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선의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금 묘한 정치적 상황에 놓여 있다.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그룹 가운데 정동영 전 고문은 신당 창당을 위해 최근 탈당했고, 천정배 전 의원도 신당 창당에 동참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어서다. 신 의원은 이런 상황이 주는 복잡한 심경을 "머리가 커지니까 흩어지더라"라고 토로했다.
14일 오후 의원실에서 만난 신 의원은 "얼마나 많이 고민해서 중도실용에서 '담대한 진보'로 바꾸어겠느냐"라며 "정동영 전 의원의 선택을 존중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막 전당대회를 시작하는 시점을 택한 것은 실수"라며 "그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동영 탈당에는 동의할 수 없어"신 의원은 "과거 열린우리당 때 '신진보연대'를 만들었다가 망했는데 당시 열린우리당에 진보-좌파 컴플렉스가 있었다"라며 "그랬는데 정동영 전 의원이 요즘 진보라고 하고 다니는 걸 보니 반갑더라"라고 말했다.
"좀 어리둥절하지만 좋다. 절대 폄하하고 싶은 생각 없다. 중도실용주의 외치던 사람이 이제 진보의 시대가 왔고, 그리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진보 대열에 가담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상한 일인가."신 의원은 "하지만 그렇다고 탈당하고 신당을 만든다는 데는 찬동할 수 없다"라며 "당내에서 노선투쟁을 해줬으면 나도 가담했을 텐데 꼭 나가서 해야겠느냐는 안타까움이 든다"라고 정 전 고문의 탈당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 전 고문은 지난 11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새정치연합은 합리적 진보를 지향하는 민주당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제1야당의 보수화'가 탈당의 주된 이유였던 것이다.
하지만 신 의원은 "우리 당에 진보성이 너무 없어서 탈당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라며 "우원식, 장하나, 홍종학, 남윤인순 등이 우리 당의 아이콘으로서 우리 당의 진보성을 과시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반박했다. 신 의원은 "을지로위원회도 활동하고, 복지도 강조하고, 어느 정당보다 진보적 의원이 많다"라며 "그런데도 왜 우리 당의 진보성이 떨어진다고 탈당하나"라고 말했다.
"빅텐트가 안 되면 내년에는 스몰텐트라도 쳐야"
이어 신 의원은 "내가 신당에 가담하지는 않겠지만 무시하지 않고 예의주시한다"라며 "새로운 움직임이 새정치연합에 '우리도 진보정당 이니셔티브를 잡아야 한다'는 자극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영국 자유당이 노동당에 주도권을 빼앗긴 것처럼 우리가 예전에 민주노동당에 주도권을 빼앗길까 걱정한 적이 있다. 그런데 문재인 후보가 지난 대선 때 '진보정당 후보'라는 말을 처음으로 썼다. '진보'라는 말을 당당하게 썼다. 전에는 그런 말을 안 썼다. 이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신 의원은 "문제는 신당이 야권 집권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잘못하다가 야권 분열로 표가 쪼개질 수 있다"라며 "그래서 다음 총선과 대선 때에는 결국 민주진보개혁세력이 통합하거나 연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나는 '빅텐트'를 주장했는데 안 되면 내년에는 '스몰텐트'라도 쳐야 한다"라며 "신당이 민주진보개혁세력의 통합과 연대에 보탬이 되는 존재여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현단계로서는 좀 걱정된다"라고 토로했다.
"서로 협력하기보다는 배척하고 비난하다가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명멸하는 경우가 많다. 신당을 만들더라도 새정치연합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수구세력을 물리치기 위한 연대체가 되어야 한다."신 의원은 "신당이 새정치연합과 라이벌로서 경쟁하는 데 집중하지 말고, '새정치연합을 비판해야 우리가 산다'는 제로섬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기들 정체성을 먼저 내세우는 정당으로 가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안철수 합당 선언했어야" '천신정' 그룹의 일원인 천정배 전 의원도 신당 창당 흐름에 합류할지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 그는 요즘 일관되게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신 의원은 그런 천 전 의원을 여전히 "동지"라고 불렀다. 그는 "천정배 동지가 이럴수록 언행을 묵직하게 했으면 한다"라며 "자기가 몸담고 있는 새정치연합을 폄하하거나 비난하고, 잘 안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발언하는 것은 당의 중진지도자들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주문했다.
"새로운 정치세력은 우리 당 안에서도 만들 수 있다. 천정배, 정동영이 만들겠다면 하면 내가 쌍수를 들고 참여할 텐데 왜 밖에 나가서 해야 하나? 나한테는 상의도 안 하고(웃음). 우리 당을 만든 건설자답게 행동해주기를 기대한다. 탈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개혁동지가 선거관리위원장을 하고 있는데…."신 의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당은 내 생애 딱 한 번(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족하다"라며 "열린우리당이라는 개혁정당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데 무한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구 민주당과) 합당해 없어졌지만, 열린우리당 자체는 성공했다"라고도 평가했다.
천 전 의원의 고민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신 의원은 흥미로운 일화를 하나 공개했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문재인·안철수 후보에게 '신당 창당 선언'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두 후보에게 후보단일화만으로 안 된다며 당을 새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신당 창당을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오판했다. 후보단일화만 되면 이길 줄 알았다."신 의원은 "확실하게 당선하기 위해서는 합당을 선언했어야 하고, 합당할 여유가 안 되면 선거가 끝난 다음 합당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어야 하는데 후보단일화에만 그쳐 안철수 지지세력의 절반이 떨어져 나갔다"라며 "뼈아픈 대목이다"라고 토로했다.
