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가 질문해서 대답한 거지, 제가 떠든 게 아니에요." "네가 말하는 걸 봤는데, 너 이자식 뭐라는 거야?" "아, XXXXX"학생 A는 수업 시간에 떠든다는 교사의 지적을 받았다. 옆 친구가 말을 걸어서 대답한 것뿐인데 교사가 자신만 유독 혼낸다는 생각에 A는 화가 났다. 떠들지 않았다고 교사에게 '대들었다.' 분명 말하는 것을 본 교사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바라보는 데 학생이 '반발'하자 교사는 더욱 화가 났다. 수업시간에 A와 교사와의 감정 섞인 언사가 오가기 시작했다. 그 끝은 A의 욕설이었다.
학생과 교사와의 갈등... 회복을 선택한 학교상벌위원회가 열렸다. 교사에게 욕설을 한 것은 수용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A는 공부 위주의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던 아이였다. 기존의 여러 사건들이 쌓여 상벌위원회에서 정학, 퇴학 이야기까지 나왔다. 교칙대로면 그 처벌은 당연한 거다.
그러나 학교는 '응보'가 아닌 '회복'을 선택했다. A는 3일간의 등교정지를 받아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A가 돌아오면 해당 교사의 수업도 차질을 빚을 수 있었다. 감정이 상한 교사가 A의 얼굴만 봐도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건 학급 아이들 모두에게 피해였다.
학교는 A와 교사가 서로 만나 "그때 내 생각은 이랬다"라면서 차분히 이야기를 하게 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교사는 "속까지야 다 알 수 없지만 이런 단계를 거쳤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며 "규칙을 어겼다고 규율에 따라 벌을 주던 '응보적 생활교육'에서 관계를 회복시켜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회복적 생활교육'으로 학교 분위기가 바뀐 덕분"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게 '교육'이라는 생각이 퍼지면서 학교현장은 '처벌 중심의 교육'에서 '회복 중심의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 처벌을 해봤자 아이들은 행동을 교정하기보다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렀으니 잘못이 없어졌다는 생각을 한다고.
진심어린 반성이 없다 보니 잘못은 되풀이 되곤 했다. 전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담배를 피운 게 걸려서 교내 봉사를 시켰더니 봉사를 하면서 또 담배를 피우더라"며 "처벌만 해서는 아이들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전주 신흥고 교사들은 이런 고민을 기반으로 '회복적 생활교육' 연수를 받았다. 2013년 4월에 1, 2학년 담임교사들이 15시간 기초 강의를 듣고 같은 해 하반기엔 신흥고 전 교사가 하루 동안 집중적으로 강의를 듣고 실습을 했다.
신흥고 조경환 교사는 학교폭력으로 법원에 간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진을 강의시간에 보며 놀랐다. 가해자는 기세등등한 반면 피해자는 힘없는 모습이었다.
"가해자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더라고요. 그런 상태에서 벌을 받아봤자 오히려 억울해 해요. 쟤가 별 거 아닌 일을 학교에 말해서 자기가 봉사활동했다고요. 나중에 학교에 돌아와도 피해자가 오히려 잘 적응을 못하고 전학가기도 해요."조 교사는 가해자 처벌이 아니라 피해자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방법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차분한 대화다. 이를 통한 상처입은 마음, 관계의 회복이다.
'경청'을 통한 관계 회복회복적 생활교육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클(원)'을 만들어 대화를 하게 한다. A가 B를 때린 경우, B가 아픈 몸과 마음, 그때의 상황에 대한 감정들을 이야기하면 A가 B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며 '잘 들었다'는 사실을 B에게 알린다. 그때 B는 빠트린 게 있다면 다시 말하거나 A가 잘 들었다는 것을 이해한다.
이 '경청'의 과정이 충분히 됐을 때 A 역시 자신의 감정, 생각을 나눈다. B 역시 앞선 과정을 반복하며 A와 B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한다. 그때 신뢰하는 이들이 조정자가 되어 대화가 잘 이어지도록 돕는 것이다.
신흥고 교사들은 회복적 생활교육 연수를 받은 이후 교육현장에 이를 접목시키기 위해 애써 왔다. 학교에 규칙을 어긴 사건이 생기면 상벌위원회에서 30분 만에 처벌을 정하던 방식에서 4시간에 걸쳐서라도 사건이 발생한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얼마 전 아이들 여럿이 자물쇠가 잠기지 않았던 자전거를 타다 고장을 낸 사건이 있었다. 자전거 도난, 파손으로 봐 심각한 사건으로 볼 수 있었지만 담임교사와 학년부장 교사는 처벌하기보단 다독이는 방식을 택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 자전거 수리를 했다.
또 잘못이 대한 사과도 이어졌다. 피해회복을 위한 정신적, 경제적 피해보상이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조 교사는 "아이들은 혼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며 "1월 8일에 이 아이들과 함께 모악산 인근에서 등반도 하고 고기고 구워 먹으며 단합 모임을 했다"고 말한다. 처벌이 아닌 재발방지에 중점은 둔 결과다.
조 교사는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게 가해자를 회복시키는 일이다"라며 "회복적 교육으로 피해자의 상처가 회복이 되는 과정에서 가해자도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같은 일을 안 하게 된다"고 밝혔다. 더불어 "교육은 콩나물에 물을 주는 것"이라며 "당장은 물이 아래로 다 빠져서 아무 의미가 없는 듯 보이지만 콩나물이 자라듯이, 회복적 교육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해도 분명 아이들은 성장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전북포스트>에도 중복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