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에서 출발한 '복고 열풍'이 '무한도전 토토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 문화를 즐겼던 'X세대'가 이제 소비 중심 세대로 성장한 것이죠. <오마이뉴스>도 창간 15주년을 맞아 2000년으로 돌아갑니다. 21세기에 대한 장밋빛 기대와 '밀레니엄 버그(Y2K)' 같은 불안감이 공존하던 시절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즐겼을까요? 지금부터 우리 마음 속 서랍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오래된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보겠습니다. [편집자말] |
"그때는 자가용 없어도 스타택만 있으면 '부킹' 잘 됐어요."모토로라 사용자 카페
'아이모토'를 운영하는 '섹시맨' 안재홍(41)씨의 추억은 1990년대 후반 아날로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삐삐(호출기)'인 줄만 알았던 스타택을 '딸깍' 젖혀 통화하는 손님 모습은 당시 호프집 아르바이트생에게 큰 '충격'이었다.
무전기 같은 휴대폰을 떠올리던 1990년대 어른 손바닥만 한 폴더형 휴대폰 '스타택'은 당시 아이폰 못지않은 혁명이었다. 다만 100만 원대 고가여서 '사장님폰'이라 불리며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당시 유행하던 '나이트클럽'에서 '스타택'만 있어도 '부킹(남녀 손님 즉석 만남)'이 쉬웠다는 안씨 말이 과장은 아닌 셈이다.
지난 1996년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반값으로 떨어진 '아날로그 스타택'을 12개월 할부로 샀다는 안씨는 지금 디지털(2G) 모델인 '스타택7760'을 쓰고 있었다.
"지금 스타택은 디자인은 비슷해도 성능이 예전만 못해요. 아날로그 모델은 송수화기 구멍도 훨씬 작았지만 통화감이 좋았고 케이스도 탄력이 좋아 잘 깨지지 않았어요. 아날로그가 명품 라인이라면 디지털은 보급형 라인 같다고 할까."
스타택7760은 1996년 3월 출시 이후 국내에서만 130만 대 넘게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고 지난 2000년 5월 단종된 뒤에도 15년 넘게 생명력이 이어지고 있다. 중고 가격도 20만 원 안팎으로 요즘 나온 웬만한 중고 스마트폰 못지않다. 하루가 다르게 최신형 스마트폰이 쏟아지는 요즘 스타택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20년 이어진 생명력... 튜닝 거쳐 '명품폰' 부활
'외산폰 무덤'이라 불리는 한국에서 스타택을 앞세워 승승장구했던 모토로라코리아도 지난 2013년 초 한국에서 철수했다. 10곳 안팎에 이르던 중고 스타택 쇼핑몰도 '스타택몰'과 '아큐라택', '조이텍' 등 몇몇 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 27일 오전 찾아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조이텍' 사무실엔 용아무개(43) 대표 혼자 일을 하고 있었다.
"2년 전까진 스타택만 하루 10~15개씩 팔았는데 지금은 수요도 줄고 부품 물량 확보도 어려워 잠시 판매를 중단했어요. 본체에 들어가는 '보드'는 수천 대 있지만 배터리나 충전기 구하기도 쉽지 않아요." 단종된 지 10년도 넘은 중고 스타택7760이 요즘 20만 원대를 넘나드는 '귀하신 몸'이 된 이유다. 하지만 중고폰도 이곳에서 케이스를 바꾸고 튜닝 작업을 거치면 '명품 폰'으로 거듭난다.
공무원이었던 용씨는 지난 2003년 동생과 재미 삼아 스타택 사업을 시작해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2000년대 후반 한창 잘 나갈 때는 월 순수입만 2천~3천만 원대였다고 한다. 스타택은 단종됐지만 당시엔 부품 구하기도 쉽고 개조나 조립도 어렵지 않아 중고 거래가 활발했다. 당시 중고 스타택 가격이 12~13만 원 정도 했는데, 하루에서 수백 통씩 문의 전화가 걸려와 통화하면서 작업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1시간 넘게 인터뷰하는 동안 전화 두세 통이 전부였다.
예전만은 못해도 스타택 마니아들 덕에 일감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10년 넘게 스타택을 만져온 손영철 아큐라텍 대표는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에 가끔 스타택이 등장하면 다시 관심이 늘고 젊은 층도 많이 찾는다"면서 "지금 국내 스타택 사용자가 5천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예전에 쓰던 스타택을 다시 쓰려고 배터리나 부품을 교체하려는 수요도 꾸준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딸깍 소리' 좋아해...외국 스타택은 소리 안 나"
스타택 사용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특유의 '딸깍' 소리를 스타택의 매력으로 꼽는다. 폴더를 열고 닫을 때 '힌지'가 꺾이면서 나는 딸깍거림이 마치 '지포 라이터'처럼 중독성이 있다는 것이다. '딸깍 소리'를 키우는 것도 스타택 판매자들의 큰 일거리다.
