입니다. 그런 부담감을 안고 차에 올랐습니다.
미국은 시험용으로 제공되는 차량이 없습니다. 시험 응시자가 차를 가지고 와야 합니다. 차는 해당 주에 등록된 차량으로, 본인의 차가 아닌 경우 차주와 함께 와야 하며 반드시 차량등록증과 보험가입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출발하기 전 시험관은 방향지시등, 브레이크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차 상태를 확인합니다.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판단하면 시험관은 보조석에 앉아 출발을 지시합니다. 도로의 상황에 맞춰 심사항목을 지시합니다. 시험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으로 차선 변경, 주차, 후진, 3 Point Turn(3 포인트 턴, 3번의 조작으로 진행방향을 바꾸는 것) 등을 심사합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한 번에 합격한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불합격 사유를 들었더니 대부분이 우회전이나 정지 표지판에서 규정을 지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회전할 때, 왼쪽을 확인하고 오른쪽도 확인한 후에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왼쪽만 보고 바로 출발했을 때, 오른쪽에 보행자가 서 있기라도 한다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미국은 정지표지판이 참 많습니다. DMV 담장 안에도 2개가 있을 정도입니다. 정지표지판이 보이면 반드시 정지해야 합니다. 교차로에 신호등을 설치하는 대신 정지표지판을 세워둔 것이기 때문에 멈추지 않으면 사고가 날 확률이 높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합격할 거라 생각...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주의하면서 시험관의 지시대로 시험을 봤습니다.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린 것 같았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걱정과 달리 모든 과정이 매끄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험관은 제게 '불합격'이라며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불합격 이유는 차선을 변경할 때 사각지대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의무적으로 한 달을 기다려야 볼 수 있습니다. 한 달 동안 사각지대 보는 연습을 했고, 그런 시간이 늘어날수록 합격에 대한 부담이 커졌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 저는 정지표지판 하나를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 하나쯤으로 불합격을 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그렇게나 들었는데 말입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영어'였습니다. 그날의 시험관은 제게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연습은 많이 했느냐, 춥지 않으냐, 추우면 창문을 닫아라, 이쪽은 괜찮다 등 출발 전부터 쏟아지는 말에 소위 '멘붕'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상태로 출발한 데다 시험을 위한 지시 역시 간결하지 않아서 시험 내내 "여기?", "여기 맞아요?"를 여러 번 되물어야 했습니다.
시험 과정에서 큰 실수를 한 것도 없는데 이미 마음은 불합격이었습니다. 운전시험이 아니라 영어시험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정도 영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나에게 준 불합격이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도로주행을 마치고 DMV로 돌아오는 길에 정지표지판 하나를 놓쳤습니다.
시험관이 놀라서 정지표지판 못 봤느냐며 또 영어를 쏟아냅니다.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어서 그 순간이 끝나기를 바랐습니다. 도착 후 그가 불합격이라며 이유를 설명하려는 순간, 저는 내 남편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OK" 정도로 마무리하고 말 텐데 그는 "남편은 영어 잘해?"라고 또 묻습니다. 그가 남편에게 한 말을 정리하면 "정지표지판 하나를 그냥 지나쳐서 불합격을 줄 수밖에 없다. 다른 것은 모두 좋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도로주행시험을 예약하면서 시험관은 규정에 의하면 세 번째는 3개월 후에 볼 수 있는 데 "당신은 아깝게 떨어져서 한 달 후에 볼 수 있도록 날짜를 잡아주겠다"며 "다음에는 꼭 합격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특혜로 저는 3개월에 총 3번의 시험을 봤습니다.
세 번째 시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포기해야 겠다고. 시험을 기다리는 한 달 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연습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더 이상 연습할 것이 없었습니다. 연습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운전이 아니라 영어였습니다. 세 번째 시험관이 보조석에 앉아 묻습니다.
"Are you ready? (출발 준비됐나요?)""Yes, I'm ready. (예)"웃으며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어디 한 번 즐겨 볼까'로 들립니다. 익숙해진 DMV 시스템. 그리고 평소 미국인을 대할 일이 거의 없는 내가 한 번, 두 번 시험을 치르면서 영어 울렁증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그 길을 갈 것이고, 그런 것들을 지시하겠지라는 추측과 이미 운전에 익숙해진 몸. 더이상 걱정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운전 연습을 하는 데 차선 변경을 하기 위해 사각지대를 보는 동시에 핸들을 꺾었다가 놀란 적이 있습니다. 사이드미러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 차선 변경을 해도 될 것으로 판단했지만, 몸이 습관적으로 사각지대를 본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사각지대를 보니 차가 있었습니다. 그 차는 룸미러에도 사이드미러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차였습니다. 상대 차도 놀랐고, 저도 놀랐습니다. 보조석에 앉아 있던 남편이 미안하다며 내 대신 그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두 번의 불합격은 내게 가르쳐 준 것이 많습니다. 안전을 위해 반드시 몸에 익혀야 했던 것인데 당시에는 시험에 떨어졌다는 결과만 생각했습니다. 그 실패를 통해 중요한 것을 배웠는데 말입니다.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진리인 그것을 삼수 끝에 다시 깨닫습니다. 그 실패는 내게 필요했다고.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로드아일랜드 주(州)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운전면허 교환에 필요한 서류는 보스턴 영사관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