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노동운동의 이미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안 그래도 살기 어려워 죽겠는데 어디 노조가 파업을 했고 어디 생산 라인이 멈췄고 그래서 손실이 얼마나 생겼고 하는 뉴스를 듣다 보면, 그게 실제로 나와는 별 상관없는 일인데도 괜히 내 지갑까지 얇아지는 것 같아서 가끔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부당하게 침해당한 권리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냉담하게 군다든지 하는 뉴스라도 나오면, 안 그래도 취업이 힘들고 월급봉투도 얇아지는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단박에 임계점을 넘는 짜증이 솟구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일터에서 누리는 권리 중에서 많은 것들이 지난 수십 년간의 노동운동이 거둬낸 성과라는 점을 생각하면, 노동운동을 마냥 나쁘다고만 말하기도 어렵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사의 몇 가지 사건만 살펴봐도 노동운동이 사회의 건강한 변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지를 알 수 있다.
해방 직후 조직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이나 4월 혁명 직후에 일어난 민주노조 운동은 노동운동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열망의 선두에 섰던 경우였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전태일과 그 뒤를 이어 투쟁에 나섰던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는 좀 더 직접적인데, 그들의 싸움이 박정희 정권 붕괴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남성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이 전면에 등장한 1980년대에는 그러한 흐름이 더 강해졌다. 1970, 1980년대를 거치며 대공장을 중심으로 충실히 성장한 남성노동자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그간 참아왔던 자신들의 경제적 요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6월 항쟁 이후 몇 개월간 지속된 노동운동의 파도는 불과 여남은 명이 근무하는 작은 공장에도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정도로 거셌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권리들도 그 당시에 쟁취되었다.
노동자의 권리고 나발이고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성장'을 향해서만 치달아갔던 개발독재의 시대를 수십 년씩이나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나마 이 정도의 노동조건이나마 누릴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개발독재만큼이나 끈질겼던 노동운동 덕분인 셈이다.
남화숙의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대한조선공사(아래 조공)의 노동운동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노동운동을 다룬 연구들은 여럿 있지만 이 책처럼 60년대의 노동운동을 본격적으로 다룬 연구서는 드물었기 때문에 일단 소재라는 면에서 이 책은 참신하다.(이 책 외에 한국의 노동운동사를 다룬 책으로는 구해근의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이나 임송자의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보수적 기원> 같은 책이 있다)
하지만 그런 연구사적 맥락을 모른다손 치더라도, 50여 년 전 노동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았고 어떤 것들이 그들에게 중요한 가치였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
책으로 만나는 50년 전 노동운동노동운동이란 참으로 비장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응당 빨간 띠 이마에 매고 4/4박자 군가풍의 민중가요 부르며 구호를 외쳐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해주는 수십 년 전의 노동운동은 생각보다 꽤 소박하다.
예를 들어 노조가 노동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부심했던 것들이 (겨우!) 소주 한 병과 마른 오징어 약간이었다거나 하는 대목을 읽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날 정도다. 비장한 각오로 테이블에 둘러앉은 노조 간부들이 말린 오징어 다리 개수를 두고 침 튀기는 설전을 벌이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다. 게다가 치열한 투쟁의 성과로 얻어낸 소주와 마른 오징어는 틀림없이 수령하는 그 순간 노동자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을 테고!
물론 저자가 오징어 다리를 둘러싼 노조 지도부의 결단을 설명하려고 이 두꺼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렇게 소박하고 사소한 것들조차 노조를 통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주장했을 때에야 비로소 얻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그렇다면 마른 오징어 이야기는 당시 노동자들의 일상을 보여주기 위한 일례에 불과하고, 외려 서술의 무게 중심은 당시의 노조가 얼마나 성숙한 수준의 활동을 보여주었는지에 실려 있다고 보아야겠다. 예컨대 당시 조공 노조는 활동 방침을 정하는 데 있어서 일반 조합원들의 의견 수렴을 무척 중시했을 뿐 아니라 비정규직과 연대하고 하후상박 원칙을 준수하는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무척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관성화·관료화되었다는 비판에 시달리는 작금의 일부 대기업 노조를 생각하면 되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들이다.
노동운동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그러니까 적어도 이하 조공 노조의 활동을 두고 본다면, 먹고 사는 문제와 민주주의는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거나 혹은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조공 노조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1960년대 중반은, "대한조선공사 댕긴다 카몬 선도 안보고 딸로(딸을) 준다"(186쪽)고 할 정도로 사정이 나았던 대한조선공사 노동자들의 임금조차 당시 경제기획원이 계산한 6인 가족 생활비의 63%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궁핍한 때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공 노조는 조직의 운영과 노동자 간의 대우에 있어서 민주주의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갔다. "경제 발전은 노동자의 노동 투여와 헌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고, 따라서 가족 생활급을 통해 건실한 생활수준을 보장해 주는 것이 성공적 경제 발전의 필요조건"이라는 노조의 언설은, 민주적이고 평등한 노사관계가 경제성장과 맺는 관계라는 측면에서, 오늘날에도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조공 노조가 그 이전 시기의 좌익 운동과는 (적어도 이념적인 수준에서는) 별달리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이 정도로 전투적이고 적극적인 '강성 노조'라면 좌익 운동에서 뭐라도 영향을 받았을 것 같지 않지만, 사실 조공 노조와 좌익 운동 사이에는 뚜렷한 연결 고리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가장 강성한 노조 대표였던 허재업은 육군 장교 출신의 '반공 투사'이기까지 했다.
