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이 한창이다. 한국이 결승에 올라 열기가 더욱 뜨겁다. 응원의 열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오랜 기간의 침체를 딛고 우리 축구 대표팀이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국가 대항전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라는 기치 아래 하나됨(oneness)을 느끼곤 한다.
'우리'라는 개념은 우리 아닌 자를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부르짖었던 나치가 순수한 게르만 혈통을 도출해낸 방법은 여러 인종이 섞여 있는 국민 속에서 게르만 혈통을 도려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유태인, 동성애자, 집시 등을 배제한 나머지를 순수한 게르만 혈통이라 불렀다. '우리'라는 개념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배제하고 남은 잔여물이며, 상상의 공동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 우리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우리라는 집단에서 배제된 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예컨대 재일조선인과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타국으로 입양된 자 등을 비롯해 북한 주민들이나 탈북인들까지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근원에서부터 거세된 자들이며, 뿌리 없이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이다.
이방인이라 불리는 그들
이 책의 제목에 나는 '조선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한국미술'이라는 호칭을 일부러 쓰지 않은 이유는 '한국'이라는 용어가 제시하는 범위가 민족 전체를 나타내기에는 협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한국'이라는 호칭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물론이고 재일과 재중 동포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에 모든 조선 민족에 의한 미술 행위를 '한국미술'로 한데 묶어 부르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8-9쪽 중 일부)서경식은 타의에 의해 우리라는 뿌리가 거세된 자들에 관해 집중하는 인물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재일 조선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프리모 레비의 흔적을 더듬었던 <시대의 증언자 프리모레비를 찾아서>나 <디아스포라의 눈>과 같은 저작은 그가 끊임없이 경계를 탐구한 결과물들이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 역시 미술 순례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앞선 책들과 동일한 맥락 하에 있다. 저자는 신경호, 정연두, 윤석남, 이쾌대, 신윤복, 미희(나탈리 르무안), 홍성담, 송현숙 등 작가들의 입을 빌어 5·18 광주민주화운동, 청년, 여성, 일제 식민지 시기, 남북 분단, 디아스포라 등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다룬다. 저자는 미술을 미학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은 물론, 미술이라는 창을 통해서 나타나는 배제 또는 소외된 자의 모습을 포착해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우리'미술에 관한 재정립보편적으로 '우리'라는 개념의 전제에는 우월성이 깔려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인에게 '우리'라는 수사를 붙여 내세우는 까닭은 한국인이 세계를 상대로 우월함을 드러냈다는 데서 기인한다. 미술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술을 둘러싼 이야기는 많은 경우 '어떠어떠한 사람들이 지닌 미의식'이라는 정해진 문구에 따라 통용되면서 자민족 중심주의를 강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해왔다." (245쪽 중 일부) 재일 조선인인 저자도 완강히 거부하려 했지만 '일본적 미의식'의 침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장승업이 그린 원숭이 그림을 별 생각 없이 바라보면서 동시대 일본의 화가와 비교하려는 미숙한 견해밖에 가지지 못했다. 조선 쪽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으쓱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별로 잘 그리지 않았다고 보일 때는 분하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내 안에 존재했던 '우열'의 기준 그 자체가 일본에서의 긴 시간을 걸쳐 내 속에 침투해버린 이데올로기는 아니었을까?(246-247쪽 중 일부)저자는 우월성이라는 미술의 이데올로기적인 속성을 제거하기 위해 미술계의 주류가 아닌 주변부에 머무는 작가와 그들의 작품으로 순례를 떠난다. 그것은 주변부에서부터 중심으로의 개입을 통해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묻힌 '조선미술'을 캐내는 작업이다. 다시 말하면 저자의 순례는 한국의 위대한 "문화적 전통이나 민족적 미의식"을 발견해 내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문맥"을 선명히 드러내려는 것이다. 이는 재일 조선인인 저자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순례다.
저자는 환갑이 넘는 노구를 이끌고 조선미술 순례를 감행했고,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지난한 여정이었음이 분명함에도 저자는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미술가들이 있음을 아쉬워했다. 특히 옌볜의 조선족 미술가들을 다루지 못한 것을 자신의 능력 부족 탓이라 여기며 안타까워했다. 저자는 이제 순례의 지팡이를 내려넣고 나무 등걸에 앉아 쉬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조선미술 순례>가 "끝나지 않은 여행의 중간 보고"라고 말했다. 그가 다시 순례 길에 오르는 날을 고대한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조선미술 순례>(서경식 씀/ 반비/ 2014. 11/ 정가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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