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21일 저녁 8시 15분, 고성군 22사단 GOP에서는 총기난사·수류탄 투척 사건이 일어났다. 임아무개(23) 병장이 초소의 동료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한 것이다. 이 사고로 5명이 죽고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난 16일 1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군검찰은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이 사건은 임 병장이 '집단 따돌림'을 당하다 일으킨 범죄라고 알려졌다. 후임병들도 인사를 안 하는 등 임 병장을 무시하고, 초소벽에는 임 병장을 희화화한 그림을 그려놓았고, 부초소장은 임 병장을 인격적으로 모욕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라는 게 변호인 측 의견이다.
'집단 따돌림', 죽음이 끝?
지난 12월 31일(한국시간)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은 더욱 충격적이다. 러시아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한 학생이 교사와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영국 언론 등이 보도하면서 알려졌다.(관련 동영상:
Horrific moment bullied teen suffocates after collapsing in school)
언론에 따르면, '왕따'를 당하던 세르게이 캐스퍼(17)는 움직일 수 없도록 팔과 다리를 랩으로 묶인 채 화장실 변기에 처박혔다. 교실로 돌아 온 세르게이는 책상 모서리에 목을 찧었고 숨을 쉬지 못해 괴로워했다. 친구들은 그 모습을 보고 킬킬대며 웃었다. 구급차가 당도했을 때는 이미 숨져있었다. 이 일은 전학 온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남을 죽이거나 자신이 죽거나. '집단 따돌림'의 결과는 참혹하다. 위의 두 사건은 다 그렇게 결말이 났다. 이들의 공통점은 죽이거나 죽는 사건이 있기 전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거나, '집단 따돌림'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해자는 '그저 장난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 이상이 집단을 이루어 특정인을 소외시켜 반복적으로 인격적인 무시 또는 음해하는 언어적·신체적 일체의 행위(두산백과)'왕따' '집단 따돌림' '집단 괴롭힘' 등을 규정하는 사전적 의미다. 이런 현상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번지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자살, 가해자를 향한 복수 등의 현상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청소년기의 '왕따' 문제를 찬찬히 그리고 가해자니 피해자니의 도식을 넘어, 심리상담사의 눈으로 뚫어 본 책이 있다.
아르튀르 테노르의 <지옥학교>가 그것이다. 소설가 아르튀르 테노르(ARTHUR TENOR)는 프랑스 오베른 태생으로 현재 90권 이상의 저서를 출간하여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아르튀르는 원래 1·2차 세계 대전을 다루는 작가로 베르사유, 루이 14세, 중세 등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썼다. 이후 한 출판 편집자의 권유로 청소년을 주제로 한 글들을 주로 쓰고 있다.
그는 2005년 상리스 역사서 박람회 청소년상, 2008년 공교육학부모연합회상, 2010년 아쟁 청소년 박람회 청소년상, 몽티니 레 코르메이유 탐정소설상, 오네 도서상 등 무수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소통하는 글쓰기'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번 작품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집단 따돌림', 그냥 장난으로?"우리끼리는 장난으로 슬쩍슬쩍 한 대씩 때려요."
이런 종류가 대부분 학교폭력이나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들이 하는 말이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 전혀 죄의식 없이 장난으로 저지르는 친구 학대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피해자 가스파르는 순수한 감수성을 가진 평범한 중학생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말미암아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두고 어머니와 함께 이사하여 가해학생인 안토니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온다.
낯선 학교에서 만난 안토니는 장난꾸러기로 학교가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이상한 철학을 가진 아이다. 친구 몇 명과 더불어 가스파르를 개학 첫날부터 괴롭히기 시작한다. 책은 안토니가 심리상담사 앞에서 치료의 일환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안토니는 태연스럽게 대답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요? 저도 몰라요. 그 일은...."소년이 히죽히죽 웃으며 빈정거렸다."걔가 또라이라 그래요. 개학 날 코딱지만 한 배낭을 메고 범생이 차림새로 학교에 들어서는데, 어벙하게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딱 봐도 숙맥이더라고요. 새 운동화며 바지에 딱 잡힌 주름을 보고 있자니요. 누가 봐도 우리 동네 토박이가 아니었죠. 마마보이 같은 냄새가 솔솔 나더라고요."(11~12쪽)가스파르의 학교를 지옥으로 만든 안토니의 대답치고는 너무도 태연자작하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상대에게 문제가 있다는 거다. 자신은 그저 용감하고 장난 끼 어린 소년일 뿐이라고 한다. 안토니의 계속적인 괴롭힘은 그 도를 더해간다. 그럴 때마다 가스파르는 쿠에 박사가 제시한 방법을 되뇐다.
"다 잘 될 거야. 난 잘할 수 있어. 난 두렵지 않아. 개학은 좋은 일이야. 다 잘 될 거야. 난 잘할 수 있어."(20쪽)그러나 가스파르에게 있어 잘된 일은 없다. 그건 그저 구호일 뿐이었다. 안토니는 심리상담사 앞에서도 변명을 늘어놓는다. "있잖아요. 저는 비행 청소년이 아니에요. 그냥 재미 삼아 했을 뿐이에요." 비행 청소년이 아니란 말에 '비행'이란 단어가 뭔지 사전을 찾게 만드는 상담사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도식이 더 이상 그의 방법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도록 한다.
'집단 따돌림', 해피엔딩도 있다?그랬다. 다행히도 그랬다. <지옥학교>는 '천국학교'로 끝난다. 그러나 과정은 '지옥학교' 그대로였다. "안토니를 죽여 버리겠어." 결국 가스파르는 해선 안 되는 결심을 한다.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는다. 그것도 두 번이나 상대를 바꾸면서 넘는다. 한 번은 안토니에게, 다른 한 번은 자신에게.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안토니를 제거하는 것. 그 첫 번째 시도다. 그러나 가스파르의 비열한 가해자 되기는 실패한다. 칼로 안토니에게 상처를 좀 냈을 뿐이다. 결국 끝장내지 못한 일은 자신을 끈에 매다는 것으로 종국을 향해 치닫는다. 자살, 이 치명적 두려움의 결과는 그 자신 뿐 아니라 어머니, 심지어는 가해자 안토니에게까지 치명적이다.
둘 다 정신병자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리 상담을 통해 안토니는 '자기 죽음'에 실패한 가스파르를 진정으로 친구로 맞이한다. 역시 가스파르도 안토니를 그렇게 한다. 실제 피해자 어머니인 자클린 플랑 부인의 증언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빌린 실화다.
<지옥학교>는 이렇게 심리상담사가 개입함으로 해피엔딩이 된다. 그러나 앞에 두 실제의 경우, 그 누구도 그들의 '집단 따돌림'에 뛰어들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가해자가 되었든, 피해자가 되었든 죽음으로 끝난다. '집단 따돌림'의 결국이 죽음밖에 없다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지옥학교>는 그 슬픈 현실에 해피엔딩이라는 무딘 칼을 들이댄다.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행복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네가 울부짖지 않으면 네가 아프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앙리 드 몽테를랑) 덧붙이는 글 | <지옥학교>(아르튀르 테노르 지음 / 곽노경 옮김 / 내인생의책 펴냄 / 2015. 1 / 128쪽 /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