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 여행의 둘째 날, 열시께 오타루를 향해 차를 몰았다.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가는 데엔 제이알(JR: Japan Railway)로도, 승용차로도 한 시간 남짓이다. 길가는 물론, 눈은 중앙분리대를 성큼 높였고, 도로 위에도 양탄자처럼 깔렸다. "아빠, 어깨 좀 봐. 아주 굳으셨어"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며 가는데 뒷좌석의 딸애 눈에도 잔뜩 긴장한 내 모습이 확연했던 모양이다.
3박 4일 동안 운전대를 잡았으나 나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국내와 달리, 속도와 법규 위반을 단속하는 카메라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과속할 이유야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낯선 나라에 와서 단속 카메라를 의식해야 한다면 신경이 좀 쓰이겠는가. 워낙 눈길이 위험하기도 했지만 길에서 만난 운전자들은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던 것 같다.
제한 속도를 초과해서 쌩쌩 마구 달리는 차가 많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나라는 마치 과속에 따른 모든 위험을 운전자 개인의 판단에 맡기고 있는 셈이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낯선 여행자가 긴장을 풀지 못하는 대신 도로를 달리는 현지의 운전자들은 무심히 일상을 질주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렀던 기간에만 그랬던 건진 모른다. 통행량이 적지 않은 도로인데도 추돌이나 과속으로 인한 사고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홋카이도에서 800km 가까이 운행했지만 우리가 목격한 사고는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가는 길에 미끄러져 길가 언덕 위에 올라 앉은 승용차 한 대뿐이었다.
운하와 스시, 오르골의 고장 오타루오타루는 홋카이도 서해안 중앙, 이시카리 만에 위치한 아담한 항구 도시다. '오타루'는 원주민 이누이 족 말로 '모래가 많은 바다'라는 뜻이다. 옛날부터 '천연의 양항(良港)'이라 불리며 청어 잡이로 번창했고, 홋카이도 내륙에서 채굴한 석탄을 출하해 '홋카이도의 현관'으로서 자리 잡았다.
오타루는 1880년에 일본에서 세 번째로 상업 철도를 부설한 지역이다. 시내에 남아 있는 서유럽식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은행과 상사 등의 건물은 상업 지역으로 번성했던 오타루의 역사, '북부의 월(Wall)가'라 불릴 만큼 융성했던 시절의 흔적이다.
오타루 역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지척에 있는 운하로 향하는데 날씨가 삿포로와 비길 바가 아니었다. 항구 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칼바람이 매서웠다. 외투에 달린 모자를 여며 쓰고 항구 쪽으로 들어서자, 이내 눈보라가 흩날리는 오타루 항이 나타났다. 눈 쌓인 부두 양 옆으로 콘크리트 창고가 바다를 향해 요(凹)자 형태로 튀어나와 있었다.
부두를 벗어나면 해변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진 창고 건너편의 물길이 오타루를 상징하는 운하다. 1923년에 완성된 오타루 운하는 '선박의 통행을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물길'이긴 하지만, 통상의 운하와는 좀 다르다.
오타루 항에서는 바다에 정박한 큰 배에 거룻배를 이용해 짐을 실었다. 그러다 하역량이 늘어나면서 거룻배가 직접 창고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내륙을 파내는 대신 해안의 바다를 매립해 물길을 만들었다. 그래서 오타루 운하는 직선이 아닌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운하 주변에 빽빽이 들어찬 창고는 오타루 항 전성기의 흔적이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끝난 후, 부두 안벽을 정비하게 되면서 오타루 운하는 사명을 다하게 된다. 쓰임새를 잃은 창고는 개조되어 선물 가게나 레스토랑 등이 되었다. 1986년, 운하의 일부를 매립해 산책로로 만들고 이 길에 63기의 가스등을 설치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다.
운하의 가스등이 불을 밝히려면 저녁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서둘러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오타루는 유명한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고향이다. 바다에서 갓 잡은 풍부한 해산물로 만든 초밥과 생선회는 오타루의 명물인 것이다.
스시 거리인 '스시야도리'에 있는 초밥집 '니혼바시(日本橋)'에서 우리는 초밥을 먹었다. 원조를 즐기는 데도 '비용'이 든다. 비싼 대신 양은 아주 조금인 초밥은 그러나 훌륭했다. 경상도 내륙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 넘어 간신히 회에 입문한 촌놈의 입맛에도 오타루의 스시는 훌륭했다.
오타루엔 '호객꾼'이 없다이어진 오타루의 거리 관광은 좀 특별했다. 온통 눈에 뒤덮인 거리, 각각의 피부색이 뒤섞인 관광객들, 유럽풍의 고전적 건축물이 연출하는 이국적 풍경 속을 걸어가는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정신을 맑게 해 주는 대신 뼛속 깊이 스며드는 추위는 오타루에서는 덤이라고 여겨야 마땅하다.
