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까지 찍어왔던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나에게 한번은, 어떤 순간들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순간 속에 어떤 이야기가 들리며, 나의 삶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사진은 말하고 있다. 그 순간 그리고 그 시간 속 나 자신을 말이다.
사진 찍기는 양방향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다.하나는 앞에서, 또 하나는 뒤에서.그렇다. '뒤'와도 상관이 있다.이러한 비유는 그렇게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마치 사냥꾼이 눈'앞'의 맹수를 향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듯.총알이 발사되는 순간, 반동으로 몸이 '뒤'로 밀려나듯, 사진을 찍는 사람 역시 셔터를 누르는 순간, '뒤'로 튕겨 나간다. 자기 자신을 향해서 말이다.그래서 한 장의 사진은 언제나 이중적인 상을 갖게 된다. 사진은 찍히는 피사체를 보여주게 마련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 뒤에 있는 것'도 보여준다.촬영하는 순간 사진을 찍는 사람 즉, 자신의 상 말이다.- 본문 6쪽 중에서사진에는 사진가의 얼굴이나, 몸짓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 사진에는 사진가의 자화상이 찍혀있다. 바로 관점 이라는 자화상.
눈앞에 펼쳐져 있는 피사체에 대한 사진가의 태도와 생각은 사진 속에 조용히 스며들어있다. 이때까지 필자는 사진을 대할 때 오직 눈앞에 있는 피사체에 대한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한 장의 사진 속에는 피사체와 사진가의 관점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피사체에 넘어서 오는 아릿한 감정은 뒷 방향에서 전해져 오는 사진가의 관점이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서 느꼈다.
나는 풍경이 지닌 서사의 힘을 굳게 믿는다.도시, 황야, 아니면 산맥, 혹은 바닷가든 풍경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외치고 있다.풍경이 주인공이 되고, 그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은 엑스트라가 된다.마찬가지로 난 소품들이 품고 있는 서사의 힘도 굳게 믿는다.- 본문 12쪽 중에서평범한 순간을 애써 미화하지 않는 잔잔함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단 한 마디 "편안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을 애써 미화하지 않고, 잔잔히 추억을 읊어 주는 듯하다.
사실, 처음 영화감독의 사진 에세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멋진 사진이 들어있을까 하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너무나 평범한 그의 사진과 담담한 그의 글 속에서 처음에는 당혹감을 느꼈다.
항상 극적이게 아름다운 사진, 뭔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어 보이는 사진을 찍기 위해 조용히 흘러가는 단 한 번의 순간들에게 관심을 내보인 적이 없는 나이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집에는, 화려한 과장과 수식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글과 사진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하지만 그 속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그의 사진과 이야기가 있었다. 한번은(once) 우리에게도 조용히 잊힐 수도 있었던 단 한 번의 순간들을 한편의 이야기로 그리고 한편의 시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
사진을 찍는 순간 우리가세상 속으로 사물들 속으로사라지려 할 때,세상과 사물들은 사진에서 빠져나와 사진을 바라보는 관찰자를 파고들어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그리고 이야기는 '그곳'에서 시작된다.바로 관찰자의 두 눈 속에서 말이다.- 본문 14쪽 중에서어쩌면 한 장의 사진이 없다면, 영원히 잊힐 수도 있는 나의 단 한 번의 순간들을 이렇게 소소한 한 편의 이야기로 다시 잡으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한번은, -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빔 벤더스 지음 / 이동준 옮김 / 이봄 펴냄 / 2011.07 /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