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산 방사능오염 수산물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이유는 정부가 2013년 9월부터 시행된 일본 후쿠시마 주변 8개현의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라 실시한, 주변 8개현의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조만간 푸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농수축산물이나 식품의 안전성을 담당하는 부서가 아닌 외교부 담당자가 이 같은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외교부가 한일복교 50주년을 맞아 경색된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일본산 수산물수입재개 검토를 언급했다는 거다.
즉, 일본정부가 WTO(세계무역기구) 제소까지 운운하며 우리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압박하자 한일관계 개선용 카드로 일본산 수산물 수입재개를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일본 수산물 수입 재개? 답답하고 화가 난다
답답하고 화가 난다. 아무리 양국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다고 한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달린 문제를 외교적 협상카드로 활용하려 하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일본 정부가 사고발생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뒷수습에 허둥지둥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외교 당국자의 발언은 우리 국민의 안전을 무시한 '폭언'에 가깝다.
알려졌다시피 허물어진 후쿠시마 원전에선 여전히 상당수의 방사성 오염수가 바다로 계속 흘러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에 걸맞은 일본 정부의 대책은 과학적 근거 없는 호소에 불과하다. 특별한 조치도 변화된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오히려 외교부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우리나라 정부가 취한 안전조치가 외교적 논란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중대한 역할을 도맡아야 할 정부기관이다.
일찍이 우리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후쿠시마 주변 8개현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했다. 또한, 미량의 방사성물질이 검출될 경우에도 추가 조사를 실시하는 조치를 취해왔다. 이에 따라 그동안 국내 반입이 가능했던 기준치 100Bq/kg(킬로그램 당 베크렐) 미만의 일본산 수산물의 국내 유통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면서 국민들의 먹을거리 안전에 대한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정부의 일본산 수산물수입 금지를 계기로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일본산 수산물의 국내반입 물량이 크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도별 일본산 수산물 수입 검사 및 반송현황에 따르면 2011~2013년까지 미량의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건수는 총 130건(3013톤)으로 모두 세관을 통과해 우리나라 시중에 유통됐다. 반송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반면, 2013년 9월 조치 이후 현재까지 일본산 수산물에서 미량의 방사성물질이 검출돼 국내에 유입된 사례는 집계되지 않았으며, 미량이 검출된 5건(20.33톤)은 모두 일본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굴욕적 외교 뛰어넘어 주권포기에 가까운 처사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는 합당한 대책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원산지 확인과 이력추적이 쉽지 않은 수산물의 유통과정을 감안하면,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일본산 수산물 국내 반입은 국내산은 물론 전체 수산물에 대한 불신과 기피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가 일본 정부의 'WTO 제소'를 핑계로 삼고 있으나 그동안 주변국 어느 나라도 이 문제를 빌미로 수입금지 해제조치를 취한 일이 없다. 오히려 중국은 일본의 원전사고 이후 후쿠시마 주변 10개현에 대한 모든 식품과 사료 수입을 중단했다. 대만은 5개현의 모든 식품 금지와 그 이외 지역에서 수입되는 과일, 채소류, 음료수, 유제품 등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러시아도 후쿠시마 주변 8개현 수산물 및 수산가공품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정확한 수습상황과 오염수 방출량 등에 관한 정보를 국제사회에 정확히 제공하고 있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이 제공한 정보와 안내를 바탕으로 한 조사결과를 근거로 수입재개를 판단한다는 것은 굴욕적 외교를 뛰어넘어 주권포기에 가까운 처사다.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일본 정부에 맡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내달이면, 한국의 최대 명절이 설이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데 모여 차례를 올리고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날이다. 하지만 정부 조치대로라면, 올 차례상에는 어쩌면 일본산 수산물을 올려야 할지 모른다. 방사능물질이 검출된 물고기를 온가족이 나누어 먹게 되는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 가정의 식탁안전을 지키는 일은 안전한 나라를 건설하는 첫걸음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