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직지산악회원들이 대구의 팔공산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팔공산은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통일을 구상했던 곳으로 고려를 세운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벌일 때 왕건을 살리고 전사한 신숭겸을 포함한 8명의 장수를 기리기 위해 팔공산(八公山)이라고 불렀다는 큰 산으로 많은 문화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정상인 비로봉(높이 1193m)을 중심으로 등산로가 다양하고, 정성 들여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갓바위부처(관봉석조여래좌상)를 만날 수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의 본산인 동화사를 비롯해 은해사·송림사·부인사·파계사 등 유명한 사찰이 많고, 케이블카로 7분이면 하늘정원이 있는 신림봉에 올라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내리사랑이라고 마침 손녀가 집에 와있는 날이라 산행채비를 하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일찍 일어나 오곡밥과 따뜻한 국에 도시락까지 싸주는 아내가 고맙다. 살금살금 현관문을 나서는데 막 잠에서 깬 손녀 정하(晸昰)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아침부터 힘이 난다. 어둠 속에 차를 몰아 청주종합운동장 앞에 도착한 후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버스에 오르니 빈자리가 여럿이다.
나름대로 다 개인사가 있겠지만 출발을 코앞에 두고 산행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운영진이 힘들다. 7시 10분 관광버스 두 대가 남쪽을 향해 출발하자 코지 회장님이 '갓바위에서 산행 때마다 만차 되게 해달라고 빌겠다'는 말로 산행인원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겨울이지만 차창 밖 높은 산에도 눈이 보이지 않는 따뜻한 날씨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에 들르며 부지런히 달려온 관광버스가 10시 10분경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관음휴게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짐을 꾸리고 한자리에 모여 기념촬영을 한 후 강행군을 하여 팔공산 정상을 거쳐 케이블카로 하산하는 A팀과 여유롭게 갓바위만 다녀오는 B팀으로 조를 나눠 10시 30분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무릎이 좋지 않은 상태라 애초부터 B팀이었다. 아스팔트길을 천천히 걸어 700m 거리의 선본사로 갔다.
선본사는 491년 극달이 창건한 대한불교조계종의 직영사찰이다. 아래쪽의 본절에는 극락전과 산신각·요사·선정루가 있고, 갓바위부처 가까이의 웃절에는 칠성각과 산신각·용왕각·기원정사·요사 2동이 있다. 선본사에서 관봉과 노적봉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영험 있는 불상으로 알려진 관봉 꼭대기의 갓바위부처가 더 유명하다.
갓바위와 선본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안내판에 의하면 선본사가 위치한 경산은 불교의 대중화에 힘쓴 신라의 위대한 고승 원효, 원효의 아들로 이두를 집대성한 설총, 고려의 고승으로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을 일컫는 삼성현의 고장이다.
선본사에서 1㎞ 거리의 관봉(높이 850m) 정상에 통일신라시대의 석불 좌상으로 전체 높이가 4m에 이르고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부처(관봉석조여래좌상)가 있다. 갓은 벼슬과 명예를 상징한다. 입시 때면 늘 TV나 신문에서 소개하는 곳이라 팔공산 갓바위부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오르막과 계단 길을 힘들게 올라야 만나는 갓바위부처 앞 널찍한 터가 전국에서 찾아온 참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갓바위부처(보물 제431호)는 마치 갓을 쓴 듯 머리 위에 판석을 얹고 있는데 원광법사의 수제자인 의현대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638년에 조성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전체적 양식으로 보아 8~9세기 작품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갓바위부처 앞에 무릎 꿇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은 나약하고 불안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공양한 사람들의 주소와 이름이 적힌 축문을 빠른 속도로 읽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종교를 떠나 모든 일이 뜻대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갓바위부처 옆으로 가면 동전을 붙이고 소원을 비는 곳도 있다.
갓바위를 둘러보고 내려가려니 왠지 남은 시간이 아까웠다. 마침 코지 회장님을 만나 바른재를 거쳐 동화사로 하산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홀로 동봉 방향으로 향했다. 노적봉을 지나 농바위 앞 전망대에서 A팀의 2진을 만나 점심을 같이 먹는 호사도 누렸다. 전망대에서 선본사 웃절과 관봉, 선본사 본절이 가깝게 보인다. 바위틈을 들어가야 만나는 농바위를 카메라에 담고 나오니 A팀의 꽁무니가 저만큼 앞에서 사라진다.
