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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도에 받아야 하는 외부 연수 60시간을 수행하지 못했기에 올해는 가능한 짜투리 틈을 누비조각 이불처럼 최대한 모아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박 3일의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에 참가했다. 연수 당일 날 일찍 출근해서 회의하고 급한 업무 정리하고 10시에 출발해서 2시간을 부지런히 달리니 드디어 남한강 줄기가 옆으로 흐르는 양평이다.

아이들 데리고 종종 여름 휴가를 왔던 곳, 아름드리 수백 년 은행나무가 있던 큰 절이 기억나는 곳, 그리고 유달리 하늘의 별이 잘 보이고 바람의 맛이 아주 감칠나게 좋았던 곳. 어디를 가나 맛집이 있던 곳.

그런 양평인데 연수 장소가 있는 강하리 입구에 들어서자 곳곳에 온통 거칠게 검은색 또는 빨간색으로 쓴 현수막들이 어지럽게 날린다. 그 중의 하나가 확연히 눈에 뜨인다.

'청정의 땅 양평에 고압 변전소가 왠말이냐!'

아마 이곳도 조상 대대로 이어온 소박한 주민들의 삶의 터전에 그들의 희망과 관련없이 정부가 밀어붙이기 공사를 진행하려고 하나 보다, 하고 씁쓸했다. 제2의 밀양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다.

이번 연수 주제는 '지역과 공공예술 프로젝트'였다. 나처럼 공공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이미 기획하고 있지만 좀 더 창의적으로 활성화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순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아닌 지역과 연관성이 있는 기획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재래시장을 문화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 온 문화사업단장, 서양화가, 연극인, 음악인, 조각인, 인쇄디자이너, 교수 등 전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보급한 사례로 알려진 '부산감천마을', '통인시장', '안양석수시장' 등 다양한 공공예술 관계자들을 강사로 모셔서 초기 기획부터 진행 과정을 상세하게 들었다. 단순히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사고력의 확장을 위해 모둠별로 토론을 하기도 했다.

항상 일상 생활 어디에서나 청각장애 때문에 잘 소외되는 나는 이번 토론에서도 자칫 입도 한 마디 못 떼는 투명인간이 될 뻔했다. 그러나 토론의 화두를 던져놓고 기록자와 조절자의 역할을 한 통인시장의 윤현옥 선생님께서는 토론하는 사람들의 핵심주제를 칠판에 부지런히 적어주셨다.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토론의 핵심을 간략히 칠판에 적어주셔서 청각장애인 나도 흐름을 파악하여 활발히 참여할 수 있었다.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토론의 핵심을 간략히 칠판에 적어주셔서 청각장애인 나도 흐름을 파악하여 활발히 참여할 수 있었다. ⓒ 이영미

그것은 무척 도움이 되었다. 마치 일본에서 시민들의 자전거가 쉽게 출입하기 위하여 길가상점의 문턱을 없앴는데 정작 휠체어가 큰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나는 중증 청각장애인인 것을 잊고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복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연수에서 재충전에 도움이 된 것은 여기 모인 사람들의 문화적인 힘에서 나온 '소통과 배려'였다. 강사들이 가져온 동영상에는 자막들이 충분히 들어가 있어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었고, 내가 질문을 못 알아들어 대답할 수 없다고 하면 천천히 구화로 질문을 가까이 와서 해주시는 대학교수님, 그리고 레크레이션 때 내 차례가 되면 그냥 통과하던 일반 사회자와는 다르게 한 가지라도 해보게 해주는 진행자들...

연수 때 기억을 되살리면 즐겁게 떠오르는 것은 마지막 날 6개의 모둠팀이 만들었던 '불평합창단'의 발표시간이다. 연수에 대해, 또는 조직에 대해, 사회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대중가요를 개사해서 발표하는 시간이다.

우리 팀은 타이트한 연수의 흐름 때문에 정작 어렵게 참여한 전국의 각 지역기획자들의 네트워킹 시간은 없었던 점, 숙식시설은 좋으나 연수가 마친 저녁 이후의 활동을 위한 편의시설에 대한 불만 등을 <호랑나비> 가사를 개사해서 불러 박수를 받았다. 다른 팀들의 불평불만 합창곡 몇 개가 기억난다.

'혼자 살아가는 싱글족으로 살면 고독사한다며, 결혼하라는 친지들! 왜 우리가 고독사에 떠밀려 왜 결혼을 의무처럼 해야하느냐!'는 불평, 야근수당 없이 매일 야근업무에 지쳐가는 문화예술사회적기업 대표의 애로, 담뱃값과 커피값, 교통비 등은 점점 올라가는데 문화예술교육강사의 급여는 8년 동안 동결되어 있는 배고픈 예술강사들의 불만, 연말연시가 되면 송구영신 하는 주변 사람들과 달리, 해마다 재계약 여부에 말초신경이 솟구쳐 오르고 살 떨린다는 비정규직 기획자들의 불안...

절절히 공감가는 이 시대의 불평들인데 배꼽잡게 웃겼다. 왜냐하면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서 연극인, 음악인, 무용인들은 유감없이 자신의 끼를 드러내며 해학적으로 노래와 춤과 퍼포먼스로 표현했기에... 문화예술이 주는 힘은 무척 크다. 고단하고 척박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예술인들은 생동력 있는 기운을 주었다.


#아르떼 아카데미#청각장애인식개선#서예가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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