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으로 내려온 지 일 년 하고도 열 달이 지났고 두 번째 겨울을 맞았다. 나에게도 매일 찾아가 수다를 떨고 싶은 단골 가게가 생겼다.
내 엄마와 동갑이신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미용실이다. 이 미용실은 도시에서 보던 넓고 깨끗한 미용실과는 사뭇 달랐다. 미닫이로 된 작은 출입문을 열면 지저분한 바닥과 때가 끼고 콤콤한 냄새가 나는 수건들, 커다란 거울 주위에는 미용 도구가 어수선하게 놓여 있다.
미용실 문을 연 지 35년이 지났다. 미용실에 있는 모든 것들이 세월호보다 낡고 노후된 것들이다. 그래도 인심 좋은 미용사가 있고 오래된 사람 냄새가 풍겨 자꾸만 찾아오게 되는 곳이다.
"앙거, 여기 안거" 미용실에서 조기 먹는 할매들
이틀 전, 나는 한 미용실을 찾아갔다. 마음도 울적했고,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으며, 거울에 비친 초라한 내 모습에 놀랐다. 집에서 미용실까지는 1.5km의 거리였다. 이십 분 만에 미용실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좁은 미용실 안에 할머니 여섯 분이 난로 주위에 앉아 뭔가를 드시고 계셨다. 미용사 아주머니는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괜찮아요. 저, 오늘 시간 많아요. 천천히 하셔요. 느긋하게 기다리죠.""그라믄 나야 좋제. 좀만 기둘리시오. 이 할매 머리 풀고 해 줄랑께."엉거주춤 하던 나를 한 할머니가 끌어당겼다. 그러자 같이 앉아 계시던 할머니들이 조금씩 옆으로 옮겨 앉았다. 내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앙거. 여기 안거.""아, 네. 감사합니다."내 옆으로 나란히 앉은 할머니들 손에는 조기가 한 마리씩 들려 있었다. 의자 위에 놓인 접시에는 생선뼈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내가 오기 전부터 조기를 드시고 계셨던 모양이다. 조기를 발라 먹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안에 침이 고였다.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아주머니가 머리를 손질하다 말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곤 했다. 미용실에 오면 항상 보게 되는 풍경이지만 보고 또 봐도 정겹다.
해리면에는 열두 개의 마을이 있다. 열두 개 마을에 구멍가게조차 없으니 미용실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머리를 하려면 버스를 타고 면으로 나와야 했다. 나는 할머니들께 여쭤보았다.
"머리는 일 년에 몇 번 하세요?""미뻔? 그야, 미뻔 오는지는 몰제. 파마가 다 풀려도 오고 머리가 길어져도 와야제."할머니 두 분은 이른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고 했다. 마을을 오가는 버스가 많지 않아 오전에 나와서는 병원도 가고 미용실도 가고 장을 봐서는 오후 차를 타고 간다고 했다. 막차가 빨리 끊기고 길이 어두워지면 걷기가 힘들었다.
양쪽 머리 길이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찍 집을 나서다보니 정오를 넘겨 한 시가 다 되자 할머니들의 뱃속이 난리가 났다. 꼬록꼬록 소리가 합창을 하며 들려왔다.
미용사 아주머니는 할머니들의 고픈 배를 모른 척 하지 않았다. 백화점으로 따지면 할머니들은 미용실 단골인 VIP다. 이런 이유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아주머니는 원래 나눠주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소파 앞에 놓인 난로 위에는 밤이 두 개 놓여 있었다. 사장님이 그 밤을 집어 들고는 내게 건넸다.
"맛나요. 어여 드셔. 할머니들은 이미 잡솼어. 조기 먹는디 그게 눈에 들어오것소잉."나는 밤을 먹으며 할머니들을 지켜봤다. 내 손을 끌어 당겼던 할머니에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두 손으로 조기를 뜯어내는 손놀림이 섬세하고 매우 재빨랐다. 만약 달고나 뽑기 대회를 한다면 할머니가 단연 '달고나의 여왕'으로 뽑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머리 손질을 끝낸 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의자에 앉으며 귀밑 삼 센티 길이의 단발머리를 원한다고 말했다. 나는 언제나 일직선을 쭉 그은 것 같은 일자 단발을 좋아했다. 약간은 촌스럽고 약간은 신비스럽다고 할까.
