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당시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구속기소됐던 홍가혜씨가 지난 9일 무죄판결을 받았다. 홍씨의 판결을 보니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200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미네르바(본명 박대성) 사건이다.
두 사람은 재판도 받기 전에 구속되어 1백일 넘게 감옥생활을 하다가 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또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괘씸죄에 걸렸다는 '의혹'을 사는 점도 같다.
수사기관은 미네르바의 수많은 글 중 단 2편만을 문제삼았고, 홍씨 역시 SNS 글 1편과 방송인터뷰 하나로 전격적으로 구속했다. 이런 식으로 인터넷이나 언론에 올라온 수많은 글이나 말들을 이 잡듯이 뒤진다면 하루에 수만 명, 수십만 명이 법정에 서고도 남을 것이다. 법이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이 돼서는 곤란하다.
[판결 대 판결] 4번째 이야기는 정부를 공격했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닮은 꼴 사건을 분석해 본다. 세월호 해경 명예훼손 사건과 미네르바 사건이다.
세월호 인터뷰, 홍가혜씨는 왜 형사처벌 대상이 되었나2014년 4월 16일 오전 온 나라를 뒤흔든 참사가 발생한다. 시간이 지나도 구조자는 늘어나지 않고 실종자는 사망자로 변해갔다. 대형참사 앞에 속수무책인 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하는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사고 사흘째인 18일 인터넷과 언론에는 '홍가혜'라는 이름이 오르내린다. 홍씨가 자신을 진도에서 구조활동을 펼치던 민간 잠수부라고 속이고 어느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이다. 그날 새벽 홍씨는 종편인 MBN과의 인터뷰에서 '민간잠수부에 대한 지원이 안 되고 있다', '해경이 시간만 때우고 가라고 했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언론에선 실시간으로 후속기사가 등장했다. 그가 잠수부 자격증이 없고, 발언이 거짓이라는 점이 부각됐다. 일부 언론에서 확인되지 않은 홍씨의 과거까지 거론하자 그는 하루아침에 거짓말쟁이, '관심종자'가 되어버렸다. 급기야 경찰 수사가 시작됐고 '홍씨는 4월 20일 경찰에 자진출석했다가 법원의 영장 발부로 구속된다.
어떤 사람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을 때 비난과 지탄이 따를 수 있다. 하지만 법적인 책임을 지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냉정히 따져보자. 홍씨는 왜 구속되었을까. 거짓말을 해서? 아니면 정부의 구조작업을 비판해서? 민간잠수부 자격이 없는데도 행세를 해서? 국민을 우롱한 괘씸죄로? 어떤 것도 처벌이유로 보기는 어렵다.
8개월 여 시간이 흐른 지난 9일 1심 법원(광주지법 목포지원 장정환 판사)은 홍씨가 무죄라고 판결했다.
검찰 "허위 인터뷰로 해양경찰청장과 구조담당자 명예훼손" 그가 형사처벌 대상이 된 건 딱 2가지 때문이다. 2014년 4월 18일 새벽 SNS의 일종인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게시물 1편과 종편인 MBN 방송과의 인터뷰가 바로 그것이다. 이 2가지로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과 현장구조대원 등 세월호 구조담당자들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SNS 게시물은 정보통신망법위반(명예훼손), 방송인터뷰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기소했다.
두 가지 죄목 모두 목적이 있어야 성립하는 목적범이다. 법원은 우선 '비방의 목적'이 있었는지를 따졌다.
법원은 ▲ 홍씨가 잠수자격증을 소지한 민간잠수사가 아님에도 인터뷰를 제안 받고 승낙한 사실, ▲ 잠수부로서 구조작업에 참여한 사실이 없음에도 글을 게시하고 인터뷰 한 사실은 인정했다. 법원은 이 때문에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기도 하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비방의 목적은 없었다고 판시했다.
"당시 언론을 통해 세월호 생존자에 대한 대규모의 구조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으나, 홍씨가 팽목항 현장에서 선박 및 장비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민간잠수부들의 구조작업 투입이 제한되고 있는 상황을 확인하게 되자 이를 사람들에게 알려 구조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주된 목적에서 위와 같은 글을 게시하고 인터뷰를 하였다고 판단된다"따라서 주요한 동기,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목적이나 동기가 일부 내포되어 있더라도 홍씨에게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법원 "홍씨의 인터뷰와 글, 허위로 단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검찰이 허위사실로 지목한 발언 내용은 어떤 것일까. 인터뷰 발언과 SNS 게시물을 종합해보면 크게 4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① 4월 17일 구조작업에 투입된 민간잠수부가 벽을 두고 생존자와 대화하였다(인터뷰)② 해양경찰이 민간잠수부에게 지원을 하지 않고(SNS, 인터뷰), 민간잠수부의 구조작업을 막고 있다(인터뷰)③ 구조대원이 유가족에게 "여기는 희망도 기적도 없다"고 했다(SNS, 인터뷰)④ 해경이 "시간만 대충 때우고 가라고 했다"(인터뷰)법원은 홍씨의 글과 인터뷰 내용이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하는지 조목조목 따졌다.