이 시간만이라도 자유를 누리기 위해 그동안 홀로 여행을 즐겼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산행에 여유가 생긴다. 산줄기를 자세히 보면 주변의 풍경이 다 바라보이는 바위전망대 쉼터가 곳곳에 있다.
경치 좋은 전망대를 만나면 수시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이곳저곳 들여다보거나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산행을 즐겼다. 망원렌즈로 팔공CC와 클럽하우스, 팔공산 자락의 동화사, 비로봉(높이 1193m) 정상의 통신시설 등 먼 곳의 풍경을 눈앞에서 구경했다. 은해사와의 갈림길인 능성재를 지나 바른재로 가며 정상의 통신시설이 더 가까워진다.
약수터와 가까운 바른재에서 동화사까지는 3.4㎞ 거리다. 폭포골 계곡은 비교적 평탄하고 넓어 걷기에 편한 산길이 이어진다. 이리 왔다 저리 갔다 계곡을 건너며 길을 따라 내려가면 얼음이 얼어붙은 폭포를 만나고 얼음 밑으로 졸졸졸 흘러가는 물소리도 들려온다. 드디어 동화사의 대웅전이 0.8㎞ 거리에 있는 작은 다리를 건넌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의하면 동화사는 팔공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사찰로 493년 극달이 세운 유가사를 832년 왕사 심지가 겨울철에 중창하였는데 절 주위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하여 동화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경내에는 1732년 중건한 대웅전을 비롯하여 20여 채의 건물이 있고,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6점의 보물이 있다. 1992년에는 높이 30m의 통일약사여래대불이 조성되었다.
통일약사여래대불을 구경하고 당간지주·용호문·설법전·봉서루를 지나 대웅전 앞에 서니 한 탈북자가 '양아버지가 동화사에 금괴 40㎏을 묻었다'는 주장을 했고, 금괴가 묻혀있다는 곳이 보물 제1563호인 대웅전의 뒤뜰이어서 발굴로 이어지지 못했던 황당한 사건이 생각났다.
동화사의 봉황문을 나서 1㎞ 거리의 팔공산케이블카로 걸어갔다. 왕복 요금이 9천 원인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 정상역(높이 820m)이 있는 신림봉의 마운틴블루에 올랐다. 이곳에 사랑의 맹세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열쇠 먹는 호랑이'와 '사랑의 터널', 신림 3봉을 모두 구경할 수 있는 '소원의 언덕', 동봉·서봉·비로봉·병풍바위·노적봉 등 팔공산 자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팔공산 조망대', 보는 재미가 쏠쏠한 여러 가지 '조형물'과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길에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산책코스'가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팔공산은 풍수 지리적으로 봉황이 알을 품은 형상이고 신림봉의 세 봉우리는 봉황의 자궁부에 위치하며 세 개의 바위는 봉황의 알을 상징한다. 신림 3봉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한 곳으로 멀리서 보면 달마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신림 3봉의 1봉은 코끼리바위로 질병치유와 육체적 건강에 좋고, 2봉은 고인돌바위로 심리적 안정과 힐링에 좋으며, 3봉은 달마바위로 영적 신적 수행자들의 도량이다.
멋진 풍경과 자유를 만끽하며 천천히 돌아본 후 케이블카로 내려와 4시 30분부터 저녁을 먹기로 약속된 고려가든으로 갔다. 시간이 지났는데 빈자리가 많다. 버섯찌개로 식사를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A코스로 산행한 회원들이 도착하기까지 1시간여를 기다렸다.
긴 산행에 지친 회원들이 많은 날이다. 6시 10분 버스가 청주를 향해 출발하자 모두들 잠이 들어 차안이 조용하다. 경부고속도로 칠곡휴게소와 당진영덕고속도로 속리산휴게소에 들르며 부지런히 달려온 관광버스가 9시 30분경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새로운 세상을 만든 청주종합운동장 앞에 도착한다. 출입문 밖에 서서 일일이 손을 잡아주는 운영진과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A팀과 B팀 사이를 오가며 1석 3조를 누린 산행을 마무리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 '추억과 낭만 찾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