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신기자가 손을 들었다. 마이크는 그가 아닌 더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 국내 언론기자에게 건네졌다. "앞으로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에 박근혜 대통령이 답변하고 나자, 그 외신기자는 다시 손을 들었다. 박 대통령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질문권을 얻은 그가 이렇게 질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서울지국장 알래스테어 게일입니다. 주말에 미국시민이 한국으로부터 출국되는 일이 있었고, 최근에 외국인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적 소송들이 한국에서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요. 미국 국무부에서도 이와 관련해서 국가보안법을 언급하면서 '일부 규정이 다소 모호하다, 따라서 남용의 여지가 있겠구나' 하고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혹시 지금이 국가보안법을 재검토할 적절한 시기가 아닌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국과 보수언론으로부터 '종북 콘서트'라고 공격받은 신은미씨가 강제출국된 일이나 정윤회씨 관련 기사로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소송 당한 일을 언급하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와 국가보안법 재검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외신기자의 뜻밖의 질문에 박 대통령은 '남북분단의 특수성'을 내세웠다. 박 대통령은 "각 나라마다 사정이 똑같을 수가 없다"라며 "남북이 대치하는 특수한 사정에서 우리나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법이 필요하다"라고 답변했다.
그의 질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다른 국내 언론이 전혀 제기하지 않은 내용이어서 관심을 집중 시켰다. 특히 그가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였다는 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보수-진보 개념이 얼마나 다른지가 극적으로 확인됐다.
지난 20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알래스테어 게일 지국장은 "표현의 자유는 전세계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이다"라며 "미국이라면 신은미씨 강제출국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답변이 실망스러웠다"라며 "대통령은 국가마다 각각 다른 법을 시행한다고 일반적인 답변을 내놓았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지금 시점에서 왜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5년이 지났는데 왜 (국가보안법 같은) 검열이 존재하는지와 같은 주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신년기자회견 당시 나온 국내 언론의 질문들에 대해서는 "모두가 얌전히 행동하고 연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대통령을 불편하게 하는 질문을 던졌어야 하지 않나? 그게 언론이 할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대통령은 기자들이 질문할 수 있는 상황을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달에 한 번 정도 기자회견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에 열릴 대통령 기자회견에서는 그가 원하는 답변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국내 언론사들이 대통령을 향해 불편하고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는 기자가 건넨 명함을 슬쩍 보더니 "당신이 있는 곳이 독립적이고 외압을 받지 않는 언론사라고 생각한다면 그곳에 계속 있어라"면서 "그러한 곳이 한국 언론의 미래가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다음은 알래스테어 게일 지국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얌전한 한국 언론 기자들... 연극 같았다"
-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 참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청와대에서 외신기자클럽(FCC)에 초청장을 보내왔다.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 그럼 외신기자들을 대표해서 당신이 질문한 것인가. "중국과 일본, 프랑스 언론기자들이 총 12명이 있었다. 그런데 딱 한 명만 질문할 수 있다면서 (청와대에서) 나에게 (질문을) 부탁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 기자회견 때의 일이 떠올라서 질문하기 싫다고 답했다. 중국이나 일본 언론이 질문하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런데도 나에게 꼭 맡기고 싶다고 하더라. 수락하는 대신 조건을 하나 걸었다. 미리 질문을 알려주지 않겠다고."
- 이명박 대통령과의 기자회견은 왜 실망스러웠나. "질문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진 못한다. 북한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답변이 만족스럽진 않았다. 연기한다는 느낌이었다."
-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런 내용을 질문한 이유가 있나. "최근 흥미로운 주제가 표현의 자유와 국가보안법, (청와대의) 일본 기자에 제기한 소송이 아닌가. 대통령이 직접 표현의 자유 문제에 답변해주길 원했다."
- 적절한 답변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대통령은 일반적인 답변을 했다. 국가마다 각각 다른 법을 시행한다며, 이 사안이 지금 시점에서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5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 검열이 존재하는가'와 같은 주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답이 실망스러웠다."
- 당신의 질문이 가장 날카로웠다는 평이 있다. "<경향신문> 기자의 질문('세월호 유가족들의 면담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소통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 하는 지적이 있는데. 소통지수 100을 만점이라고 한다면 몇 점을 주시겠나')은 대통령이 그저 일반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대통령을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을 했어야 하지 않나. 그게 언론이 할 일이다."
- 권력 앞에서 기자들이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인가. "그렇게 느꼈다. 모두가 얌전히 행동하고, 연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기자회견 같진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면 (기자들의) 질문들이 굉장히 날카롭고 공격적이다. 정부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기자들이 질문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 대통령이 매달 이런 기자회견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답변에도 기자들이 추가로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 신은미 사건, 서양에서 불가능"
-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표현의 자유 논쟁이 뜨겁다. "<샤를리 에브도>의 경우 종교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 '한국인들은 샤를리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기사를 썼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표현의 자유는 대개 정치와 엮인다. 국가보안법이나 전단 살포 같은 것. 항상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가 상대적이라고 했다. "표현의 자유는 국가마다 상대적인 게 아니라 보편적이고 전 세계적인 개념이다."
- 미국에선 '수정헌법 제 1조'로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것으로 안다. 신은미씨 강제 출국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절대 일어날 수 없다. 법정에서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테러리즘을 지지하거나 폭력적인 선동을 하지 않는 전제에서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된다. 서양과 동양이 역사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신은미씨 강제 출국) 사건이 서양에서는 굉장히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재환 기자는 21기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