횟집과 케이크 집, 유리 공방, 오르골 가게가 모인 거리를 따라가며 우리는 연신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거리 양편으로 지붕 낮은 조그만 가게들이 가지런히 이어졌지만 호객하는 상인은 거짓말같이 한 명도 없었다. 걷다가 추우면 아무 가게나 들어가서 구경하며 몸을 녹일 수 있는 것은 이 도시의 미덕인 듯했다.
오타루의 유리 공예품은 석유램프나 어업용 램프 등 생활 필수품으로 시작됐다가 선물용으로 인기를 모으면서 지역 특산품이 되었다. 우리는 화사하고 영롱한 빛깔의 유리 공예품이 가득한 가게에서 꽤 오래 몸을 녹였다. 초로의 주인장은 계산대에 그림처럼 서서 고객들의 구경이 끝나기를 무심한 표정으로 기다려주었다. 딸애는 구경삯을 대신해 양초를 담는 네모난 홀더 한 쌍을 샀다. 그것은 우리가 북해도 여행에서 구입한 유일한 기념품이었다.
오타루에서 운하에 뒤지지 않는 명소, 명물이 메르헨 교차로의 오르골 당이다. 오르골은 네덜란드어 'Orgel'에서 온 말로 '자동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 즉 영어의 '뮤직박스'에 해당하는 물건이다. 오타루의 오르골 당은 전 세계의 오르골을 전시해 판매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가게다. 온갖 기묘하고 화려한 오르골들이 울려대는 음악을 들으며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정작 우리는 오르골보다는 건물 앞에 서 있는 오르골 당의 심벌이라는 증기 시계탑이 더 흥미로웠다. 이 시계는 보일러로 증기를 만들어, 1시간마다 시각을 알리고 15분마다 증기로 5음계의 멜로디를 연주한다. 고풍스럽게 증기를 피우고 있지만, 시계탑은 컴퓨터로 제어된다.
여행지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 오후 다섯 시, 오타루에 어둠살이 내리기 시작했다.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옷깃을 여미며 우리는 다시 눈이 뿌리기 시작하는 간선 도로를 거슬러 운하 쪽으로 돌아왔다. 운하 옆 산책로의 가스등에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불은 파랗게 얼어붙은 영하의 대기를 밝히며 운하의 수면 위에 밝고 화사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언덕의 고장, 비에이로셋째 날, 비에이로 출발하면서도 켕기는 마음을 다독이기가 쉽지 않았다. 눈길을 감수한다고 해도, 편도 163km, 왕복이면 326km나 되는 거리가 자꾸 걸렸던 것이다. 초행이니 당연히 내비게이션을 믿고 가는 수밖에 없는데, 정작 도로 사정이 어떤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어떡할까, 아이들은 강행 쪽에 손을 들었다. 그리고 고생스러웠지만 비에이 행을 강행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만약 비에이에 가지 않았다면 이번 여행은 무척 후회스러웠을 거예요"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딸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지난 겨울에 홋카이도를 다녀온 친구가 비에이를 가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했대요.""좋아, 가 보자. 방심하지만 않으면 되겠지..."고속도로와 일반도로를 번갈아 타며 아사히카와를 거쳐 비에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가 훨씬 넘어 있었다. 비에이 어귀에 들어설 때부터 사방은 눈 천지였다. 어쩌다 나타나는 마을과 길을 빼면 사방에 보이는 것은 하늘과 설원뿐이었다.
비에이 역 주차장에서 우리는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비에이 지역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모양이었다. 관광 안내 센터 앞에 차를 세우자 나이 지긋한 여자 안내원은 "코리아?" 하고 묻더니 한글로 된 안내 책자와 지도 몇 종을 건네주었다.
비에이는 홋카이도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는 나지막한 구릉(丘陵) 지대에 있다. '언덕의 고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드넓은 언덕에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한다. 비에이의 '패치워크(patchwork: 천 조각들을 조합하여 커다란 천으로 만드는 것) 길'을 중심으로 가득 핀 꽃과 언덕의 풍경은 연간 12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고 한다.
라벤더, 해바라기, 양귀비, 코스모스, 보랏빛 샐비어 등이 다투어 피어나는 패치워크 길 주변의 언덕은 그러나 겨울이면 광활한 설원으로 바뀐다. 언제부턴가 이 아스라한 눈밭에 서 있는 몇몇 나무와 언덕에 '켄과 메리 나무', '세븐스타 나무', '가족 나무', '마일드 세븐 언덕' 따위의 이름이 붙었다.
