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한편으로는 그동안 간과했던 현실을 다시 보게 하거나 혹은 새롭게 보게 하는 기능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적인 이슈를 화두로 삼아 그것의 의미를 성찰한다. 이렇게 해서 영화는 우리가 그간에 몰랐던 것을 알게 하고, 간과했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또한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영화가 소통을 위한 매체로 이해되는 까닭이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을 보여주면서 다시 한 번 우리 노동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또한 21세기 경제 한파가 세계적인 현상임을 실감케 한다. 계약직 문제를 중심 화두로 삼으면서 직장에서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미생>의 여운이 우리 사회에서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시기. <내일을 위한 시간>은 우리 노동 및 정치 현실을 재차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두 작품이 비록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지만 비슷한 관점에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미생>이 다양한 군상들 사이에서 얽히고설킨 사건 전개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내일을 위한 시간>은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 인간의 본질을 성찰한다.
특히 <내일을 위한 시간>은 다르덴 형제 감독의 1999년 작 <로제타>의 연장선에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다.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가 우리 삶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조명했다. 이 영화는 벨기에에서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각인시켰고, 결국 '로제타법'을 제정하게 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경제 한파의 현실에서 흔히 나타나는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돈과 사람, 나와 너, 나와 우리, 아내와 남편 등 여러 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감독 특유의 사실적인 영상으로 담아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의 원제는 '이틀 낮, 하룻밤'이다. 영화의 의미와 관련해서 '내일을 위한 시간'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짧은 시간은 상황의 긴박함을 암시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표출되는 인간의 다양한 반응을 통해 감독이 관심을 갖고 보여주려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 반영된 시대정신이다. 질문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시대의 깊은 우울증을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 시대정신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았다. 영화는 이틀 사이에 일어나는 불법 낙태 시술을 계기로 인간의 탐욕스런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당시 루마니아의 정치 상황을 폭로하였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주인공 산드라가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에 대해 철저히 침묵한다. 오직 우울증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생각한 상태에서 해고 소식을 들은 후부터 시작한다.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 분)는 심한 우울증으로 몇 달을 휴직한 후 복직하려는 때 갑자기 해고 소식을 접한다. 휴직 기간에 회사가 아무 문제없이 운영되었다고 생각한 사장은 굳이 산드라를 고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장은 직원 한 명을 줄일 수 있으면 대신에 다른 직원들에게 보너스로 1000유로를 주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뜻밖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게 된 다수의 직원들은 동료직원 산드라의 생계나 그간에 함께했던 관계보다 결국 보너스를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팀장이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위협적인 발언을 한 사실이 발견되어 재투표를 하게 된다. 재투표까지 남아 있는 시간은 이틀 낮과 하룻밤이다. 이 기간 동안 산드라는 직원들의 과반수 이상을 자신의 복직에 찬성하도록 설득해야만 했다.
하지만 복직을 위한 노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본 산드라의 마음 고생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삶의 의욕을 가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을 지지해주는 동료 직원에 힘입어 다시금 삶의 의지를 얻은 산드라는 자신의 복직을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간다.
모든 결과를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을 계획하면서 "난, 행복해"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간의 우울하고 침울했던 영화 전체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기에 충분했다. 산드라가 깊은 우울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갖게 된 것은,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이 돈보다 사람이나 관계를 더욱 중시하며 자신을 도왔기 때문이다.
<미생>과 <내일을 위한 시간>의 공통점이 있다면, 두 작품 모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조직 혹은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데서 나옴을 역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