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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7일 45미터 굴뚝에 올라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농성 중인 구미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 5년의 투쟁 끝에 2014년 12월 13일 평택공장 70미터 굴뚝에 오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김정욱. '희망편지 이어쓰기'는 그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각계각층 시민들의 응원가입니다. 그들을 잊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하늘의 노동자'들에게 부치는 편지를 보내주세요. [편집자말]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철거민참사 현장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6주기 추모기도회가 열렸다.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철거민참사 현장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6주기 추모기도회가 열렸다. ⓒ 이희훈

1월 20일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6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때도 몹시 추웠고 강제철거로 삶터를 위협당하던 철거민들은 남일당 옥상으로 올랐고, 까치집처럼 얼기설기 비바람 눈보라 피할 움막을 만들었고, 거대한 자본과 정권에 맞서 마지막 싸움을 준비했죠. 단지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우리 같은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고 알리고 싶은 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6년이 지난 오늘 스타케미칼 노동자는 239일째, 쌍용차 노동자들은 39일째 높은 굴뚝 위에 있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그때처럼 소리치고 있습니다.

차광호 동지! 김정욱 동지! 이창근 동지! 얼마나 힘드세요? 말이 좋아 고공농성, 굴뚝농성이지 그게 어디 사람이 할 노릇입니까? 말도 안 되는 짓을 동지들은 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동지들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을 눈물을 머금고 어금니를 깨물고 또 깨물며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내려오고 싶겠어요? 저녁 해가 사위어가고 저기 굴뚝 아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들이 종종거릴 때, 골목길에 학생이라도 하나 보이면 얼른 내려가 손잡고 같이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어요? 죽지 못해서, 먹고 힘내서 싸우기 위해 줄에 매달아 올려주는 끼니를 대할 때마다 얼마나 절망스럽고 고통스럽겠어요?

아침 해가 밝아오고 하루가 시작될 때, 또 하루 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하늘 한번 쳐다보고 땅 한번 내려다보며, 몇 걸음 뗄 수도 없는 굴뚝 위의 자기 자리,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외로움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어요?

동지들이 어느 날 모진 결심을 하고 굴뚝 위로 오르며 '이렇게 하면 악덕자본이 손을 들리라', 혹은 '이렇게 하면 박근혜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요.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동지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또 동지들은 그 굴뚝에 오르기 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고 싸울 만한 싸움을 다 싸웠으니까요. 합리적, 상식적, 이성적, 법적, 원칙적, 인간적 뭐 이런 말들이 제대로 쓰이는 사회라면, 이미 진작 해결되었을 문제들이니까요.

주위의 모두가 이 비상식과 불합리, 비인간적 불법에 머리 숙일 수밖에 없다고 고민하며 절망할 때, 동지들은 그럴 수는 없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아닌 것에 머리 숙이고 무릎 꿇을 수 없다며, 불합리엔 불합리로 절망엔 절망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며, 굴뚝에 오른 것입니다.

동지들은 굴뚝에 오르며 수없이 들은 '가만히 있어라. 조금만 참으면 해결될 것이다'라는 말과, 세월호는 기울어가는데 '가만히 있어라. 곧 구조될 것이다'라는 선장의 방송을 떠올렸겠지요. 그러나 동지들은 남들은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을 때,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인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을 과감히 실천한 것이지요.

차광호·김정욱·이창근! 부디 구질구질해지지 마세요

 오체투지 행진단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요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이어가려하자, 경찰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오체투지 행진단이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요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을 이어가려하자, 경찰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 유성호

동지들 어떠신가요? 매일 줄에 달아 올려보내는 밥이 이젠 좀 맛이 들었나요? 옛날 감방에서 '뺑끼통'이라 부르던 그런 플라스틱 통에다 보는 뒷일도 좀 익숙해졌나요? 이 혹한의 겨울 매운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는 그 높은 곳에서 청하는 잠도 제법 잘 오나요?

동지들! 이왕 올라간 거, 이왕 시작한 큰 싸움, 한번 제대로 해요. 동지들이 거기 있는 동안만큼 우리는 이기고 있어요. 사실 동지들이야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 죽기 살기로 그곳에 올랐지만, 밑에 있는 우리에겐 캄캄한 바다에 반짝이는 등대가 하나 생긴 거죠. '아! 저기에 우리 동지들이 있구나' 하며, 새롭게 방향을 잡고 움츠렸던 어깨를 다시 펴고 앞으로 나갈 용기를 얻는 거죠. 동지들이 거기에 그렇게 반짝이며 싸우고 있으니까 우리도 싸울 힘이 생기는 거죠.

그러니 동지들, 약한 모습 보이지 마세요. 구질구질해지지 마세요. 부디 징징거리지 마세요. 올라갈 때의 그 각오와 결심 잊지 마세요. 날이 갈수록 더 당당하고 힘찬 모습 보이세요. 동지들은 지금 정말 잘 싸우고 있어요. 그 위에 그렇게 있다는 자체가 너무나 큰 에너지입니다. 그 힘을 우리가 받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도 잠들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방법으로 동지들과 싸울 수 있는 겁니다.

경찰은 처음에는 매일 이렇게 정보보고서를 쓰겠지요.

'오늘도 별 특이사항 없음. 그리고 별 영향력도 없음, 얼마 못 가 핑계를 대고 내려올 것 같음.' 

이러한 보고가 청와대까지 올라가고, '십상시'나 '문고리'들이 수군거리고, 결국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보고 얼굴 찡그리겠지요. 그러나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가면서도 더 씩씩하고 당당해지는 동지들의 모습을 보며 당황하겠지요. "아니 경찰은 뭐하는 거예요? 이거 어느 장관 책임인가요? 그냥 밀어버리라 해요" 하는 말이 나올 때 우리는 이기는 겁니다.

솔직히 이런 편지를 쓰며, 선배의 한 사람으로서 동지들 앞에 몹시 부끄럽습니다. 우리 선배들이 조금만 잘했더라면 동지들에게 이런 고생은 안 시키는 건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동지들이 너무도 멋지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따뜻한 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차가운 밤에도, 동지들은 그 높은 굴뚝 위에서 웅크리고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처절한 투쟁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모습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름답고 멋진 동지들! 부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평화의 밤이 되기를.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전 민주노총 위원장입니다.
* '희망편지 이어쓰기'는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스타케미칼과 쌍용자동차 고공농성 노동자들에게 부치는 편지를 보내주세요.



#스타케미칼#쌍용자동차#차광호#김정욱#이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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