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다. 살아 있으면 고행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고행이다. 그렇다고 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바른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우리 부부에게도 그런 일상의 고행은 있다. 그래서 일상의 고행을 특별히 여기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행복과 평화, 즐거움과 유익함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 부부에게는 정말 신혼처럼 아니면 결혼을 앞둔 연인처럼 일상을 변화시키는 일이 생겼다. 토요일, 일요일을 제외하고 평일 아침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것도 여유롭지도 않고 멋진 자리도 아닌 길거리에서, 2~3분 혹은 5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갖는 특별한 데이트 때문이다.
네팔인 아내는 지난해 12월부터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근 1년여 만에 일을 시작한 아내다. 아내가 한국에 온 지 4개월이 지났을 때쯤부터 직장을 구해 1년여 다녔다. 직장이라 해서 직장에 동료가 있고 어울릴 사람들이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으니, 따지고 보면 지금에야 직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특별히 화려한 생활을 원한다거나, 아파트를 사고 집을 사서 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내가 그냥 네팔인들에게 유익한 기자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해 5월에 아이를 유산하고 나서부터 나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아내가 글과 가깝게 살며 자국의 노동자와 이주민 여성들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멋진 기자로 살기를 원했다. 또한 기회가 닿는다면 작년에 이어 다시 한국에 대한 좀 더 내밀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펴내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내도 그런 속마음을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우리 부부가 경제활동에 좀 더 충실하며 2세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사실 외국인 아내를 일터에 내보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 년여 동안 일을 말려왔고, 그동안 아내는 네팔인들 사이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네팔 몽골리안 기자협회 대표로 작년에는 인터넷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고, 네팔어 창시자인 바누벅타 어챠르야 200주년 탄신일 한국추모위원회를 이끌었다. 이에 우리 부부는 네팔문화부장관 표창장과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아내가 자랑스럽다.
한 달여 전부터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아내는 다행스럽게도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직장을 구했다. 화려한 직장도, 일이 편한 직장도 아니다. 그러나 보통의 노동자들보다는 좀 수월한 일이란 생각에 다행스런 마음이다. 덕분에 우리 부부에게 선물처럼 행복한 아침 데이트가 찾아왔다.
나는 수원에 살면서 오산의 한 아파트에서 격일근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틀에 한 번 아내를 만난다. 낮에도 밤에도 틈만 나면 전화도 하고 메시지도 주고받는다. 부부임에도 날마다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 모두 나의 모자람 탓이란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아침 퇴근길을 서둘러서 아내의 직장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아내를 맞이한다. 아내의 출근길 배웅이다.
따뜻한 커피를 준비해 추운 겨울날 아침 거리에서 아내에게 전하기도 하고, 20대 청년처럼 끌어안아 주기도 한다. 가끔은 뽀뽀도 하고 볼에 입을 맞추기도, 이마에 맞추기도 한다. 때때로 스스로 겸연쩍어 끌어안아 주고 좋은 하루라 말하고 손을 흔들어 안녕을 기원한다. 그렇게 아내는 출근하고 남편은 퇴근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내를 일터로 보내고 집에 와보니 아내가 과일을 깎아놓고 출근하였다. 감격스럽다.
요즘 들어서 아내는 꼬박꼬박 아침밥을 지어놓고 출근한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우리는 그렇게 43세의 아내와 50세의 남편으로 일상처럼 신혼을 살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