그런 사정 덕분에 조공 노조는 부당한 이데올로기 공격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 빨간 띠 두르고 파업이라도 한 번 하려고 들면 당장 종북이 어쩌고 좌파가 어쩌고 하는 말이 튀어나오는 요즘의 눈으로 보자면, 참으로 묘한 광경이다. (하긴, 세월호 유가족을 두고도 '종북'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 이 시절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노동자들의 일상과 경험 보존하기, 그리고 불편한 진실그렇다면 조공 노조의 전투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저자에 따르면 조공 노조가 이전 시기의 노동운동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이념이 아니라 경험이었다. 식민지 시기부터 꾸준히 누적된 노동운동의 경험이 좌익 숙청, 전쟁 등에도 불구하고 단절되지 않고 면면히 내려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공 노조는 10년 가까이 이렇다 할 쟁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958년의 파업에서 놀라울 정도의 조직력과 체계성을 보여주었고, 결국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10년 정도 투쟁에 공백이 있었음도 불구하고 현장 노동자들은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그 이후 시기로도 계속 이어졌는데, 고공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김진숙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한진중공업은 대한조선공사의 후신이다.) 1960년대 말 민영화 반대투쟁에서 패배한 후 조공 노조의 전투적 노조활동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그 경험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그대로 보존되었고, 이는 현장의 신참 노동자였던 김진숙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희망버스와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어디선가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노동운동이 아니라, 시간축 저 앞쪽에 있는 조공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조공 노조가 노동운동의 경험을 잘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조공 노동자들이 대부분 숙련노동에 종사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숙련 노동이 요구된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노동과정에 대해 노동자들이 발휘할 수 있는 장악력의 정도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건은 노동자들이 자본가(사측)와 교섭할 수 있는 중요한 협상카드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연대의식을 쌓고 동료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자본(사측)으로부터 독립된 그들만의 공간이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로 그 공간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경험은 자본가들에게 침식받지 않은 채로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노동자들의 고유한 문화적 공간은 독일 역사학자 알프 뤼트케(Alf Luedtke)가 이야기했던 '아이겐진(eigensinn)'을 떠올리게도 한다. '고집'이나 '아집', '자기존중' 등으로 번역되는 '아이겐진'이라는 말에는 번역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어떤 독특한 정신세계가 담겨 있다.(가장 적절한 번역은 '곤조'가 아닐까)
알프 뤼트케는 20세기 초 독일의 남성숙련노동자들이 노동과정에 대한 장악력과 노동자 간의 분업과 협업, 그리고 거친 장난 등을 통해 노동자들만의 고유한 공간, 즉 '아이겐진'의 영역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갔다고 보았다. 독일에서 멀리 떨어진 조공 노동자들의 일상에서도 이와 비슷한 면모가 발견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던 마르크스의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 남성숙련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은 긴 침묵 속에 빠져들고, 그 빈자리는 청계피복노조나 YH노조 등으로 대표되는 미숙련노동자들의 투쟁이 채웠다. 그토록 전투적이고 강력했던 노동운동들이 1970년대에 갑자기 침묵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는 그에 대해 노동시장의 극단적인 젠더 위계질서를 대답으로 제시한다.
즉, 노동집약적 산업에 여성노동자들을 저임금 상태로 묶어두는 대신 중공업의 숙련노동에 종사했던 남성노동자들에게는 상대적인 고임금과 지위 상승을 보장함으로써 기존의 노동운동을 침묵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387~392쪽) '가장'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개별 남성노동자에게도 이는 굳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의 너머 어딘가에는 남성노동자들의 침묵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다소 불편한 진실이 이 책에 숨어 있는 셈이다. 어쩌면 한국노동운동의 보수적 기원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뒷맛이 좀 씁쓸하다. (물론 남성노동자들의 침묵을 자발적인 선택이나, 혹은 더 나아가 '공모'라고까지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 조공의 노조활동이 침체에 빠진 것은 민영화 반대 투쟁에서 정부에 패배했던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기 때문이다)
세대론의 관점에서 하나 더여담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당시 조공의 노동운동을 세대론의 관점에서 접근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조공 노조가 가장 전투적이었던 1960년대는 어떤 시기였던가. 해방(1945)의 흥분과 한국전쟁(1950)의 참상이 여전히 기억에 생생했을 것이고, 4월 혁명(1960)과 5.16 쿠데타(1961)의 흥분과 혼란도 채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기에 사회의 중추로 성장하고 있던 세대는 식민지 시기 말기에 태어나 1950년대의 의무교육과 군복무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세대였다. 국가가 전국민에게 부여한 교육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를 져야 했던 이들 세대는 한국사상 처음으로 균질화된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였다.
이들은 학교와 군대에서 듣고 배운 서구의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동시에 서구의 물질적 풍요도 함께 열망하는 세대였다.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가 보여주는 민주적 노동운동의 기억,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그린 궤적은 아마도 그러한 열망의 결과일 것이다. (농촌에서 그 열망은 새마을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김영미의 <그들의 새마을운동>이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