"당 대표 뽑아놓고 또 다시 흔들면 안 돼"신 의원은 현재 2·8 전당대회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런 위치 때문인지 지금까지 진행된 전당대회에 대체로 후한 점수를 줬다. "걱정했던 것보다 내용과 구도 면에서 잘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신 의원은 "경선 초기에는 전당대회를 보는 부정적 인식이 컸지만 전당대회가 진행되면서 (친노-비노논쟁 등) 네거티브 경쟁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라며 "(당권주자) 3명의 정체성이 뚜렷해서 삼국지 정립구도가 되어가는 듯하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신 의원은 "포지티브의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당의 정체성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라며 "우리 당의 이념이 뭐냐, 노선이 뭐냐, 정책이 뭐냐, 진보냐 보수냐 등 그런 논쟁의 경연장으로 발전하고, 특히 새정치연합을 회생시킬 당내 계파갈등 해소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좋겠다"라고 주문했다.
이어 신 의원은 "승부가 나면 강력한 리더십을 세우고 밀고 나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계파 청산과 탕평책이 필수"라며 "당 중진들도 누가 되든 지도부가 탄생하면 확고하고 튼튼한 리더십을 세우고 집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 의원은 "전당대회도 중요하지만 전당대회 이후가 더 중요하다"라며 "당 대표를 뽑아놓고 또 다시 흔들면 곤란하다, 총선 때까지는 확고하게 밀어주는 게 중요하고 총선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 당이 진보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 대표는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진보를 표방해서 진보 표를 가져와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누가 뭐래도 진보정당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보수나 극보수와 싸울 수 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도라는 말만 해서는 안 된다.""지금 야당 약하지 않아... 총선-대선 이길 것"
특히 신 의원은 '약한 야당' 등 '야당 비판론'에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는 "옛날부터 따져보면 지금은 강해졌다"라며 "김대중, 노무현 등 단일집단으로 이렇게 많은 지지율을 얻고 많은 의석수를 가진 적이 있나?"라고 말했다.
신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도 단독으로 1470만 표, 48%라는 놀라운 표를 얻었고,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도지사(광역자치단체장)를 9개나 차지했다"라며 "그런 정도로 신뢰를 얻은 정당인데 무슨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신 의원은 "민주진보개혁세력은 기득권세력이 아니어서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라며 "그 기울어진 운동장을 뒤집을 만한 힘이 아직은 모자란데, 그럴 기운이 차오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희망을 봤다"라며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것으로 본다, 우리 당이 지지를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여러 가지를 비판하고 허약하다고 하지만 지금 야당이 그렇게 약한 정당이 아니다. 지지율이 떨어진 것 같고 흩어진 것 같지만 선거 때가 되면 결집할 것이다. 다만 그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줘야 한다."신 의원은 "그 계기가 뭐냐 하면 야권 통합, 야권 연대다"라며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조건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혹자는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를 가지고 이제는 연대는 끝났다고 장담하는데 그것은 무책임한 소리"라며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특히 신 의원은 "우리 당이 전술적으로 염두에 둘 것은 지지율 싸움보다 투표율 싸움"이라며 "어떻게 하면 20대부터 40대의 투표를 높일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신 의원은 시사주간지 <일요신문>에서 당권주자 컷오프 결과를 공개한 것과 관련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는 "나와 선관위 기술자랑 둘만 들어가 결과를 확인했다"라며 "내가 선거를 관리하는 이상 컷오프 결과를 철저히 지키겠다고 약속했으니 지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록] "안철수 의원 행보에 경의를 표한다" |
"정세균 의원이 상당히 고심하고 고려한 끝에 용퇴했다. 그분 처지에서는 불출마가 쉽지 않았다. 당권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나한테 그러더라. '이제 대권은 접었다. 다만 당권은 꼭 해보고 싶다. 당을 운영하는 것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래 준비해왔는데 사퇴해버렸으니 얼마나 망설임이 있었겠나. 용기라고 본다. 그렇게 하기 힘들다. 김부겸 전 의원도 굉장히 신중하더라.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그런 요구가 있을 때 나왔을 텐데 끝까지 안 나왔다."
"내가 친노면 선거관리할 수 있겠나? 그런데 요즘 친노가 정쟁의 도구로 쓰이면서 진실과 어긋나는 표현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의도적으로 장사하려고 쓰는 용어다. 거기에 우리 당까지 휘말리고 있다. 실재하는 것과 맞지 않다. 친노가 '친노무현'이라면 친노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 문재인 지지층을 보고 친노라고 하는데 '친문'이라고 해야지 왜 친노라고 하나. 나는 '호노(好盧)'다. 노무현 후보 지지했잖아."
"나는 안철수 의원의 행보에 아주 큰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다. 안 의원이 우리 정치계에 가져온 변화는 대단하다. 안철수 현상까지 있지 않았나. 안 의원이 나와서 지난 대선도 근접한 게임이 됐다. 안 의원이 합당해 새정치연합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방선거에 이겼다. 새로운 세력을 결집해줬고, 통합해줬다. 지방선거 앞두고 필패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막판에 김한길-안철수의 단독플레이로 합당했다. 두 사람의 용단을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 끝까지 안 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두 영수가 합당에 도장찍었다.
정치 결단성의 모범을 보여줬다. 그래서 수많은 지방선거 후보들이 살아났다. 민주진보개혁세력은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그 진화의 구체적인 방법은 통합과 연대다. 통합하고 연대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운명이다. 그런 계기를 마련해준 건 안 의원이 공이다. 앞으로 총선·대선 때도 한 몸으로 가야 한다. 안 의원에게는 과거 민주당이 못 가진 색깔과 기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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