여느 풍경이라면 언덕 위에 선, 그저 볼품 좋은 나무에 지나지 않았을 미루나무나 졸참나무, 떡갈나무 따위가 어울리지 않는 서양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이 언덕이 사계마다 연출하는 풍광 덕분이다. 그리고 이제 이들은 나목이 되어 눈 속에서 홀로 깨어 있는 것이다.
비에이의 사계를 다 만나지 못한 이들은 비에이의 사계를 평가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스쳐 지나가는 걸음일지라도 여행자에겐 책임 지지 않고도 논평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나는 비에이의 겨울이 다른 계절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고 원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우리의 한갓진 평가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비에이의 겨울'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방에서 온 여행자 앞에 비에이의 겨울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과 때 묻지 않은 새파란 하늘이 연출하는 '경이로운 풍경' 그 자체였다. 그것은 땅과 하늘의 경계를, 혹은 현실과 몽환의 구분을 무화시키는 서늘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시키고 눈길을 달리면서 나는 현기증 같은 걸 느꼈다. 길가에 이어진 자작나무, 하늘과 땅의 경계에 들어찬 나무와 숲, 눈 덮인 지붕의 오두막집들... 가도 가도 끝없는 눈의 나라, 어디가 어디인지, 헤어날 길 없는 동심원을 맴돌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바늘 같은 바람을 뚫고 우리는 패치워크 길을 한 바퀴 돌았고 호쿠세이의 언덕에 솟아 있는 전망공원에서 한숨을 돌렸다. 풍경이 자아내는 찬탄은 새롭게 나타나는 풍경에 대한 찬탄에 묻히곤 했다. 눈 속에서 몇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는 종종 광막한 설원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전망대로 돌아 다시 비에이 역으로 나오는 어느 언덕 아래서 차가 눈밭에 빠져 버렸다. 길가의 공터에서 차를 돌리는데 바퀴가 헛돌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차는 덩치가 작다. 셋이 뒤에서 밀고 운전대를 돌리며 용을 썼더니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중간에 두어 차례 한국 관광객들을 만났다. 이들은 대체로 택시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른바 '택시 투어'다. 시간당 5400엔. 비싼 편이지만 겨울 관광에 지불할 수밖에 없는 '비용'이다. 비에이는 엄청 넓은 지역이어서 도보 관광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걸 확인하고 아이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차를 빌린 건 탁월한 선택이었어요!"눈밭을 순례하다 보니 해는 이내 서편으로 기울어진다. 어두워지기 전에 얼마간 녹은 도로가 다시 얼어붙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나는 조금 초조해졌다. 아쉽지만 홋카이도의 풍요를 대표하는 비에이의 자연을 담아온 사진가 마에다 신조가 만든 갤러리 다쿠신칸(拓眞館)은 생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에이가 지금과 같은 명승지가 된 데 크게 이바지한 이가 마에다 신조다.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풍경 사진가인데 우연히 비에이의 자연에 매료되어 10여 년 동안 이곳을 드나들게 된다. 그가 찍은 풍경이 사진집과 엽서, 포스터, 영화, TV 광고 등에 사용되면서 비에이는 일약 전국적 관광지가 된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에 비해 훨씬 수월했다. 아들에게 운전을 맡기고 나는 조수석에서 스쳐 지나가는 비에이의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산과 들, 길까지 하얗게 덮고 있는 눈은 세상을 흰빛 하나로 단순화한다. 그러나 그것이 품고 있는 비의(秘意)는 모든 빛깔만큼 다양하다. 왜냐하면 흰색은 빛 속의 모든 빛깔을 합한 색이기 때문이다.
숙성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다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나는 마에다 신조의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가 담은 비에이의 사계는 마치 그림 같았다. 그러나 나는 화사한 봄여름보다는 흰빛 하나로 수렴되는 겨울 풍경이 좋았다. 눈의 거친 입자까지도 표현해낸 그의 사진은 비에이의 겨울이 얼마나 '장엄'한 것인지를 확인해 주고 있었다.
겨울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온 지 꼭 11개월이 지났다. 나는 시간과 기억의 숙성을 이야기했지만 비에이를 담은 '2014_북해도' 폴더 속 이미지들은 여전히 2014년 2월에 머물러 있다. 눈밭을 걸어갈 때 발밑에 바스러지던 눈의 감촉, 호쿠세이 언덕의 전망대에 불러오던 칼바람, 눈밭 경사면에 반사되던 하오의 햇볕까지.
그렇다. 숙성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눈길이다. 흐르는 시간과 반비례하는 기억의 환기다. 시간과 경험에 깃든 상상력이다. 형체 없는 이미지에 살을 입히고 온기를 더하는 마음의 떨림이다. 언제쯤 비에이의 겨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사진 파일 속 비에이의 겨울 속으로 성큼 한 발을 들여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