①과 ②에 대해 법원은 일부 사실과 다르다는 부분은 인정했다. 하지만 △민간잠수부들이 생존자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실종자 가족들이 문자메시지를 받았던 사실 △민간잠수부들은 해경이 구조작업을 막고 있다고 인식하였고, 이후 민간잠수업체 '언딘'과 유착 의혹까지 제기된 점을 비추어 홍씨가 "허위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③의 경우 홍씨가 팽목항에서 회의에 참석한 실종자 가족으로부터 이와 같은 취지의 말을 들었고 ④와 관련, 민간구조대원이 해경과 교신 과정에서 "잠수부 300명 정도가 있으니 민간잠수부가 필요 없다. 선회하다가 그냥 가라"는 말을 듣고 "그럼 시간만 때우고 가란 말이냐"라고 반문하였다가,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답변을 들은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홍씨의 글과 인터뷰 내용은 일부 사실과 다르고 과장이 있을지언정 허위사실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정부나 국가기관은 명예훼손 피해자 될 수 없다" 원칙 제시법원은 해양경찰청장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점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다만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명예훼손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법원은 "해양경찰청장은 당시 세월호 생존자 구조작업을 현장에서 지휘․통제하였던 공적인 존재"라며 "홍씨는 구조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주된 목적에서 글을 게시하고 인터뷰를 한 것으로,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한 피해자로 지목된 세월호 침몰사고 구조담당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세월호 구조담당자는 그 수를 가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경계가 불분명하고 △집단표시에 의한 비난이 구성원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까지는 이르지 아니하였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형법 제309조 제1항의 출판물(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에 텔레비전은 '기타 출판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벌법규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은 9일 홍씨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을 거칠게 정리해보면 이렇다.
홍씨가 민간잠수사 자격이 없었고 일부 확인되지 않거나 과장된 사실을 글이나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은 맞다. 하지만 진도 현장에 있던 홍씨는 민간잠수부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구조작업 투입이 제한되고 있는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려 구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 판결에 검사가 항소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사법부의 최종 판단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당시 구조작업과 희생자 인양작업이 급선무였던 시점에서 정부와 수사기관이 홍씨를 구속기소한 일이 적절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더구나 공적인 구조업무를 담당했던 해양경찰청장과 구조담당자들의 명예가 그렇게 소중했는지 궁금하다.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전기통신법으로 구속되다
2009년 새해 벽두부터 네티즌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인터넷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던 필명 미네르바(본명 박대성)의 구속이었다.
미네르바는 2008년 3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포털사이트인 다음(Daum)의 '아고라' 경제 토론방에 280여편의 글을 올렸다. 경제동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당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환율폭등 사태, 주가지수 등을 예측하자 네티즌들은 열광했다.
반면 정부 당국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가 두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네티즌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검찰은 2009년 1월 7일 미네르바를 체포한 뒤 구속기소한다. 검찰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네르바의 글이 오른 뒤 불안감이 퍼지면서 정부가 상당한 금액의 외환을 시장에 풀어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먼저 검찰의 '공소장' 중 주요 내용을 보자.
미네르바는 2008년 7월 말경 "8월부터 외화예산 환전 업무 중단"이라는 뉴스 제목을 발견하자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드디어 외환보유고가 터지는구나' 라는 제목 아래 마치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어 외화예산 환전 업무가 중단된 것처럼 허위 내용의 글(①번 글)을 게시하였다. 2008년 12월에는 '아고라'에 '대정부 긴급 공문 발송 - 1보'라는 제목 아래 "2008. 12. 29. 오후 2시 30분 이후 주요 7대 금융기관 및 수출입 관련 주요 기업에게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 공문 전송. -정부 긴급명령 1호-"라는 허위 내용의 글(②번 글)을 게시하였다. 검찰은 2개의 게시물을 통해 "정부의 환율정책 수행을 방해하고 우리나라 대외신인도를 저하시키는 등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하였다"고 기소하였다.
검찰은 280여 편의 글 중에서 단 2개만 문제삼았다. 더구나 그에게 적용된 법률은 일반인들에겐 이름도 생소한, 전기통신법이다. 47조 1항은 다음과 같다.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원 "미네르바 글, 표현 과장되었더라도 허위사실 아니다"이 사건의 쟁점은 크게 2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미네르바의 글이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는지 둘째, 그가 허위의 사실을 게시한다는 고의가 있었는지다.
서울중앙지법(유영현 판사)은 우선 "외화 환전업무가 중단된 것이 (미네르바의 주장과 달리)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박씨의 '①번 글'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유 판사는 그러나 "박씨가 허위 사실을 게시한다는 고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유 판사는 외환시장 자체 및 연말 외환시장의 특수성, 인터넷 경제토론방의 성격을 감안하면 "글이 표현방식에서 과장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서술이 있더라도 전적으로 허위의 사실이라고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유 판사는 이어 미네르바가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는지 검토했다. 유 판사는 ▲작년 8월경 실제로 외환보유고가 감소되었고, ▲ 인터넷 게시판은 누구나 글을 게시하거나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인 점 ▲ 미네르바의 '②번 글' 게시 이후 달러 매수량 증가가 미네르바의 글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등을 보면 공익을 해할 목적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 미네르바의 글이 시장에 일부 영향을 미쳤더라도 이는 개연성 정도에 불과하며 ▲ 오히려 미네르바는 개인들의 환차손 피해를 방지하고자 글을 올렸다고 주장한 점 등을 보더라도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2009년 4월 20일 내려진 판결의 결론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미네르바는 고의로 허위사실을 게시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미네르바의 글은 공익성을 위반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공익'은 추상적...명확성 원칙 위배" 위헌결정그 후 전기통신법 47조 1항은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 12월 28일 이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공익을 해할 목적'이라는 표현이 너무 추상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법률적인 표현으로 한다면 죄형법정주의의 원칙 중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말이다.
미네르바는 무죄판결을 받고 104일 만에 풀려난다. 판결에 불복, 검사가 항소하지만 처벌근거가 된 전기통신기본법마저 위헌이 되자 곧바로 항소를 취하한다. 무죄가 확정되었지만 네티즌들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세월호 해경 명예훼손 사건에서 법원은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기관의 명예보다 표현의 자유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정부나 수사기관도 깨달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