조이텍 용 대표는 "스타택 딸깍 소리가 초기 불량 때문이었는데 유독 한국 사용자들이 좋아해서 계속 놔뒀다는 얘기가 있었다"면서 "실제 외국에 판매하는 스타택은 딸깍 소리가 잘 나지 않고 수리용 부속품을 사용해도 딸깍 소리가 안 나 일부러 크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고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 손에 딱 들어오는 넓적한 디자인과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는 둥근 앞 테두리도 '딸깍' 소리 못지않은 강점이다.
안재홍씨는 "불룩한 대용량 배터리를 끼우면 스포츠카 '페라리 F40'을 닮았다"면서 "이후 모토로라에서 나온 '레이저2' 디자인을 설명할 때도 스포츠카와 연결 짓는데 스타택 디자인이 그만큼 앞서 나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2000년경 BMW코리아에선 'BMW' 로고가 박힌 스타택을 승용차와 패키지로 판매하기도 했다.
반면 안씨는 '스타택2004'나 '스타택3' 등 스타택7760 후속 모델에 대해선 아쉬움을 나타냈다. 컬러 액정화면 크기를 키우는 등 '사양'은 업그레이드됐지만 제품 마감 등 완성도는 떨어져 예전 '명품'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스타택7760은 카메라는커녕 두 줄짜리 흑백 액정 화면에 전화번호는 달랑 99개 저장되는 등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부족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컬러 액정 화면과 카메라가 들어간 '폰카'가 등장한 2000년 이후에도 스타택은 꾸준히 사랑받았다.
"스타택은 비교 대상이 없었어요. 스카이 플립형 휴대폰으로 바꿔본 적도 있지만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삼성전자에서 도와준 측면도 있어요. 모델 라인업이 너무 자주 바뀌다보니 다른 휴대폰은 몇 년만 써도 구형인데 스타택은 꾸준하잖아요."
전화와 단문 메시지가 고작이던 2G에 최적화된 통화 성능도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다. 용 대표는 "2G 기지국이 점점 없어지는 추세지만 아직도 통화 음질은 스타택 만한 게 없다"면서 "지금도 학교에 다니는 자녀 때문에 일부러 스마트폰 대신 스타택을 찾는 부모들도 있을 정도"라고 맑했다.
볼트가 필요 없어 조립이나 분해가 쉽고 빠르다는 것도 스타택의 장점이다. 숙련공은 1분이면 스타택을 해체할 수 있고 10분이면 다시 조립할 수 있다. 스타택 마니아들도 정기모임에서 스타택을 즉석에서 분해했다 다시 조립하는 시간을 재며 경쟁을 벌이고 서로 부품을 비교해 보기도 했다.
모토로라코리아 출신 개발자가 스타택 소프트웨어를 동호회에 공개한 것도 중고 거래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프로그램을 바꿔 새로운 기능이나 글자체를 추가하거나 배경 색깔을 바꾸는 것도 가능해진 것이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내리막... 2G와 함께 역사 속으로
잘 나가던 스타택도 스마트폰이 등장한 2010년대 이후 예전 인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용 대표도 10년 넘게 스타택을 썼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주로 쓰고 있다.
"사실 판매자 입장에서 사용하기 불편해요. 옛날 추억에 스타택을 다시 쓰려는 분들도 있지만 오래 가지 않더라고요. 똑같은 디자인에 성능이지만 예전 같은 느낌이 없는 거죠."
마치 '첫사랑'을 오랜 만에 다시 만난 같은 느낌이랄까. 안재홍씨도 스타택용 011 번호를 계속 살려놓고 있지만 주변에는 전화 기능이 없는 스타택을 장식품처럼 들고 다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 2012년 KT에 이어 SK텔레콤까지 2G 서비스를 중단하게 되면 휴대폰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지난 2000년 아날로그 이동통신 서비스가 중단된 것처럼 스타택도 머지않아 2G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인 것이다.
안씨가 운영하는 '아이모토' 카페도 2000년대 초반 스타택 카페로 출발해 지난 2006년 레이저 카페와 합치면서 회원 수가 한때 5만 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꾸준히 활동하는 회원이 수백 명으로 줄었다.
"10년 동안 책상 위에 스타택 부품들을 잔뜩 모았는데 이젠 베란다 구석으로 치웠어요. 아이들도 키우고 사업도 하다 보니 애정도 예전 같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2G 서비스가 중단되는 날까지 스타택은 계속 쓸 생각이에요."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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