이곳을 찾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주머니는 내 엄마와 나이가 같아 편안했고, 할머니들을 살갑게 대하는 모습에 끌렸고, 커트 가격도 저렴해서 좋았다. 소소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로도 괜찮았다.
나의 긴 머리를 보곤 할머니들은 부럽다고 했다. 자신들은 언제 머리를 길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내 긴 머리가 잘려나갈 때는 자신의 긴 머리칼이 잘려나가는 것처럼 잘려나간 머리칼이 아깝다며 한 마디씩 하셨다.
거울 속에 할머니들이 보였다. 미용사의 가위질 솜씨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할머니, 머리에 분홍 보자기를 쓴 할머니는 한쪽 팔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아이고 소리가 계속 들리는 걸 보니 통증이 심해보였다. 고개가 자꾸만 앞으로 숙여지는 할머니는 파마가 끝났지만 친구를 기다리며 졸고 계셨다.
짧은 머리를 얼마나 세게 볶았는지 머리칼이 돌돌 말려 손에 잡히지도 않을 것 같았다. 시골 할머니들은 대부분이 이런 파마를 하신다. 머리가 자라면 불편하고 자주 머리를 하자니 돈이 들어가니 멋보다는 실용성을 따져 과하게 펌을 한 후에 머리를 짧게 자르는 걸 선택한다. 이렇게 하면 오랫동안 머리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 편하다고 했다.
커트를 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거울 속 나를 보며 아주머니가 물었다.
"워때? 마음에 들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위를 들고 천을 잘라내듯 머리칼을 죽 잘라내던 순간, 느낌이 왔었다. 머리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잘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거울 속 나를 바라보았다. 큰일이다. 양쪽 머리 길이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지만 말할 수 없다. 머리가 마음에 든다며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인 것은 나였다. 머리칼은 다시 자랄 것이다. 한쪽이 더 길든 짧든 상관없다.
늙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면...외투를 입으려는데 나에게 미용실 아주머니가 좀 더 있다 가라셨다. 아주머니는 썰어둔 고구마를 난로 위에 올리셨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니 수다를 떨고 싶기도 해서 나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워메, 벌써 중화제 혀? 좀 더 있어야 할 것인디. 이거 오래 할라고 아침도 굶고 왔는디.""그런다고 파마가 오래가간디. 머리만 상허제. 내가 라면도 끓여주게. 언능 허자고. 고구마도 곧 익자녀. 언넝."할머니는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용 의자 위에 앉았다. 미용실 안은 사람의 온기와 고구마 익어가는 냄새와 라면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로 뜨거워졌다.
난로 위에 고구마가 노릇하게 익어가고 보글보글 라면이 끓었다. 할머니들이 라면을 드시는 동안 미용실 사장님은 우유팩을 들고 나왔다. 내게 잡지를 건네더니 그 위에 우유팩을 뒤집어 털었다.
"밥은 먹었다 했응께. 은행이라도 드시오. 한 번에 열 개 이상은 안 되야. 탈라니께."내가 은행을 먹을 때도 할머니들이 라면을 먹을 때도 미용실 사장님은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다. 나는 혼자 먹는 게 미안해 같이 먹자고 권했다. 아주머니는 다이어트 중이라며 사양 했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소리에 할머니 한 분이 아주머니를 올려보았다.
"살 뺄 필요 없당 게. 나도 거시기 나이 때 꺼정 뚱뚱혔어. 근디 늙은께 절로 살이 빠지더마. 암만 절로 빠졌당게.""그제, 늙으면 저절로 다 해결 되제."살이 빠지지 않아 고민이라는 미용실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할머니가 내놓은 해결방법은 늙는 것이다. 늙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 할머니의 말처럼 늙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면 나는 빨리 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