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새누리당의 원내대책회의.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주요 현안으로 다뤄지는 중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주제는 다르지만 한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라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아래 세월호 특위)를 언급했다. 그의 말처럼 현안과 동떨어진 갑작스러운 발언이었다.
그는 "세월호 특위가 여야가 120명으로 합의한 사무처 직원이 125명으로, 13개과를 둔 '거대조직'으로 구성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은 '세금도둑'"이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면서 "조사를 하는 실무자는 없다"라며 "세금도둑적 작태를 절대로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라며 재차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곧바로 김 수석부대표의 말을 인용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지난해 여야의 특별법 합의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던 세월호 특위를 김 수석부대표가 또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세월호 특위 예산은 아직 '협의중'<오마이뉴스> 역시 확인 취재에 들어갔다. 특위 구성에 문제가 있다면 분명 구성 주체들부터 갈등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석태 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들, 새누리당 추천 위원과도 통화했지만 별다른 문제는 감지되지 않았다. 설립준비단 내부에서 일부 의견 차이가 있다고 해도, 조율하는 과정에 있고, 갈등이라고 할 만큼의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김 수석부대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었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직제 구성과 예산 문제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불필요한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특위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걱정하며 답변을 조심스러워 했다. 준비단에는 유가족과 야당, 대법원, 대한변협 그리고 새누리당이 각각 1명씩 추천한 상임위원 5명과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전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등 정부기관 등이 들어와 있다.
설립준비단 측 설명에 따르면 현재 세월호 특위는 직제(안), 예산(안), 시행령(안)을 관련부처인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와 협의 중이고 아직 완료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설립준비단 내에서 협의가 이뤄진 후에도 정부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의 최종 승인이 있어야 대통령령으로 시행 공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수석부대표는 왜 '세금도둑'이라는 원색적 표현으로 세월호 특위를 비난한 것일까? 세월호 특위가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 범위 안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고, 예산 역시 정부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 조건임에도 '세금도둑'이라고 지칭한 것은 또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지적받을 수 있다.
우선 김 수석부대표의 발언으로 세월호 특위의 활동은 시작하기 전부터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진상조사를 위해 꼭 필요한 예산도 '세금도둑'이라는 규정 안에서 공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조직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일정한 직제가 있어야 함에도, 그것마저 비난받을 수 있다. 이래저래 눈치봐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월호 특위의 독립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세월호 특별법에는 '위원회는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수행할 때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업무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여야 한다'라며 독립성을 따로 규정하고 있다. 세월호 특위가 김 수석부대표 발언의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사실상 정치권력의 개입으로 비칠 수 있다.
