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쇼펜하우어는 삶을 의미 있게 보려는 낙관적인 노력을 기만이라고 했다. 노력을 통해 얻는 행복을 '거지가 손에 넣은 푼돈'에 비유하기까지 했으니. 원래 인간의 삶은 비참하기에 아무렇지 않게 삶의 허무를 인정하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이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쓴 후루이지 노리토시에 따르면 일본 젊은이들은 가장 훌륭한 '쇼펜하우어 주의자'가 아닐까. 그들은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지 않기에 '지금, 여기'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기묘한 '절망-행복'은 모순적이지만 거짓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이제 자신이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됐을 때, "지금 행복하다"혹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134p)<원피스>가 2억부 팔린 배경
저자인 노리토시는 일본 젊은이들이 '절망-행복'을 느끼는 또 다른 이유를 '동료'라고 말한다. 그저 비슷한 연령층이기에 모두 다같이 '젊은이들'로 묶일 수 없는 개성 강한 일본의 젊은이들은 비슷한 개성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한다.
그들이 행복한 첫 번째 이유가 '미래에 나아질 기미가 없어서'인 것처럼 두 번째 이유도 내향적인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동료지향은 일본의 히트 만화까지 결정짓는 요소가 됐다.
판매 부수 누계가 2억 부를 돌파한 현대판 성서 <원피스>에 흐르는 사고방식은 '동료를 위해서'로 요약될 수 있다. <원피스>의 인물들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동료들에 대한 헌신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있다. 뚜렷한 적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는 그 세계에서, 루피(19세, 후샤 마을)일행은 끝을 알 수 없는 '동료 찾기'를 이어간다. 현실의 젊은이들도 사정은 루피일행과 마찬가지다. (140p)
책에서 예시를 드는 <원피스>뿐 아니라, <나루토>, <블리치>, <은혼>, <20세기 소년> 등 일본에서 최고로 히트한 만화책들의 주제는 '동료와 함께 떠나는 모험'이다.
현실의 젊은이들도 '동료'로 행복을 이어가는 것은 변함없지만 그들의 동료지향의 약점인 '내성적'인 성격을 보완하는 '모험'이 더해졌기에 완벽한 판타지인 셈이다. 물론 소년만화라는 장르의 전통적인 설정이기도 하지만, 최근까지도 끊임없이 같은 설정이 각광받고 2억부 판매라는 비현실적 인기를 끄는 것은 젊은이들의 이러한 특성과 연결 짓는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주말의 지루함을 때우는 수단으로서의 사회참여
문제는 이 동료지향이 가져다준 지루함이다. 현실의 동료들은 <원피스>의 해적단처럼 매일매일 새로운 나라로 떠난다든지 흥미로운 적을 만나 동료로 영입한다는 등의 이벤트가 없다. 처음에 동료들끼리 모이면 아무 것도 안하고 같이 있기만 해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그 밥에 그 나물'들은 지루함을 느낀다.
동료지향이 불러온 지루함을 타개하기 위해 불끈불끈한 그들의 행동반경은 월드컵 응원부터 시작해 사회봉사활동 등으로 넓어진다. 책에 소개된 한 청년은 친구들과 함께 캄보디아에 학교를 세우는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이들의 모임은 '월드컵', '캄보디아에 학교 세우기'를 지나 '3·11 후쿠시마'이후 원전모임으로까지 확장됐다.
노리토시는 동일본 대지진이야말로 사회지향적 성향을 지닌 젊은이들에게는 '기다리던'사건이었다고까지 말한다. 한 나라의, 아니 세계의 큰 비극에서 파생된 시위까지 자신들의 불끈불끈함을 풀 하나의 이벤트로 여겼다는 노리토시의 분석은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원자력 발전 반대 시위에 참여한 젊은이는) 마치 축제를 즐기는 기분으로 고엔지 주변을 행진할 것이다. 그렇게 행진을 마치고 나면 꽤 피곤해질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 성취감을 얻고 돌아갈 것이다. 적어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은 되었을 것이다. (254p)이러한 분석은 사회참여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사회정의구현', '더 나은 세계를 위해' 같은 경구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자신의 토요일을 동료들과 함께 보내기위한 수단 중 하나로 원전모임을 선택한 젊은이들에겐 말이다. 결국 사회정의보다 자신의 주말을 위해, 동료들과의 시간을 위해 이벤트로 활용되는 시위에 대해선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헷갈리게 된다. 이유가 무엇이든 사회참여를 했으니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걸까.
젊은이와 세계의 연결고리
결국 이 젊은이들의 에너지를 정말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흡수하는 것은 정책담당자와 사회적 이벤트 메이커들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노리토시는 이를 위해 "젊은이들이 살고 있는 가깝고 친밀한 세계(친밀권)와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공공권)를 제대로 이어줄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결국 젊은이와 세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닷없이 '중국 공장에서 발생한 농민공 착취'라는 사회문제를 접하더라도,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지금 당신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을 제조한 공장에서 노동자가 연속 자살을 하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라는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222p)혁명으로는 바뀌지 않는 사회
저자 노리토시는 수십년간 쌓여온 일본의 문제를 풀기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한 번의 '혁명'이 아닌 각각의 제도를 정비하고 차근차근 바꿔나가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국가 기능의 상실과 경제불안 같은 문제들은 단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간단히 풀리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일본사회가 '느슨한 계급사회'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으로 끝이 난다. 저자가 제안하는 '젊은이의 세계와 사회라는 세계를 잇는 연결고리'를 만들 세력의 부재를 느낀 것일까. 한국에 적용하기엔 여러 상황이 적잖이 다른 일본의 '젊은이'론이지만 책 속 그의 제안은 한국 정치세력에게도 유효한 충고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부제),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은이), 이언숙 (옮긴이), 오찬호 (해제), 민음사, 2014-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