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높게 평가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모든 부분에서 상당히 진일보한 인식"이라고 평했고, 박대출 대변인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서 "청와대 문건파동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고뇌에 찬 자성을 쇄신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속으로 끙끙 앓는 이들도 적지 않다.
김영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13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 "이 문제(청와대 문건파동)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는 좀 국민적인 정서, 국민 감정과는 조금 간극이 있는 게 아니냐, 이런 아쉬움을 얘기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라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또 "(문건파동 관련) 공직기강 해이가 분명한 사실인 만큼 이런 부분을 어떻게 쇄신하고 개선책을 마련할지 이런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좀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즉,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내용에 여당 내부에서조차 동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다.
특히 당내 비박(비박근혜)과 초·재선 의원 일부는 이번 문건파동과 관련,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소위 '문고리 3인방'에 대한 경질 요구를 공개적으로 해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를 신년 기자회견에서 단칼에 거부했다.
오히려 김 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적극 비호하기도 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비박 측이 요구하고 있는 개헌 요구에 대해서도 "경제문제 등 시급한 문제가 뒷전으로 가버린다"라면서 일축해버렸다. 사실상 당청갈등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이재오 "결단 내려야 할 때 못 내리면 재난을 당하게 된다"당장 친이(친이명박) 직계로 분류되는 조해진 의원은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나, "국민이 우려하는 것에 비하면 대통령께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라면서 "전면적 인적쇄신, 청와대나 국정운영 시스템의 획기적인 변화가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회복하고 국정동력을 확보하는 핵심인데 그 부분이 미흡하다"라고 평가했다.
또 "(김영한 민정수석의) 항명파동을 볼 때 김기춘 실장도 스스로 한계를 느끼는 상황 아닌가"라면서 "비서실의 세 비서관(문고리 3인방)도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역할을 조정해줄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즉, 김기춘 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포함한 청와대 조직개편을 단행해야 민심을 수습할 수 있다는 논리다.
초·재선 의원모임인 '아침소리'는 "조속한 시일 내에 과감한 인사 혁신과 조직 개편이 가시화돼야만 국민들의 신뢰를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사실상 김기춘 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겨냥한 지적이었다.
이와 관련, '아침소리' 대변인인 하태경 의원은 "문건 파동, 항명 문제로 빚어진 국정 혼란의 심각성 인식에 있어선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간극이 있다"며 "경제를 살리려면 국민 신뢰를 먼저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선 현재 국정 혼란 상황에 대한 조기 수습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개헌 불가론'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해진 의원은 "여야가 나라의 큰 틀을 세우는 일에 몰입하면 대통령이 피곤한 일을 덜 당하고 (경제활성화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난 (대통령의 입장과 달리) 거꾸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즉, 대통령이 개헌논의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전날(12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에 출연, "이제 더 이상 청와대에서 경제 살리기를 이유로 개헌논의를 틀어막을 명분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이날(13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當斷不斷, 反受其亂(당단부단, 반수기란)"이라고 적었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내리지 않으면 오히려 재난을 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이 김 실장을 포함한 인적쇄신과 개헌에 대해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비판 여론은 당 밖에서도 형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전원책 전 자유경제원장은 이날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 "(박 대통령의) 인사쇄신은 오불관언(吾不關焉 : 어떤 일에 상관하지 않고 모른 체함) 같았다"라고 혹평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대통령의 답변은 한마디로 인적쇄신 이유가 없다는 뜻"이라면서 "국민이 생각하는 것은 지금처럼 3인방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현 청와대 시스템을 바꾸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또 "(박 대통령이 구성하겠다는) 특보단은 대통령제에 있어선 필요 없는 것"이라면서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특보가 아니라 제 역할을 하는 장관과 참모"라고 꼬집었다.
친박한테 흔들린 김무성, 14일 내놓을 메시지는?결국 이 같은 쟁점들은 향후 당청관계에서도 주요한 논란거리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큰 선거가 없기 때문에 당장 논란이 되지 않겠지만 만약 이 문제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 당 차원에서도 방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친박과 비박 간의 힘 겨루기가 현재진행형인 점도 관건이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이 전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금도 자꾸 친박 뭐 그런 얘기가 계속 이어지는 게 좀…"이라면서 당내 친박·비박 구도를 부정했다.
그러나 여의도연구원장 임명·조직위원장 여론조사 경선 등의 현안들을 둘러싼 당내 갈등은 여전하다. 김무성 대표는 친박 측의 강도 높은 반발에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에 대한 여의도연구원장 임명을 '보류'했고, 조직위원장 선출에 여론조사 결과를 100% 반영하려던 당초 방침을 60%만 반영하는 걸로 수정했다. 전반적으로 친박이 김무성 대표를 흔들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이 청와대 조직개편 방안으로 제시한 '특보단 신설' 아이디어도 연말 친박 중진 만찬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박 대통령과 친박 간의 긴밀한 관계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차기 총선을 앞둔 친박·비박 간의 주도권 다툼은 결국 당청갈등으로 발전할 소지가 있는 셈이다.
한편, 김 대표는 오는 14일 신년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그는 이날 서울 조계사 예방 후 기자들과 만나, "어제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이 국민 인식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오늘 얘기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라며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