실질조사도 "이미 충분하다"는 새누리당김 수석부대표의 발언에 맞춰 새누리당도 세월호 특위를 공격했다. 김현숙 원내대변인은 "수백억의 국민 세금을 낭비할 작정인 듯하다"라며 "진상조사위원회의 규모가 너무 방대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재부에 요구한 예산이 241억 원에 달한다"라며 "일부 사업들은 당초 조사위가 목적했던 진상규명과도 거리가 멀다"라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변인이 문제 삼은 항목은 홈페이지 구축과 운영에 1억6000만 원, 번역료 3억2000만 원, 조사위 활동 홍보 6억7000만 원, 생존자 증언채록 8억 원 등의 비용과 수중탐색조사, 3D 모형제작, 탑승객 동선 DB구축 등의 실질조사에 들어가는 16억 원 등이다. 운영비용은 대부분 용역을 통하는 등 외부로 지출되고, 실질조사는 "이미 충분히 이뤄졌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홈페이지 구축과 운영, 활동 홍보, 생존자 증언채록, 수중탐색조사, 3D 모형제작, 탑승객 동선 DB구축 등은 특위가 할 필요없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세월호 특위 활동 전반을 문제삼으면서 그 활동범위에 '가이드라인'을 치고 나오는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또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 과정에서 워크숍과 세미나, 전국순회 토론회, 해외 전문가 면담으로 책정된 11억 원도 문제 삼았다. 하지만 특별법에는 세월호 특위 아래 안전사회 소위원회를 두고 활동하게 돼 있다. 새누리당의 지적은 안전사회 소위원회가 워크샵과 세미나, 토론회, 해외전문가 면담 등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김 원내대변인이 위원회 청사에 들어가는 월 임대료 1억2000만 원까지 지적한 것은 악의적이다. 세월호 특위는 비어있는 정부청사에 입주하기를 원했으나, 담당부처가 어렵다고 해 현재 한국자산관리공사 소유 빌딩에 입주할 계획이다. 월 임대료가 공공기관의 수입이 되는 것임에도 막무가내로 흠집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설립준비단도 보도자료를 내고, 김 수석부대표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사무처가 125명이라는 지적에는 "정무직 5명(위원장, 부위원장, 상임위원 3명)을 포함하여 125명이며, 사무처 직원의 정원은 120명"이라며 "정무직 공무원을 직원의 정원에 포함하지 않는 것은 국가공무원총정원령 제2조 제2항에 근거해 볼 때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또 김 부대표가 '여성부, 방통위보다 더 큰 조직'이라고 한 것과 관련, 준비단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설립 목적을 감안할 때, 여성부나 방통위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라며 "조사 기능을 가진 국가인권위가 5국 19과 180명, 진실화해위가 4국 19과 150명인 것을 볼 때, 과다한 것이 결코 아니다"고 반박했다.
특위 내부 분란, 그 다음은 보수단체 기자회견?
이번 김 수석부대표의 발언으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이것이 마치 '짜인 시나리오'처럼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김 수석부대표가 '세금도둑'이라는 틀 안에 특위 활동을 제한시키고, 여기에 새누리당이 추천한 특위 위원들이 동조하면서 내부 분란을 만들고, 또 이를 비난하는 외부 여론이 조성되면서 특위 자체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황전원 특위위원은 18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특위 설립준비단이 정부에 요구한 예산액이 241억 원이라고 한다"라며 "세월호 특위 위원조차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금액으로 황당하고 터무니없다"라고 말했다. 황 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보특보를 역임했고, 2012년 총선 당시 경남 김해을에 공천을 신청한 바 있다.
그는 김 수석부대표의 발언이 나온 직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아직 대통령에게 (위원으로) 임명받지도 않았고, 설립준비단에서 상임위원들이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내용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황 위원이 어떻게 이틀 만에 태도를 바꿔 설립준비단을 비판하게 됐는지 의문이다.
황 위원의 이날 기자회견으로 김 수석부대표의 발언에서 불거진 세월호 특위 구성 관련 논쟁에 불이 붙었다. 세월호 특위가 요청한 241억 원의 예산의 타당성을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국민여론도 분리돼 갑론을박이 벌어질 게 뻔하다. 다음 시나리오를 예측하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세월호 특위를 규탄하는 보수단체의 기자회견이나 집회가 될 것이다. 또다시 쪼개진 여론 앞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위기가 찾아 왔다.
한편, 김재원 수석부대표는 세월호 특위 설립준비단의 명의로 보도자료를 배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논란이 된 발언 당일 오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설립 추진현황 [보도자료]'라는 제목의 메일이 새누리당 출입기자들에게 발송됐고, 발신자 명의 역시 '세월호 특위 설립준비단'이었다. 일부 매체는 그 보도자료를 설립준비단 측의 반론으로 여기고 그대로 보도하기도 했다.
김 수석부대표 측이 "당 대변인 행정실의 착오"라고 해명했지만, 아직 협의가 진행 중인 설립준비단의 내부자료를 공식해명인 것처럼 배포한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프레시안>이 일종의 '도용'으로 보도하자 김 수석부대표는 "일부 언론사가 해당 자료를 요청해 배포한 것"이라며 "정정보도를 요청한다, 조치가 없을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